1. 소개
‘리히텐슈타인’으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리히텐슈타인 공국 (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입니다.
유럽 중부에 있으며 수도는 파두츠(Vaduz)입니다.
공국은 황제 또는 왕이 아닌 공작(Duke)이 다스리는 나라로 대공이라 불리기도 하며
대공은 황제 또는 왕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아 영토를 다스리며
왕위 계승권이 있는 군주를 의미합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국기는 1921년에 제정되었으며
위로부터 파랑과 빨강의 2색기로, 깃대 쪽 상단에 왕관이 있습니다.
파랑은 푸른 하늘을
빨강은 불을 의미하며
금빛 왕관은 통치자인 공작의 지위를 나타냄과 동시에
국민과 통치자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상징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유럽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오스트리아와, 서쪽은 스위스와 접해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160 ㎢로 세계 216위이며
이는 충북 충주시의 153 ㎢보다 조금 더 큰 면적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은 2019년 기준으로 약 3만 8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세계에서 6번째로 인구수가 적은 국가로
한국 행정기준으로는 2만 명과 5만 명 사이의 ‘읍’에 해당합니다.
리히텐슈타인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61억 달러로
1인당 GDP는 약 14만 달러로 룩셈부르크와 함께 1, 2위를 다투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인종 구성은 독일계 민족이 88%, 그 외 다른 민족출신이 소수 있습니다.
언어는 독일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약 80%, 그 외 개신교와 이슬람교 등이 있습니다.
2. 역사
현재 리히텐슈타인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의 직할영지였습니다.
안톤 플로리안 1세(Anton Florian Ⅰ) 대공이
셸렌베르크와 파두츠 지역을 합쳐 공국을 세우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6세의 윤허로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지위를 얻었지만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남아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혁명전쟁 당시에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1세는
오스트리아의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해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가
1806년 라인동맹에 가입하였고
9년 뒤인 1815년에는 독일연방에 포함되어 있다가
1866년 정식으로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 리히텐슈타인의 군주였던 요한 2세(Johann II)는
1858년부터 1929년까지 약 70여 년간 재위하면서
유럽 주권국의 군주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 재위했습니다.
독립국이 되긴 했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의 직간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면서
실질적인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고
1921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습니다.
1924년 스위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스위스 화폐인 스위스 프랑을 리히텐슈타인의 공식화폐로 받아들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급격하게 산업화를 이룬 리히텐슈타인은
1960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 가입하였고
1990년에 유엔에 가입했습니다.
현재는 영세 중립국으로서 군사와 외교
재정은 스위스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3. 정치 & 경제
리히텐슈타인의 정치는 세습에 의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재 리히텐슈타인의 공국의 국가원수는
1990년에 즉위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한스 아담 2세(Hans-Adam II)이며
총리는 2013년부터 총리직을 수행중인 아드리안 하슬러(Adrian Hasler)입니다.
의회는 단원제로 임기 4년의 의원 25명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본적으로는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대공의 권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대공은 의회가 제안한 법안을 거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회를 휴정하거나 해산시킬 수 있을 만큼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 대법원의 판사를 직접 임명하며
재판을 중지시키고 직접 사면을 적용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당히 군주 중심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데다, 국가재정 대부분을 대공 개인재산으로 충당해서
국가에 대한 불만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리히텐슈타인 경제 산업구조는 3차 산업이 50%, 2차 산업 45%로
작은 영토, 빈약한 부존자원 및 4만 명도 안되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로는 미국의 2배를 넘을 정도로 부유한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주요 산업으로는 금융업과 관광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국제적인,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낮은 세율을 도입하고
기업규제를 대폭 축소하여
해외기업을 유치하고 유럽대륙의 금융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수도인 파두츠에는 2000개가 넘는 회사들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자산은 한화로 약 8조 원에 달해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왕가에서 국가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고
LGT은행은 사실상 한스 아담 2세의 개인소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낮은 세율로 인해 세계 각국의 회사들의 조세 회피처로 활용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였으나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다고 합니다.
농업 부문은 밀을 약간 수입하는 것 이외는 국내에서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공업 분야에서는 현미경, 광학기기, 의치와 같은 정밀기계 등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세계 의치시장의 30% 가량을 담당하며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리히텐슈타인의 국토는 남북으로 25km, 동서로 6km 정도로 뻗어있으며
세계에서 6번째로 작은 나라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 지형으로
서쪽은 스위스, 동쪽은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닿아있지 않은 내륙국이며
그 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전 세계에서 2개국 뿐인 이중내륙국입니다.
유럽자유무역연합에는 가입해 있지만,
EU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요.
룩셈부르크의 외교를 위임받은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EU가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기후는 온화한 편으로
알프스 산맥 근처에 있는 지리적 입지 때문에 푄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연강수량은 900~ 1200mm 사이
겨울의 평균기온은 0도, 여름의 평균기온은 20도 내외입니다.
실제로 리히텐슈타인은 외교와 재정뿐 아니라
군사적인 부분까지도 스위스에 많이 기대고 있는데요.
스위스에 국방을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에는 군대가 없고
1933년 창설한 리히텐슈타인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국경에서는 출입국 검사도 없고
화폐 역시 스위스 프랑을 쓰기 때문에 세관도 없다고 합니다.
영토가 워낙 작아서 공항이 없기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을 여행하려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음악이 크게 발달한 국가입니다.
유명한 음악가뿐 아니라 많은 음악협회나 합창단들이 있는데
그 수가 40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리히텐슈타인 음악학교는 국립재단으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국제적 마스터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우표는 아름답기로 명성이 대단해서
외국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한때 우표수입이 국고수입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했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리히텐슈타인의 우체국에는
우표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늘 붐비고 있습니다.
또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예술품 컬렉션 역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1대 대공인 카를 1세 때부터 900년 역사를 이어오며
많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훌륭한 예술품들을 수집해온 덕에
가치가 높은 예술작품들의 방대한 컬렉션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5. 인물
리히텐슈타인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프리츠 카이저(Fritz Kaiser)가 있습니다.
그는 자산관리 회사인 ‘카이저 파트너(Kaier Partner)’의 공동 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1955년 태생의 카이저는
20대 초반이었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리히텐슈타인 유도 국가대표로 참가하는 등
스포츠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오스트리아 비즈니스 아카데미에서 경제학 공부를 마치고
1977년 리히텐슈타인의 프라이빗 뱅크에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20대 후반인 1982년 카이저는
프리츠 카이저 그룹 (Fritz Kaiser Group)을 설립하여
개인 자산가나 기업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포츠인사와 문화예술계 인물들에게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였습니다.
그가 회장으로 재직 중인 국제자산관리회사 카이저 파트너는
개인이나 가족기업의 재무 자문과 펀드 및 자산관리 서비스를 총괄하는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카이저는 다이너스클럽(Diners Club) 신용 카드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금융서비스업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그 당시 다이너스클럽의 소유주였던 씨티뱅크에서
다이너스클럽 국제 전략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카이저는 전 세계의 자산가와 금융전문가들이 모여
책임있는 자산 사용을 위한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다보스 포럼에도 참가하여 국제적인 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히텐슈타인 정부의 요청으로
2008년 국가금융센터의 미래 방향설정 과정에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OECD와 공동으로 금융센터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였고
전 세계 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비과세 자금에 대한 공정한 솔루션을 찾아 투명한 자산관리로 이끌면서
2011년 올해의 자산 관리 혁신가로 ‘스피어스 매거진’ 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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