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마음과 뒷마음의 차이: 앞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 것을 모르는 이에게 알려주려 하면 저절로 어려워지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설명합니다 [00:38].
- 미혹과 깨침: 앞 생각이 미혹하면 범부, 뒷생각이 깨치면 부처라고 합니다 [01:04]. 자기 성품을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합니다 [01:17].
- 문안의 사실: 말은 문패와 손잡이를 지칭하는 것일 뿐, 문안의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01:51].
- 오고 가는 것: 커피 맛을 예로 들어, 맛있다 느끼고 다시 커피 마시러 가는 것을 알면서 모른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02:50].
- 자리가 아닌 곳이 없음: 우리가 오고 가는 곳 어디든 그 자리가 아닌 곳이 없다고 합니다 [03:36].
-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 내가 마신 커피 맛을 왜 가르침 받아야 하겠냐고 반문하며,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04:42].
- 생각과 주시: 미혹은 생각 속에서 일어나며, 생각을 바라보는 주시를 통해 보고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05:00].
- 평탄함과 깨달음: 눈앞이 평탄해지면 태평양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05:59].
- 미혹과 깨달음의 관계: 미혹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으며, 미혹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06:39].
- 발밑의 연기: 발 디딜 자리에 연기가 나도록 뛰어다니면 어느새 자기가 사냥감이 된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07:11].
설봉이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첫 마음과 뒷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날 더러 뭘 가르쳐 달라는 말이냐?”
“모르는데 어떻게 압니까?”
“네 스스로 모르는 게지 나는 아무 죄도 없다.”
“다시 비 올 건데 가르쳐 주십시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괴롭구나. 괴로워 이렇게도 구제하기가 어려운데 어쩌겠느냐”
초심과 후심이라고 해도 앞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데,
쉬운 것을 모르는 이에게 알려주려고 하면
저절로 어려워지는 것이 세상살입니다.
천근 만근의 짐을 지고 사람으로 살다 보니
이렇게 가벼운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입니다.
“앞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자기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 성품을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육조단경
그냥 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에 앞뒤가 있고
-생각이 미혹하고
-생각이 깨치고
-거기다 자기 성품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저 말을 듣고 뭔가 알겠다고 생각된다면
정말 의심해 봐야 합니다.
저 말들은 죄다 문패와 손잡이를 지칭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문 안의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는 한 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현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가?”
“말하는 이놈이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어째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가?”
“스님께서는 어떻게 왔다 갔다 한다 하십니까?”
“그대는 방금 어디서 왔는가?”
“저는 차방 안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지금 간다 해도 차방으로 갈 텐데
어째서 가고 옴을 모르는가?”
커피 마시다가 이 동영상을 보는 경우를 가정해 보죠.
“커피 맛이 어떻습니까?”
그 맛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맛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네” 하면 됩니다.
그 보십시오.
커피 마시다 오고
다시 커피 마시러 가는 것을 다 알면서
뭘 모르겠다고 하는 겁니까?
그렇게 오고 가고 있으면서 뭘 모른다는 겁니까?
문은 거기에 있습니다.
조주가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설봉에서 왔습니다.”
“설봉은 무슨 법문으로 납자를 가르치더냐?”
“스님께서는 늘 말씀하시기를
온 시방세계가 사문의 일초가 아닌데
너희들은 어디다 똥을 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대가 돌아가는 편에 괭이를 갖다 주어라.”
괭이로 땅을 파서 묻을 곳을 만들면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오고 가는 곳 어디든 그 자리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앞생각, 뒷생각 같은 어려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엇을 미혹한다는 걸까요?
왜 커피 마시면서 오가는데, 오가는 것을 모를까요?
일척안, 지혜의 눈이 온 세상을 다 보고 있는데 왜 찾지 못하는 걸까요?
본자원성 하로첩석
원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거든 어찌 돌 쌓는 수고를 하랴
명막조전 여아현격
아득한 훗날 보고 이름을 새겨두면 나와는 거리가 멀다.
약인차문 종불지획
누군가가 물어온다 하여도 끝내 한 획도 가르쳐주지 않으리.
조주 스님이 절대로 안 가르쳐 주겠다는데
사실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고, 그럴 만한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진 것
내가 마신 커피 맛을 왜 가르침 받아야 하겠습니까?
미혹이 일어나는 곳은 생각 속입니다.
생각을 바라보면
그것을 주시라고 합니다.
주시가 지속되면
보고 보이는 것이 오고 가는 것을 압니다.
운문에게 한 승이 물었다.
“눈앞이 평탄할 땐 어떻습니까?”
“바닷물이 그대 머리 위에 있다.”
“그러면 다 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허튼 말을 하기냐”
육조는 글자도 몰랐다고 하는데
왜 저렇게 어려운 말을 남겼는지 알 길이 없고
열심히 공부한 조주는
왜 자기와 아득히 먼 이름을 새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말과 말 사이에
텅 빈 문을 찾을 뿐입니다.
생각과 생각 사이의
고요한 바람을 찾을 뿐입니다.
그래서 눈앞이 평탄해지면
태평양 바다에 풍덩 빠집니다.
도전이 동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 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가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끝내 발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군요.”
동산이 말했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미혹도, 깨달음도 매 발걸음마다 일어납니다.
미혹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습니다.
다만 미혹을 보는 눈을 기르려면
발밑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승이 설봉에게 물었다.
“화살 끝에 칼날이 보일 때는 어떻게 합니까?”
“고수는 표적을 맞추지 않는다.”
“눈을 씻고 봐도 표적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편 따라 고수가 되는 것도 무방하다.”
“발 디딜 자리에 연기가 나도록 뛰어다니면
어느새 자기가 사냥감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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