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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4: 힉소스의 침입

Buddhastudy 2023. 4. 19. 20:27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고대 이집트는

상하 이집트를 거쳐, 1대 파라오인 메네스가 통치하기 시작하여

초반에는 고왕국 시대를 지내게 됩니다.

 

그중 제 4왕조에서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 왕까지

3대 피라미드가 지금까지도 그 유명세를 떨쳐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피라미드의 건축과

태양신 의 아들이라는 상징하는 신전 등을 짓는데는

아무래도 많은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제력 생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커다란 무덤을 짓기 위해

국가재정을 마구 남발하며, 노동력을 확보했는데

시간이 흘러, 5왕조가 될 무렵에는

점점 왕의 묘는 작아지게 됩니다.

 

이에, 다소 힘이 약해졌던 왕권을

다시 되살리고자 재정을 확보해야 했는데

국가에서 돈이 필요할 때 내세우는 방법은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밖에 없었죠.

고왕국 시대 후기인, 기원전 2345년 테티 왕은

이전 왕의 사위로 새로운 왕조인 제6왕조를 열게 되었는데

6왕조는 시작되자마자 그 힘이 미약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세금을 거두어가는 왕족에 대한 분노가 커지기 시작했고

예전만큼의 태양신과의 연관성에 대한 믿음도 약해졌죠.

결국 제6왕조의 첫 파라오인 테티왕은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지며, 경호원에게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어 어린 나이에 페피 1세가 즉위하게 되고

또 다시 살해 음모가 이어졌지만,

페피 1세는 암살당하지는 않고 5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죠.

 

하지만, 이제 이집트의 왕족의 힘은 유명무실하였고

이때는 호족들이 자신의 영토에서 왕과 비등한 힘을 가지게 되면서

권력이 지방 분권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힘이 지방으로 퍼지게 되면

언뜻 생각하기에는 중국의 후한 말

삼국지의 배경이 된 군웅할거의 시대나

혹은 일본의 전국시대인 다이묘들이 떠오를 법하지만

기원전 2300년경인 고왕국 이집트 시대에는

아직은 이렇다할 전문 군대가 없었습니다.

 

지방 호족들이라 하더라도

각기 자신의 세력을 하나둘 규합해가는 과정이었으며

전쟁을 벌일 때는 일반 농민들이 징병되었죠.

 

이집트 병사는 성과를 보이기 위해

초기에는 상대방의 목을 가져다 왔지만

차차 전쟁에서의 공적은 적군의 손을 잘라

그 수가 많은 자에게 상을 치하하였죠.

 

기원전 2200년경에 이르러 페피 2세 때는

땅에 떨어진 왕권을 되찾기 위해

일부러, 다른 곳으로 원정을 떠났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로 인해 왕의 힘은 점점 더 허수아비가 되었습니다.

 

왕이 이렇게 설 자리를 잃게 되자

각 지방의 호족들은 점점 노골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여

결국 페피 2세 이후로는 왕조의 통일성 자체가 무너지게 되죠.

 

이로써, 이집트의 큰 구분선인 고왕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간기로 접어들게 되는데

6왕조를 뒤이은 제7왕조에서는

혼란이 극에 달하여 재위 기간이 두 달에 불과한 파라오가

70명이나 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고왕국 시대 이후 혼탁한 왕조시기는

7왕조부터 제11왕조까지 200년간 이어졌으며

기원전 2000년에 이르러서야

11왕조 4대째 왕인 멘투호테프 2세가 대혼란을 잠재우게 됩니다.

 

 

고왕국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혼란했던 200년간의 세월을 제1중간기라 하는데,

이집트 역사에서는 이러한 중간기가 총 3번 나타납니다.

 

기원전 2040년 제1중간기를 수습한 멘투호테프 2세는

고왕국의 초기 이집트처럼

상하이집트를 재통일함으로써 중왕국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멘투호테프 2세가 재위한지 14년째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자신들이 정통 파라오라는 반란이 있었지만

이를 진압하는데 성공하여

멘투호테프 2세는 전쟁에 능한 파라오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집트 전체를 통일하고는 40년에 걸친 평화를 확립하게 되는데

이는 250여년간 지속되는 중왕국의 번영의 기초가 되었죠.

 

멘투호테프 2세는 수습과 통일이라는 업적을 남기는데

죽기 전에도 다소 획기적인 무덤을 시도하게 됩니다.

 

테베의 서안에 위치한 다이르 엘 바흐리라는 곳에

장제전을 건설하여

앞으로의 왕들의 무덤에 대한 초석을 마련하는데요.

 

다이르 엘 바흐리에는

훗날 이집트 왕가의 계곡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에는 투트모세 1세부터 람세스 11세까지

신왕조 시대의 왕들이 대거 묻혀있던 곳이기도 하죠.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은 가장 오래된 장제전으로

이전까지 있었던 피라미드들과는 차별된 디자인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며 산사태에 묻혀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550년 뒤에 신왕국 시대가 시작할 무렵인

18왕조인 하트셉수트 여왕이 이를 모델로 삼아

또 다른 장제전을 건축하여, 현재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죠.

