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82회 어르신들께 법회를 열어드리는 마음 2편

Buddhastudy 2013. 2. 14. 05:29

출처 YouTube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그릇 따라 양식을 얻는다. 이런 말이 있어요. 하늘에서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들은 다 제 그릇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 그러니까 이렇게 법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크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고 적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어. 그럴 때 그 덕이 부처님 덕이냐? 스님 덕이냐? 아닙니다. 다 자기 덕입니다. 자기가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은 기쁨을 얻고, 조금 열면 조금 얻고, 아직도 못 열면 얻음이 없고, 이렇게 되는 거요.

 

누가 부처님께 질문했어요. 이 세상의 학문은 수학이면 수학 같은 학문은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죽 공부를 해나가면 됩니다. 그것처럼 불법도 그렇습니까? 그랬어.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불법도 그렇다. 그러면 누구나 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다 해탈 열반에 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건 아니다. 그랬어. “아니 단계를 밟아서 차근차근하면 다 누구나 이를 수 있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왜 못 이루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랬어.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자네는 고향이 어디야?” 이래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부산입니다.” 그래. “자네 지금 서울서 부산 가는 길 잘 알아?” “잘 알죠.” “비행기를 타고 가면 어디 가서 어디로 가는지, 기차를 타고 가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승용차로 가려면 어떻게 가는지, 버스 타고 가려면 어떻게 가는지. 아니 제가 고향에 여러 번 다니는데 잘 알죠.” “그러면 어떤 사람이 부산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 자네한테 물으면 다 가르쳐 줄 수 있나?” “. 다 가르쳐 줄 수 있죠.”

 

그러면 자네한테 물은 사람은 누구나 다 부산을 가는가?” “아이 그거야 아니죠.” “?” “가르쳐 줬는데 안가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가르쳐 줬는데 저렇게 가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내 가르침도 그와 같다. 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수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깨달음에 이르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르침에 따라 가는 자고 있고 가지 않는 자도 있고. 또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어.

 

물론 부처님이 바른길을 일러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큰 기회에요. 그러나 그곳에 가고 안 가고는 각자 자기 몫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 여러분께서 기쁨을 얻었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공덕입니다. 부처님의 공덕도 아니고, 스님 공덕도 아니고, 자신의 공덕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기쁨을 얻었다면 첫째 자신에게 감사하고, 그러나 이런 기회, 이런 기회를 주신 부처님께 우리가 감사해야 된다. 그래서 이런 자기 변화, 자기 변화가 일어나면 내가 저절로 불법에 귀의가 됩니다.

 

~ 내가 부처님 법 안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 참 부처님 법문은 무상심심미묘법이라고 그러죠? 참으로 묘하고 묘한 법이구나. 참으로 기적을 불러 일으키구나. 그렇게 되면 자연적 불상을 금으로 만들었든, 은으로 만들었든 철로 만들었든, 동으로 만들었든 동으로 만들었든, 흙으로 만들었든, 나무로 만들었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든, 크든 작든, 그림이든 조각이든 별로 중요 안 해요. 부처님의 이름, 부처님의 형상만 봐도,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난다. 이 말이오.

 

그것이 부처님에 대한 귀의고 부처님 법 저절로 그 법에 귀의하게 된다. 그럴 때 그런 법을 이렇게 나에게까지 길이길이 전해주고 가르쳐준 스승에게 귀의하게 된다. 이게 불법승 삼보의 귀의다. 믿으려고 일부러 노력 안 해도 경험하면 저절로 믿어지고, 귀의하려고 노력 안 해도 저절로 귀의가 된다. 그래서 첫째는 이치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법문을 듣는 건 이치를 아는 거요. ~ 마음을 이렇게 써야 되겠구나. 마음을 이렇게 써서 내가 괴로웠구나.

 

이걸 고치면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겠구나. 이렇게 이치를 알아야 되요. 이치를 알면 해결되는 게 많아요. 그런데 이치를 알아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있어. 왜 그러냐? 오랜 습관 때문에. 그래서 정진을 해야 된다. 즉 기도해야 된다. 그게 정진이라고 이름을 붙이든, 기도라고 이름을 붙이든, 수행이라고 이름을 붙이든, 명상이라고 이름을 붙이든,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늘 바른길을 알았는데 현실에서 그렇게 되어 지지 않는 자기를 늘 체크하면서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이걸 우리가 참회라 그러죠.

 

이런 정신을 꾸준히 해야 된다. 매일매일 해야 된다. 그 정진의 힘이 있어야 이걸 이겨낼 수가 있다. 그럴 때 깨쳤다. 알았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기도를 안 하면 나도 모르게 점점점점 경계에 팔려서 현실에 물들어 버려요. 매일 정진을 저렇게 안 빼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가운데서 어느 날 알게 된다. 막 그냥 원하고 분하고 해서 뭐하냐? 이렇게 하면서도 안 놓치고 그렇게 해서 뭐하냐? 하다가 안 해버리면 그거로 끝이오. 그러면서도 해야 돼. 하면 어느 순간에 이 막힌 장막이 무너지면서 자기를 자기가 알게 된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건 첫째 매일 일어나서 정진해라. 몸을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화장하고 밥 먹이고 옷 입히고 하잖아. 그죠? 그것의 1/10 노력만 해도 이 행복을 가져오는 마음을 닦는 것, 이걸 위해서 한 시간 투여해. 눈 딱 뜨자마자 여기에 제일 먼저 투자를 해라.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정진을 하라. 그다음에 두 번째는 우리들의 이 번뇌의 쓰레기, 이거 머리에 꽉차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치우는 거 같은데 매일매일 어지러지는 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해도 해도 끝이 없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 같아.

