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게도 불경 어디에도
싯다르타의 성불 과정에 대한 올바른 얘기가 없습니다.
싯다르타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알 수 없기에
왜곡된 얘기만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왜곡은 금강발원입니다.
방광대장엄경에 보면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으면서
“내가 무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질지언정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방광대장경
그런데 이런 금강발원은
싯다르타가 출가한 이후 빠트리지 않고 해왔기에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고
또한 이런 작심발원은 오히려 아상을 자극해
수행에 차질을 가져오게 됩니다.
두 번째 왜곡은 중도입니다.
방광대장엄경에 보면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팔정도라는 중도의 이치를 터득했고
이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팔정도가 중도라면
불교의 철학과 수행은 범속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훗날 연기법이나 쌍차쌍조를 중도의 소재로 삼게 되는데
이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싯다르타는 어떤 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한 것일까요?
싯다르타가 기존 힌두교의 수행법을 버린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의 어떤 새로운 법을 터득한 것도 아닙니다.
당시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취한 수행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 없는 것에
경천동지할 비밀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당시 현장으로 몰입해
싯다르타의 수행을 지켜봅시다.
그는 과연 어떻게 무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까요?
보리수나무 아래에 좌정한 싯다르타!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무심하면서도 허탈하고 청정하면서도 혼탁했습니다.
구도의 끈 자락은 이미 끊어져 맥없이 나풀거리고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메말라 버렸습니다.
이제 싯다르타가 가야 할 길은 완전히 증발했습니다.
환속할 수도 없고, 수행의 길을 계속 갈 수도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갈 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연명할 이유가 없지만,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의식은
마치 목적을 잃고 표류하는 부평초처럼 의지처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싯다르타는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상태가 되어 그냥 있었습니다.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던 싯다르타는
문득 의식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건 마치 거울에 낀 얼룩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달빛을 가리던 구름이 걷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꽉 조이고 있던 어떤 인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감으로써
무한히 자유로우면서도 한없이 평온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잠시 뒤 어디서 몰려왔는지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한바탕 몰려오고는
그것마저 사라져 그냥 존재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이루었던 진아나 절대, 해탈이 모두 증발하고
존재하는 것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존재가 돌멩이처럼 무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참된 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이의 절대나 해탈 역시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일체의 언어나 몸짓, 표정으로 표현할 길이 없지만
존재의 실체만은 확실했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 화한 싯다르타!
그는 드디어 무상정등각을 성취한 것일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싯다르타는 한 생각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는 어떡하든 생각을 끄집어내어 의심의 날을 세웠습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여태껏 해오던 방식대로
깨달음을 진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온전히 깨달았는가?’
싯다르타는 단번에 실존을 떠올렸습니다.
‘삼라만상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의문을 내자마자
제1원인에 돼 버렸습니다.
‘내가 곧 만물의 제1원인, 실존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존재하는가?’
싯다르타는 의심을 일으키는 동시에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여
어떤 이유나 근거, 논리의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나는 누구인가?’의 근본적 물음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밖의 세계를 떠올렸습니다.
‘존재는 무엇인가?’의 화두를 떠올리자마자
역시 그냥 풀어졌습니다.
싯다르타는 마침내 나와 존재의 실상을
훤히 깨우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싯다르타는
더 이상 의심을 일으킬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찰나에 의심은 뿌리까지 말라 증발했고
남은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존재 그 자체!
다시 말해 실존이 되어 버린 싯다르타!
그는 드디어 무상정등각을 이룬 것입니다.
‘아, 아!~’
텅 비어 버린 심연의 울림이 입가로 새 나왔습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도달한 경지를 잊었지만
그의 몸뚱이는 그것에 대한 충격으로 미미한 탄성을 간간이 토해냈습니다.
싯다르타가 이번에 이룬 진리적 자각은
기존에 그가 겪었던 경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감았던 눈이 번쩍 떠진 것처럼
지금껏 진리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생각이 차원을 바꿔가며 만들어내던 환영들은
맥없이 가라앉고
자존하고 영원불변하는 실존만이
그 실체를 훤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실존으로 화한 싯다르타는
한없이 자신의 깨달음을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가 이룬 깨달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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