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선과 깨달음, 상상하는 그 자리에

Buddhastudy 2025. 3. 26. 19:11

 

 

동산이 하안거를 해제하고 법문을 했다.

그대들은 각각 동쪽이나 서쪽으로 떠날 것이다.

모름지기 만 리에 풀 한 포기가 없는 곳으로 떠나거라.

그러면 말리에 풀 한 포기도 없는 곳으로 어떻게 떠나야 하겠는가?

이것을 알고자 한다면 모름직이

고목에 꽃이 피어야 바야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석상이 말했다.

문을 나서면 곧바로 풀밭입니다.”

대양이 말했다.

문을 나서지 않아도 그대로 풀이 무성합니다.”

 

문을 나서면 당연히 풀이 무성합니다.

우리는 눈 코 입을 가리고 살 수 없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런데 대양은 문을 나서지 않아도 풀밭이라고 합니다.

, ,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풀이 가득합니다.

석상이나 대양이나 다 맞는 말입니다.

만 리에 풀 한 폭이 없는 곳은 아예 없습니다.

 

어느 중이 사선 선사에게 물었다.

청을 드리면 반드시 청을 들어주신다는데

우물 속으로 들어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물이 너무나 깊고 깊어서 바닥이 없다네.

물을 마시는 자만이 모든 갈증을 해소하는 법이지

 

상식적으로는 우물에 빠져보라는 이야기가 허황되겠지만

선사는 이미 들어가 봐서 바닥이 없는 줄 압니다.

우물 타령하지 말고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

 

어딘가 가려고 할 때

우리는 그곳을 상상하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만 리 내로 풀이 없는 땅이나

바닥없는 우물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상상할 수 없으면 콱 막힙니다.

 

달마는 조사가 맞습니까?”

대광이 답했다.

조사가 못 된다.”

조사도 아니면서 뭘 하러 온 겁니까?”

그대가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럼 제가 깨치고 나면 달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는 달마가 조사가 아닌 줄을 알게 되겠지.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높은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도

일상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겨우 말문이 트인 중에게

대광의 법문이 목을 움켜 집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칼날 없는 칼입니까?”

삶거나 단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맞서 오는 자는 모두가 죽는다.”

 

칼날이 없는 칼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칼이라는 것이 다 만들기 전에는

쇳덩어리 자루 모양으로 있지 않나요?

하지만 그걸 칼이라고 할 수는 없죠.

 

맞서는 이가 없으면 어째야 합니까?”

역시 몰살을 당해야 한다.”

오지 않는 이가 어째서 모두 몰살되어야 합니까?”

듣지 못했는가? 모두 다 해치운다는 말을

 

오지도 않은 이들을 몰살시키는

칼날도 없는 칼을 들고

도대체 어떻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일까요?

두 사람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상상할 수 있습니까?

 

다 한 뒤에는 어찌 됩니까?”

이러한 칼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조산 스님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는 상상력을 펼칩니다.

그런데 다 하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 칼은 그렇게 있었습니다.

끝나야 알게 되는 칼날 없는 칼

상상이 되십니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모습입니까?”

눈을 까뒤집고 봐도 안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가사는 입었습니까?”

가사를 입었다면 사문의 모습이 아니지

그렇다면 무엇이 사문의 행입니까?”

머리에는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썼다.”

이 사람은 누구의 힘을 빌어 이렇게 되었습니까?”

종일 남의 힘을 얻어 쉬지 않고 다닌다.”

 

이 경지에 오면

드디어 선문답이 상형문자처럼 보였다는

제 하소연이 절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뭘 말하든 토끼 뿔, 거북이 털이니, 별 재간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머리에 뿔을 이지 않는 것과 몸에 털을 쓰지 않는 것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의외의 것을 말하려면

상대의 상상력의 범위 내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조산의 능력은 이 경계를 자유로이 다닙니다.

 

세간에서 최고의 보배는 무엇입니까?”

썩어 문드러진 고양이의 시체야말로 최고의 보배다.”

어째서 썩어 문드러진 고양이 시체가 최고 보배라는 겁니까?”

값을 매기는 사람이 없거든.”

 

상상할 수 없는 것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또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로 이 범위에서 돌아갑니다.

우리의 조건화된 생각 속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말로 알 수 없고

생각으로 닿을 수 없는 이것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무슨 수로 깨닫겠다는 말입니까?

상상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괴상한 말이 아니지만

상상을 넘어선 것을 목격하면

우리는 지각이 끊어져 기절할 수도 있습니다.

혼비백산의 지경을 경험해본 사람만 압니다.

 

한 승이 천동에게 물었다.

법을 응용하는데

끝이 없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천동이 말했다.

흡사 눈이 먼 사람과 똑같이 닮았다.”

 

날 없는 칼이

우물 속의 풀을 베는 바람에

만 명의 썩은 부처가 뒤를 돌아보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