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22회 선택과 후회/측은지심

Buddhastudy 2013. 1. 17. 22:12

출처: BTN

  

지금 왜 자기 선택을 그대로 하면 되는데 자꾸 딴 데 기웃거리는 이유가 뭐에요? 그럴 때는 이것저것 다 해봐요. 그러면 하다 보면 원래 난 법의학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는데 딴 거 하다 보니 딴 게 더 좋아서 옮길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오? 왜 후회를 해? 자기가 궁금해서 이것저것 궁금해서 공부했는데 왜 후회를 해요? 그럼 다시 또 법의학 하면 되지. . 그거는 뭐 그러면 이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도 없고, 또 하고 싶은 건 무조건 안 할 필요도 없고. 거기서 적당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중학교 때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스님 만나서 이렇게 스님이 됐단 말이오. 그래서 굉장히 내 꿈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이것도 괜찮아요. 그러면 내가 과학을, 과학자가 되는 건 포기 됐지마는 내가 불교를 하면서도 종교를 하면서도 이 속에 과학적인 소양, 과학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같은 불교 안에서도 독특한 길을 가게 되는 거요. 다시 말하면 이런 비과학적인 요소를 확 걷어 내버린 불교를 한단 말이오.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영역을 개척할 수가 있는 거지.

 

그래서 자기가 관심 있는 걸 그만뒀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포기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직책이 승려지 과학자는 아니잖아. 그죠? 과학자가 아닐 뿐이지 과학자라는 직업은 포기됐을지 몰라도 과학적 관점이 포기된 거는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가 이걸 전공하다 이것도 관심 있고 이것도 관심 있고. 요즘은 융합학문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하나의 부분만 전공을 하지마는 다른 부분 연관되는 걸 많이 알아야 되요.

 

그래서 인문계라고 해서 자연계를 모르면 안 되고, 자연계라고 해서 인문적 소양이 없으면 안 돼요. 그래서 요즘은 여러, 전에는 막 세분화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여러 가지 통합하는 게 거꾸로 또 유행이 되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것저것. 그냥 잡다하게 이것도 관심 있고, 저것도 관심 있고, 춤도 하고 싶고, 노래도 하고 싶고,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이런 잡다한 게 아니라, 학문을 하다가 연관된 이웃학문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거는 괜찮아요.

 

그러면 아무래도 요거 한 가지만 하는 거 하고 이웃하는 거 하고 같이 하면 속도 면에서 조금 더디지. 그러나 나중에 가면 이런 것들이 기초가 돼서 더 자기전공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고 독특한 창조를 해 낼 수 있으니까 그걸 꼭 손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그건 심리적인 그냥 압박이지. 하나를 정해버리고 다른 걸 부전공으로 하면 되잖아. 자꾸 그렇게 망설이지 말고.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망설이지 말고. 법의학을 한다면 그걸 정해놓고 다른 거는 부차적으로 한다.

 

관점을 이렇게 주종을 나누면 되지. 두 개를 같이 나눠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하지 말고. 이걸 정해놓고 다른 거를 보조하면 되요. 그러면 덜 불안해 할 거 아니야.

 

그거는 자기가 어릴 때 엄마로부터 극진한 사랑 그걸 못 받아서 약간의 사랑고파병이 있어. 그래서 어떤 일을 해도 탁 자기만족이 안 돼. 그건 심리적인 병이오. 실제로 뭐가 부족해서 생긴 게 아니고. 밥을 먹어도 딱 배가 부른 거 같지도 않고, 사랑을 받아도 딱 만족이 안 되고. 어떤 공부를 해도 딱 만족이 안 되고. 늘 뭔가 한쪽 구석에 1% 2% 뭐가 덜 찬 거 같은 그런 심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건 무시하고 갈 수밖에 없어.

 

만약에 불교 신자 같으면 부처님 저는 잘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저는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기 긍정, 자기에게 만족함을 자꾸 표현하는 이런 자기 암시를 줘야 돼. 그러니까 그거는 앞으로 자기 평생 죽을 때까지 어릴 때 형성된 거니까 계속 남아있다고 봐야 돼. 거기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면 나중에 불안증이 생기지. 매사에. 사람에 대해서도 저 남자가 어떻게 도망갈까? 어떨까? 초조 불안해지고, 학업에 대해서도 시험 칠 때도 혹시 잘못될까 봐 불안해 지고. 매사에 그런 불안증이 발생하지.

 

그게 이제 어떤 장애. 연애하다 실패하거나 뭐가 잘못되면 정신 질환으로 일어나요. 그러니까 항상 그만하기 다행이다. ‘아이고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하는 만족함을 자꾸 표현하는 자기 암시를 줘야 돼. 학교 성적이 딱 나와도 아이고 그래. 그만하기 다행이다. 잘 나왔다.’ 이렇게 자꾸 생각해야 돼. 사람도 아이고 그만한 사람이 어디 있노.’ 자꾸 이렇게 자기에게 만족을 표현하는 끊임없는 연습을 해야 된다.   

 

 

 

Q2

자비심이 부족한 거는 뭐~ 그렇다고 남을 해치는 마음은 없잖아요. 세 종류가 있어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 남을 해치는 사람. 그다음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 뭐 남한테 특별한 이익도 안 주고 해도 안 주는 사람. 세 번째 꼭 있어야 할 사람.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면 첫 번째는 자기 아니잖아. 남에게 많이 해쳐요? 그래 1번만 아니면 돼요. 자기 생각할 때는 2번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이거지. 남한테 특별히 이익도 안 주고 특별히 손해도 안 주고 그냥 보통 사람. 보통 사람.

