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배우고 가르치고

Buddhastudy 2025. 5. 7. 19:16

 

 

  • 마음과 부처의 관계: 마음이 곧 부처이며,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00:02].
  • 황벽의 가르침: 황벽은 마음만을 가리켰으며, 마음을 부처라고 했습니다 [00:23]. 행함이 없는 것이 황벽의 법문이며, 이는 마음의 문이라고 합니다 [00:42].
  • 허망한 생각과 깨달음: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느낌이 곧 부처이며, 허망한 생각이 없다면 부처 역시 없다고 합니다 [00:59].
  • 깨달음의 본질: 깨달음이 일어나는 곳은 질문이 나오는 곳,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는 곳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01:32].
  • 배움과 가르침: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야 하지만, 배움이 없어도 배우고 가르침이 없어도 가르친다고 합니다 [07:29].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의 마음이 부처다.”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한 것이다.

만약 마음에서 벗어난다면

따로 다시 부처는 없다.”

 

황벽은 내내 마음만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부처라고 했고, 부처만 가리켰습니다.

마음 놓고 태연히 집 안에 앉아서

되는 대로 따라가고, 얽매이지 않으면

해탈이라고 합니다.

 

황벽에게는 행함이 없음이 법문이었고

그것이 한 개의 마음의 문인데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이르면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단지 몇몇만 들어오니

들어오는 사람은 곧 부처라고 합니다.

 

 

지금 바로 허망한 생각이 일어날 때

부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가 지금 허망한 생각이 일어남을 느낄 때

느낌이 바로 부처이다.

만약 허망한 생각이 없다면 부처 역시 없다.”

 

마음을 일으켜서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기 때문에

곧 이룰 부처가 있다고 여깁니다.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모두 내 안목입니다.

질문이 나오는 그곳,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곳

깨달음이 일어나는 그곳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다른 생각만 없다면 그렇습니다.

 

 

운문이 천동에 이르자 천동이 말했다.

너는 틀림없이 어두웠느냐?”

스님께선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모르겠느냐? 눈앞에 쌓인 꾸러미다.”

알면 눈앞에 쌓인 꾸러미입니다.”

 

눈앞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지만, 알면 보이고

감추어 둘 수도 없지만, 눈앞에서 보여줘도 알아차릴 수 없으니

이 물건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간수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황벽의 행함이 없는 그 문을 넘어서면

환한 햇빛의 따스함마저 느껴지는데

그 느낌이 부처라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백장이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에게 보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 스님을 만나는 대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문이 바로 오봉의 문입니다.

산과 강과 들,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온 우주가 내 마음에 있으니, 문만 열면 됩니다.

문을 열면 문이 사라지니

전할 말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을 열면 전할 말은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저 역시 돌아와서 말씀드릴 일이 없습니다.

 

 

남전이 유나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울력을 하려는가?”

연자방아를 돌리렵니다.”

연자방아는 그대를 따라 돌겠지만

연자방아의 중심에 세운 나무는 움직이지 못할 걸

유나는 대구가 없었다.

 

법안이 남전과 유나의 연자방아 이야기를 대중에게 들려주고

유나를 대신해 답했다.

그렇다면 돌지 않겠군요.”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려 하고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합니다.

혹시 갓난 아이에게 젖 빠는 법을 가르쳐 보셨습니까?

혹시 숨 쉬는 법을 부모님께 배웠습니까?

 

그래서 황벽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동안 연자방아의 커다란 윗돌이

아무리 빙글빙글 돌아도

꼼짝하지 않던 밑돌 한가운데에 꿰어 노는 축이 훤히 보입니다.

 

 

한 승이 조산에게 물었다.

무엇이 현묘함입니까?”

어째서 진작 묻지 않았는가?”

무엇이 현묘함 가운데의 현묘함입니까?”

원래 한 사람이 있느니라

 

원래 있던 것을 원래 있다고 알려줘야 하는

고달픈 신세가

어쩌다 깨달은 선사들의 것이 되었는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선사들이 세존을 욕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원래 있음을 모르고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이 분별이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을 깨끗이 하면 분별이 멈추지 않을까 하는 것은

선 공부하는 사람들의 본능에 가까운 알음알이입니다.

 

신시보리수 심려명경대

시시근불식 물사야진해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오조가 신수의 게송을 보고 말합니다.

범부는 이 게송에 의지해 수행하면 탈락하지 않겠지만

이런 견해로 무상보리를 찾는다면 얻지 못한다.

반드시 문 안에 들어서야만 본성을 볼 수 있으니...

 

아무리 돌아도 돌지 않는 방아의 목축을 아는 자가

방앗간에서 일을 합니다.

방아를 돌리던 혜능이 신수의 글을 전해 듣습니다.

그리고 시를 하나 지어봅니다.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오. 거울 역시 받침이 없으니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때가 묻을까.

 

 

하루는 설봉이 현사에게 물었다.

그대가 그곳을 주지해 보니

어떤 형제들이 그대에게 가까이 의지하더냐?”

모든 것을 배워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말하겠느냐?”

배우지 않고서 모든 것을 다 배운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또한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배움이 없지만 배우고, 가르침이 없지만 가르칩니다.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으면

혜능의 방아를 돌리다가 황벽의 문을 엽니다.

 

한 승이 설봉에게 물었다.

고금에 서로 전해온 일에 무슨 할 말이 더 있습니까?”

그대 스스로 보라.”

그래도 보고 듣는 것이 없을 수야 있겠습니까?”

귀머거리가 될까 봐 근심만 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으로 다섯을 못 헤아리면

사방팔방에 여섯만 넘쳐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