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뚝딱철학

5분 뚝딱 철학) 예술이란 무엇인가? (feat.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Buddhastudy 2025. 4. 28. 20:15

 

 

  • 플라톤의 미학: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실을 구별하며, 예술 작품은 현실의 모방이므로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진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03:06]. 또한, 예술 작품이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04:13].
  •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가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방하며, 예술 작품을 통해 인간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영혼이 고양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04:48]. 그는 비극 작품을 통해 공포와 연민을 느끼면서 감정적 정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05:57].
  • 두 철학자의 공통점과 차이점: 두 사람 모두 예술 작품을 현실의 모방(미메시스)으로 보았지만, 플라톤은 예술을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으로 평가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07:51]. 또한, 예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플라톤은 부정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08:26].
  •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린 이유: 플라톤은 예술을 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이성이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08:43].
  •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을 옹호한 이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였으며, 예술의 힘을 알았기 때문에 예술을 옹호했습니다 [09:14].

 

 

 

오늘은 고대 그리스의 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양대 산맥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죠.

 

오늘은 이 두 사람이

예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철학을 알아야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죠.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실을 구분합니다.

이데아의 세계는 진짜 세계이고

현실의 세계는 가짜 세계라는 거죠.

 

이데아가 100% 위스키 원액이라면

현실은 이 원액에 여러 가지를 섞은

30, 40도짜리 위스키라는 겁니다.

 

30도나 40도짜리 위스키도 위스키 위스키죠.

하지만 엑기스의 함량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가짜라는 겁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데아의 함량은 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전부 가짜예요.

진짜 사람은 순도 100%인 사람의 이데아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100% 위스키 원액, 그런 거 존재하지 않아요?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내 앞에 있는 30, 40도짜리 위스키라는 겁니다.

위스키 원액 같은 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100% 위스키 원액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3040도 짜리를 위스키라고 부르는 거죠.

그것은 이 안에도 위스키의 본질,

즉 에이도스(eidos, 본질)가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데아의 함량은 다르지만

어쨌든 사람의 본질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순도 100%인 사람

그런 사람 없으니

더 이상 이상형 찾다가 노처녀로 늙어 죽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술집에 간 플라톤은

야 진짜 위스키 저기 있는데 저 정도 마셔야지라고 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고 형님 그런 거 없어요. 그냥 17년산이나 마시죠라고 하면서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플라톤의 예술이론

 

그래서 플라톤에게 현실의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에 모방일 뿐입니다.

현실의 세계는 이데아 세계의 짝퉁이라는 거죠.

 

그런데 예술작품이 뭡니까?

예술작품은 현실을 모방하고 있죠.

그러니 예술작품은 이데아의 짝퉁의 짝퉁인 셈이에요.

 

비유하자면

이데아가 위스키 원액이라면

현실은 17년산 발렌타인이고

예술은 가짜 양주라는 겁니다.

 

이것이 여자의 이데아라면

이 사람은 현실의 여자

이것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여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예술작품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첫째, 예술작품은 이데아에 대한 모방의 모방이니까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가짜라는 겁니다.

이처럼 플라톤에게 진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에게 훌륭한 인간이란

이성이 의지를 통해서 욕망을 컨트롤 하는 인간인데

이때 이성이란

진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예술작품이

좋아 보일 리가 없는 거죠.

 

둘째, 예술작품은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겁니다.

호메로스의 시를 보면

신은 부도덕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인간은 이러한 신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웅들은

한결같이 살인이나 강간, 사기를 수시로 저지르는 불한당 같은 놈들입니다.

 

플라톤은 애들이 이런 걸 보면서 뭘 배우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해야 된다라고 말을 합니다.

요샛말로 하면 에로물에 18금 딱지를 붙여야 한다라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이론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다릅니다.

예술작품이 현실을 모방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냥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술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훨씬 더 세련돼 보이죠.

생각해 보세요.

이 그림은 실제의 밤하늘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고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방을 한 것이고

이 그림은 실제 소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이중섭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실제 성문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하르트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방을 한 것이고,

이 음악은 이 그림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무소르크스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으로 모방한 겁니다.

 

이처럼 예술가는

대상이 가지는 본질,

즉 에이도스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방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은 비극 작품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트르시스는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컨대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으면서 감금된 상태로 지냅니다.

탈출에 성공한 오대수는

이내 복수를 하는가 싶더니

결국 자신의 딸과 관계를 가지게 되는

비극적 상황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때 관객들은 오대수를 보면서 먼저 공포를 느끼죠.

그리고 연민이라는 상반된 감정도 동시에 느낍니다.

오대수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포를 느끼고

이런 오대수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런 영화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영화의 내용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인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이 굉장히 평온한 상태가 될 수 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일 수도 있고,

비극의 끝, 공포의 끝을 보고 난 후에 오는 해방감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비극을 보고 난 후에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인간의 영혼이 한층 더 고양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카타르시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는데요.

 

특히 정신분석학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 콤플렉스를

말이나 행위로 발산시켜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프로이트는 카타르시스를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면서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분노의 감정을 감소시키는

그러한 과정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정리합시다

이제 두 사람의 예술 이론을 비교해 봅시다.

먼저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예술작품은 현실의 모방,

즉 미메시스라고 보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모방을 보는 관점은 달랐는데요.

플라톤은 예술을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가 현실의 대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즉 창조적으로 모방한 것이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예술을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져 있다라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역사보다 더 진리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예술작품이 인간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달랐는데요.

플라톤은 예술작품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영혼이 한층 더 고양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예술에 대해서 왜 이렇게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플라톤이 예술을

예술 자체로 보지 않고

진리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플라톤은

이성이 욕망을 컨트롤 해야 된다라고 말을 했죠.

그러니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의 결과물인 예술을

이성이 컨트롤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이러한 욕망에 빠져서

비이성적이 될 수 있다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도 짓고, 그림도 직접 그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인간을 얼마나 비이성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예술을 경계해야 된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예술가들을 아테네에서 추방해야 된다라고 말을 했던 겁니다.

예술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예술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던 거죠.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