 

중왕국 시대는 200년 이상 조용한 평화가 지속되는가 싶더니만

또 다시 다수의 권력자들이

서로 파라오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움이 일어났고

250년간의 중왕국 시대는 막을 내려

13왕조에 접어들면서, 2중간기가 시작됩니다.

 

2중간기에서는 고작 100년 동안

50명 이상의 파라오가 통치를 하는데

평균적으로 2년 정도 왕의 자리에 있었으며

짧게는 재위 기간이 4개월이나 7개월이기도 했죠.

 

이집트 내부에서 서로 왕 자리를 차지하는 내부 싸움질을 하며

정체되어 있는 이집트의 군사력과는 달리

외부에서는 헤까 크세웨트라는 민족이 나타나

우세한 군세력을 세우며 이집트를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어 헤까 크세웨트

이민족 통치자를 나타내는 뜻으로

다른 말로는 힉소스라고 했죠.

 

힉소스인들은 철제 무기와 각종 전차 및 도구들을 이용하여 이집트를 지배했습니다.

힉소스인들이 정확히 어느 민족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 의견이 분분한데

대체적으로는 히브리인 이나 셈족, 혹은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하던 종족으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의 중왕국이 시작될 무렵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중동 전역에 걸쳐 대규모 민족 이동이 있었는데

중동에서 새로운 지역인 이집트를 넘보게 되었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갈고 닦았던 전쟁 경험치가 한 수 위였던 거죠.

 

창과 방패로만 무장한 이집트인들에게

전차라는 신무기로 압도적인 힘을 보이고

이로 인해, 이집트 제15왕조는

100년간 5명의 힉소스 출신 왕들이

이집트의 파라오가 통치하게 됩니다.

 

 

힉소스인들의 출현은

처음부터 완전한 외부로부터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까 전에 말씀드렸던

이집트의 제2중간기가 시작되는 제13조 왕조 때는

100년 사이에 수십 명의 파라오가 교체될 정도로

정국이 불안한 상태였는데

그러는 사이 이집트 내부로는 힉소스인들이 하나둘 증가하면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져나간 거죠.

 

농사를 하는 사람부터, 술을 만드는 양조업자, 요리사 등의

다양한 직업에 종사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숫자가 늘어났고

그중에는 당연히 싸움을 직업으로 하는 용병 및 용병조직들도 불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이집트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이집트의 정치제도와 군사력에 대해서도 익숙해졌고

2중간기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이집트인들에게는 생소한 전차와 강궁을 이용하여

하이집트를 점령하게 됩니다.

 

나일강 하류에 있던 상이집트에서는

하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게 된

힉소스인들을 지켜보았는데

무서운 힉소스인들의 군사력을 보고서

싸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힉소스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상이집트를 유지해갔습니다.

 

이제 이집트의 새로운 주인은 힉소스인들이 되었으며

기원전 17세기 중반부터는

15왕조인 힉소스 파라오 살리티스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셰시 왕으로도 기록되기도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때의 파라오를

아라비아의 강력한 왕인 술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힉소스 파라오들은 15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는데

미리부터 이집트의 문화 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전쟁 무기와는 다른 이집트의 선진 문화를 배우며

복장과 전통은 그대로 이어받게 됩니다.

 

파라오의 이름들도 야쿠브헤르, 키얀, 아페피

이런 식으로 이집트 이름을 쓰게 되었죠.

 

또한 신앙에서도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를 성실하게 숭배했는데

이는 기존에 있었던 이집트인들과 섞여지내는데 무리 없는 통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는 힉소스 인들의 침입으로 전통 왕의 근간이 흔들렸지만

2중간기의 혼란했던 정국이 수습되는 작용도 함께 나타나게 되면서

이는 이집트 문화와 힉소스인들의 신형 무기가

같이 융합이 되며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전통적인 파라오가 이집트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멀리 떨어진 상이집트에서는 결코 받아드릴 수 없었고

그들의 저항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고대 이집트역사 네 번째 시간으로

피라미드로 흥했던 고왕국이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해보았는데요.

고왕국 시절. 4왕조 때는 왕족이 대를 이어가며 다수의 피라미드를 건축하여

후세에는 관광상품으로는 도움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국가재정에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세금으로 국가재정을 충당하고자 했지만

그로 인해 왕족에 대한 분노가 커지게 되고

그 결과, 화려했던 고왕국의 시절은 막바지에 이르렀죠.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권력다툼은 혼란 시기에 접어들어

1중간기를 보내다가

멘투호테프 2세가 통일하며 중왕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하지만, 멘투호테프 2세가 마련한 중왕국 기반은

200년 정도밖에 가지 못했으며

중간기 이후에 다시 혼란스러운 제2중간기가 찾아왔죠.

 

이때를 틈타 내부에서 많은 활동을 벌이던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하는 내용까지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