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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기니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3. 3. 21:17

 

 

 

1. 소개

기니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Guinea, 기니 공화국입니다.

기니의 국기는 프랑스에서 독립하는 19581110일에 제정되었습니다.

도화는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세로 삼색기입니다.

색의 배치는 독립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당인 아프리카 민주연합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빨강, 노랑, 녹색은 범아프리카주의 선도국가였던 가나에서 출발했습니다.

 

기니의 초대 대통령인 아메드 세쿠 투레가

가나의 초대 대통령인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와 가까운 사이여서 세가지 색을 수용하게 됩니다.

 

범아프리카주의 3가지 색상은 빨강, 노랑, 녹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빨강은 독립투쟁에 흘린 피를 의미하고

노랑은 태양과 국가의 부를 뜻하며

녹색은 국가의 초목, 농업, 번영 등을 상징합니다.

 

기니는 아프리카 서부의 대서양과 인접해 있는 나라로

북서쪽으로 기니비사우, 서남쪽으로 시에라리온

동남쪽으로 코트디부아르 등과 인접해 있으며

서남족으로는 대서양이 있습니다.

 

기니는 대서양에 면하여 있는 해안 국가로 해안선 길이는 320km입니다.

국토면적은 25km2

비슷한 면적의 국가로는 영국, 우간다가 있으며, 수도는 코나크리(Conakry)입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130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이는 경기도 인구수와 비슷합니다.

 

기니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105억 달러

이는 세계 132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마케도니아, 차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니의 인구 구성은 아프리카계 흑인이 대부분입니다.

풀라족, 만딩카족, 수수족이 주요 인구 구성원이며 그 외에 소수 종족이 있습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시골 지역에 가면 아직 원주민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종교는 국민의 약 80%가 이슬람교도이며, 그 외에 기독교와 토착종교인이 있습니다.

 

 

2. 역사

기니 지역은 중세시대부터 서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해 온 말리제국과 송가이제국의 영향권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15세기 포르투갈인이 가장 먼저 해안에 도달하고

그 뒤 17세기에는 유럽열강국들의 쟁탈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니의 해안지대는 1814년 프랑스 세력권으로 인정되어

1849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는데요.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프랑스 침략에 대한 기니인들의 무력 저항은

20세기 초반까지도 격렬하게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기니뿐 아니라 서아프리카의 여러 지역들에 대해 세력을 행사해왔는데요.

당시 식민지 행정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기니를 세네갈에 속하게 하여 함께 지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91년 기니를 하나의 독립된 단위 식민지로 분리하여

1893년 프랑스령 기니로 명명했습니다.

그 뒤로도 한동안 기니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들과 더불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그동안 식민지배를 해오던 지역들에게

프랑스 공동체에 가입하거나 혹은 즉시 독립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기니는 19588, 프랑스 공동체를 탈퇴하고

같은 해 102일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기니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세쿠 투레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공화국을 선포하는 한편

기니 민주당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하였습니다.

 

투레 대통령은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과는 날을 세우는 외교노선을 취했는데요.

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기니 내에 있던 프랑스 자본을 전부 철수시켜버립니다.

 

프랑스 자본이 갑자기 빠져나가 버리자 기니의 경제는 악화일로에 접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레 대통령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소비에트 연방과 친교를 두텁게 하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원조와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세쿠 투레 대통령이 네 차례나 재임에 성공하면서 오랜 기간동안 일당독재가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19843월 투레 대통령은 지병으로 사망하고

대령 란사나 콩테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콩테 대통령은 기니 민주당과 국민의회를 해산시키고

25명으로 이루어진 국가재건 군사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그 후로도 잦은 군사 쿠데타와 과도 정부 시기 등 혼란기를 겪었으나

201010월 실시된 민주 선거 이후에

알파 콩테 대통령이 현재까지 직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정치 & 경제

기니의 정치 체제는 19901223일 제정된 헌법에 의해 대통령제 공화국입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7, 중임은 무제한입니다.

 

기니의 대통령 중 잘 알려진 인물로는 란사나 콩테가 있습니다.

1934년생인 그는 1984년부터 2008년까지 20년 넘게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1984년 당시 대령 신분의 란사나 콩테는

아메드 세쿠트레 대통령이 숨진 뒤 일주일 만에 쿠데타로 기니의 정권을 잡았습니다.

 

란사나 콩테는 1993년부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재집권하고

1998년과 2003년에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부정 선거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의 집권 중에는 경제난이 심화되어 야당과 군부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난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란사나 콩테는 대통령 자리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2007년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86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200812월 란사나 콩테는 사망하고, 이후 시간이 흘러

2010년에는 만딩고족 출신의 알파 콩테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알파 콩테는 기니 인민 단합당을 이끌고 있으며, 파리 대학교 정치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90년대에는 대선에 출마했지만, 란사나 콩테에게 패배했고

2010년 대선에 당선되며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국이 불안하여 2011년 반대파 세력의 공격이 들어와 건물이 파괴되고, 유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알파 콩테 대통령의 보디가드들은

검은 양복의 경호원 모습이 아닌, 무장 패트롤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삼엄한 경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니의 경제는 GDP 산업별 구성 비율로 보면

광공업과 서비스업이 각각 약 40%, 농업이 약 20%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노동력의 산업별 구성 비율은 농업이 70%를 넘습니다.

 

지역별로 구분해서 보면 저지대 지역에서는 코코넛 나무와 쌀, 바나나를 주로 경작하고 있으며

고지대에서는 카사바, 담배, 시어버터 등을 주로 수확하고 있습니다.