 

그러니까 첫 번째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을 사람. 있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 이것만 아니면 다행이에요. 1번이면 반성을 해야 되고. 2번이면 그냥 괜찮고. 3번이 되려면 자기가 조금 곤궁에 처해보면 돼. 자기가 길거리에서 거지도 한 번 해보고. 자기가 어려움에 처해보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데, 자기가 자라면서 아주 그렇게 정말 곤궁함에 처해 못 봤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밥을 얻어먹어 봤다. 그러면 밥 굶는 사람에 대해서 마음이 틀려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북한에 굶어 죽는다 해도 가슴이 찡한 거요. 내가 어릴 때 밥을 굶어본 사람은. ‘아이고, 먹는 게 그게 참 중요하다.’ 이 생각하는데. 어릴 때 밥을 안 굶어 본 사람은 누가 굶어 죽는다 해도 말은 들려도 마음에 아무도 다가오는 게 없어요. 굶어 죽는 게 뭐 어떤 건지 감이 안 잡혀요. 왜 굶어 죽는지.

 

그래서 애들이 가난하다.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잖아요. 작문을 쓰라니까. ‘우리 집 운전사도 가난하고, 우리 집 가정부도 가난하고, 우리 집 정원사도 가난하다. 그래서 우리도 가난하다.’ 이래 섰다잖아. 그런데 정원사 있고, 운전사 있고, 가정부 있는 사람이 가난할 이가 없잖아. 애가 그죠? 가난에 대해서 글을 쓰라니까 이렇게 쓴다는 거요. 그러니까 감이 안 잡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거는 자기가 자란 환경이 그러니까 그건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나 이제 자기가 이 세상 사람 어려움에 대해서 조금 이해를 하면 자꾸 이해하면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을 좀 해보라는 이유가 젊을 때 무전 여행하면서 밥도 좀 굶어보고, 집 없이 남의 집에 가서 방 얻어서 자도 보고, 음식도 먹어보고, 이래 보면 아~ 배고플 때 그게 얼마나 서러운지를 알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러면 배고픈 거에 대해선 딴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밥을 줘야 된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 첫째, 큰 문제 아니다. 두 번째 그런 거를 조금 키우려고 그러면 관세음보살 정언을 좀 많이 하세요.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은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하는 보살 아닙니까? 그죠? 관세음보살 부르면서 복 달라고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 부르면서 나도 관세음보살같이 마음을 내가 되겠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란 말이오. ‘우리 장사 잘되게 해주세요.’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말고. ‘아이고, 관세음보살은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다 들어준다는데, 그만큼은 안 되더라도 나도 조금 흉내를 내 봐야 되겠다.’ ‘따라 닮아야 되겠다.’ 요런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대자대비라 그러거든요. 그런 애틋함이 좀 생겨나죠.

 

그러고 이제 가게가 뭐 옆에 슈퍼마켓이 큰 게 들어오고 이러니까 이게 빈부격차인데. 이건 선거할 때 좀 잘해야 돼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이 돈을 번단 말이오. 그래서 이렇게 자꾸 돈 있는 사람들이 큰 규모의 어떤 쇼핑몰, 무슨 가게 이런 걸 자꾸 열어가지고 동네에 있는 작은 상권, 골목 상권, 재래시장을 다 죽여요.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지금 사회가 진행이 돼. 이게 신자유주의인데, 이 병폐가 너무 커져서 서민 생활이 자꾸 어려워져요.

 

요즘은 장사해서 돈 버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수준이 되고 갈수록 걱정이란 말이오. 이제 집세도 못 낼 형편으로 자꾸 가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전체가 양극화, 소위 빈부격차를 좀 해소시켜야 된다. 그래서 골목상권도 보전하고 작은 도시에 큰 지역 공동체 이런 대형 마켓 같은 거 못 들어오게 법으로 정해야 된다. 이런 얘기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벌어 먹고살 수 있도록은 해줘야 하지 않느냐.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은 다 문 닫고 나가야 되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은 이제 시대가 지금 그런 시대에요.

 

그러니까 개인이 해야 될 일은 그러니까 나도 어떻게 해야 된다? 약간 서비스를 더 개선해야 되고, 물건의 품질을 또 개선해 줘야 되고, 값도 개선해 줘야 되고. 그러니까 개인이 노력할 건 해야 돼요. 무조건 내 잘되는 걸 옛날처럼 해 달라. 이러면 안 되고. 나도 이 경쟁에서 좀 노력을 해야 된다. 서비스 경쟁을 해 줘야 된다. 아시겠어요? 가만있으면 안 되고. 뭔가 진열대를 좀 바꾸든지, 값을 낮추든지, 제품을 좋은 걸로 구하든지. 좀 더 인터넷 들어가 보고 좀 더 좋은 걸 구하든지. 뭔가 개선을 해야 된다. 그냥 막연히 가만 앉아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옆에 사람 자꾸 바꾸니까 상대적이잖아요. 우리 목욕탕, 동네 목욕탕 옛날에 비해 좋지마는 요즘 새로 낸 사우나탕 같은데 가보면 자기 동네 탕이 안 좋잖아. 그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하나 하고. 하나는 이런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그런 정책을 펴는 사람을 정치할 때 찍는, 서민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찍는 이런 운동도 필요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자비심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좀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