무림지역에서 경작하는 커피와 카카오, 야자수 등은

기니의 수출품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경작물들입니다.

 

이러한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도 불구하고

인광석과 철광석, 보크사이트 광산 등의 지하자원 개발이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기니는 세계 최대 보크사이트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량은 세계 2위 입니다.

1950년대에는 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액이

1960년대에는 5천만 달러

2000년대 들어서는 7억 달러로 증가하게 됩니다.

 

주요 수출품은 보크사이트, 알루미늄, , 다이아몬드, 커피 등이 있으며

수입품은 석유 화학 제품, 금속, 기계류, 의류 등이 있습니다.

주요 수출 상대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스페인, 한국 등이 있으며

주요 수입 상대국은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기니의 국경은 19세기 아프리카 분할 당시 서구열강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기니는 영국보다 조금 큰 크기로, 지리적으로는 4개의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해안 지역으로, 전형적인 열대우림 지대를 이루며

연 평균 강수량이 3000mm에 달합니다.

 

두 번째로 중부지역 기니는 높은 산지가 펼쳐진 고원지대입니다.

기온이 해안지대에 비해 낮고, 강수량도 적은 편입니다.

 

세 번째로 상부 기니는 니제르 강의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 유역의 사바나 지대 입니다.

기류는 대륙성을 띄어 강수량이 훨씬 적고, 일교차가 큰 것이 특징입니다.

 

마지막 4번째 지역은 삼림으로 울창한 기니로, 열대우림에 덮인 남부 산악지대입니다.

 

기니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비가 많은 국가 중 하나로

건기는 6월부터 11월까지, 우기는 12월부터 5월까지로 나뉩니다.

전 국토의 약 2%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

이마저도 남동부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국토의 나머지 대부분은 거의 초원 및 산림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입니다.

1960년 정식으로 기니에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했고

1962FIFA에 가입하여 국제 대회에도 출전해오고 있습니다.

 

기니는 서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하게 풍부한 음악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벰베야 재즈 그룹은 기니의 독립 이후인 1960년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프리카 특유의 포크 뮤직을 기반으로 하여 재즈와 아프리카 팝 스타일을 혼합한 곡을 다수 제작했습니다.

벰베야 재즈 밴드는 기니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로

2000년대 초반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등 세계 투어를 다니는 등

세계적으로도 기니의 음악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독립 이후 창립한 기니 국립발레단은 아프리카 최초의 발레단이었습니다.

1948년 프랑스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던 기니 출신의 학생들과

댄서, 안무가, 음악가 등이 힘을 합쳐 처음 발레단을 만들었습니다.

 

초기부터 정식 발레단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었으나

후에 드럼과 안무, 아프리카 전통 등이 함께 결합되면서 현재의 발레단으로 발전했습니다.

 

1952년 파리에서 정식으로 출범하였고

아프리카 댄스와 문화를 발레에 접목시킨 신선한 시도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끌었다고 합니다.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수준 높은 발레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기니의 음식 문화는 서아프리카 전통과 함께

오랜 기간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 식생활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쌀을 주원료로 하는 기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쌀가루를 쪄서 우리나라의 떡처럼 만든 푸푸가 있고

큰 냄비에 쌀, 토마토, 양파, 고추 등과 향신료를 듬뿍 넣어 끓여 만든 쌀요리인 졸로프 라이스가 있습니다.

 

기니의 음식은 해외에서도 제법 인기를 얻고 있어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 기니 음식 레스토랑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5. 인물

기니를 대표하는 유명 인물로는 모델 카투차 니안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흑인 모델 나오미 캠벨의 롤모델로도 유명한 카투차는

패션쇼에서 입센 로랑 등과 함께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1960년 기니 코나크리에서 태어난 카투차 니안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당시 대통령과의 마찰로 인해 망명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잠시 가족과 떨어져 말리에서 삼촌과 지내다가 12살에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17세에 결혼을 하며 첫 아이를 낳은 후 프랑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80년대에 접어들어 모델 일을 하며 경험을 쌓으며

이후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입센 로랑의 뮤즈로 알려지게 됩니다.

 

카투차 니안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한명으로 성장하게 되며

기니에서는 패션의 아이콘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패션쇼뿐만 아니라 TV, 영화로도 성공한 그녀는

1994년 모델 일을 중단하고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펼쳐나가게 되는데요

모델로서 성공한 경험과 명성을 바탕으로

여성 인권을 사수하기 위한 단체를 구성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특히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시행하는 종교의식인,

여성 할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국제적 활동을 전개하며 세계 관심을 받게 됩니다.

 

2007년 개인적인 할례 경험에 관한 책인 <도 마 셰에>

한국말로 <내 육체에>라는 책을 프랑스에서 출판했습니다.

카투차는 20082월 파리 세느강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프랑스에서도 큰 화제였는데요

이 당시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카투차가 그날 참석했던 파티에서 술을 마신 뒤

우발적인 사고로 세느강에 빠져 익사한 걸로 사망 원인을 추정했습니다.

 

기니피그는 기니에서 왔을까요?

통통하게 살이 오른 큰 햄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기니피그는

그 이름 때문에 기니와의 연관성에 대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니피그는 기니에서 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피그도 아니라고 합니다.

 

남아메리카 페루 지역이 원산지인 기니피그는

16세기쯤 네덜란드 탐험가에 의해 유럽에 도입되었는데요.

 

남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 네덜란드를 거치는 과정 중에

기니에서 왔다라는 걸로 와전되어 기니피그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영국에서 처음 기니피그를 판매할 당시 화폐 단위였던 1기니에 판매되었다고 해서

기니피그로 이름이 굳혀졌다는 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