 

그러니까 어느 날 날 잡아서 확 좀 치워 버려야 돼. 그게 바로 깨달음의 장이다. 그래서 한 45일 시간 내 가서 집중적으로 이 고의 뿌리, 번뇌의 뿌리가 뭔지를 살펴서 큰 쓰레기를 걷어치워 버리면 좀 정진하기가 쉬워진다. 그냥 방안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으면 엄두가 안 나요. 사람이 수행할 용기가 안 나. 해봐야 안 돼. 그런데 확 좀 치워버리고 나면 그래도 되겠다 하는 자신감이 좀 생긴다. 이 말이오. 그래서 깨달음장을 한 번 다녀와라.

 

매일매일 기도를 하는 사람도 다녀와야 되고, 다녀오면 그날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정진을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된다. 화장한다고 아름다워지는 거 아니오. 화장보다도 열 배 더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법이다. 예쁜 옷을 입는 거보다 귀걸이를 다는 거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거보다도 가장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법이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던 남편이 어떻게 했든, 아내가 어떻게 했든, 자식이 어떻게 하든, 부모가 어떻게 하든, 그건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그 가운데서 나부터 행복해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들을 시비해서 괴로워하다가 그들을 놔버리고 나 혼자 정진해서 내가 기뻐졌어. 그래서 기쁨을 말했는데 내가 아까 두 사람의 그 기쁨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고 또 있다가 괴롭겠다.” 이런 염려가 들었어요. 왜 그럴까? ‘내가 놓아버려서 기뻤다.’ 하는 것보다 그랬더니 남편이나 자식이 바뀌었더라.’ 요기에 또 재미를 붙이더라고. 얘기를 들어보면. 그 위험한 거요. 그러면 좀 더 바뀌었으면 하는 게 뒤따라 붙습니다. 알았어요?

 

지금은 조금 바뀌어도 고마운데 안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바뀌니 고마운데, 바뀐 걸 보고는 아이고 내기도 좀 열심히 하면 조금 더 바뀌겠다.’ 이렇게 돼요.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그게 바뀔 거 같은데 안 바뀌어. 그러면 또 성질이 납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자식이나 주변이 바뀌니까 기쁜 건 사실이지마는 그것으로 기쁨을 삼는 거는 위험하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금강경에 나 좀 구제해주세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네가 일체중생을 구제하라.” 이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러나 너가 일체중생을 구제해 마쳤다 하더라도 한 중생을 구제를 얻은 바가 없다. 이게 중요한 말이오. 남 바뀌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나에게 큰 고통이다. 내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나를 바꿔라. 나를 바꿔서 내가 참 행복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에 주위도 조금 바뀌는 거 같아. “이야 기적이 일어났다.” 요러는 순간 다시 마음이 딱 돌아가서 주위가 변하는데 거기 재미가 딱 붙어버려요. 그러면 정진을 열심히 했는데도 도로 괴로워져요. 요걸 유의해야 돼.

 

그들이 바뀌는 것은 그들의 문제야. 그들이 바뀌어도 안 바뀌어도 나는 상관 안 하는 공부를 해야 해탈로 가지, 상대가 바뀌는 거 그건 떡고물에 불과한데 그걸 바뀌는 걸 보고 기적이라고 재미 붙이면 도로 괴로워진다. 으음. 안 바뀌어야 좋으냐? 그런 얘기가 아니다. 바뀌든 안 바뀌든 그건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다. 바뀌면 자기 좋은 거고, 안 바뀌면 그건 자기 문제고 나는 상관없다. 이렇게 가야 돼. 그들이 안 바뀌는 것도 내가 영향을 안 받고, 바뀌어도 내가 크게 상관 안 하는 마음이 있어야 내 행복이 지속될 수가 있다. 이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늘 수행할 때 요게 위험해요. 처음에 상대 바꾸려고 하는 거를 자기 바꾸는 거로 돌리는 요게 참 어려운 일이데, 요거는 어이어이 하면 되요. 문제는 요렇게 되면 상대가 영향을 받아 따라 바뀌어요. 그러면 금방 거기 재미가 붙여. 이게 놀부심보인지 알아요? 불쌍한 중생을 살려주면 복 받는다. 아까 얘기했지. 그런데 그러니까 불쌍한 중생을 살려주면 복이 그냥 저절로 오는데 복에 눈이 반짝해가지고 미꾸라지 잡아다가 살려주고, 자라 잡아다가 살려주고. 이런 일 한다. 이거 놀부 심보란 말이오. 위험하다. 조심해라.

 

그러니까 그걸 내 공덕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야 돼. “바뀌어서 내가 좋은 거요.”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남편이 행복해서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지 남편 바뀌니까 내가 좋아서 이렇게 하면 안 돼. 그러나 어쨌든 남 바뀌는 거 가지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나 안 바뀌어야 된다. 이런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내 공부에 집중해서 살아야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세상이 이래 되고 저래 되고 자빠지고 엎어져도

 

남편이 죽어도 병이 나도 자식이 무슨 사고가 생겨도, 사고는 사고니까 처리를 하면 되고, 병이 났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되고, 때가 되면 죽으면 되고, 그건 그것대로 가고. 내 마음은 여일하게 갈 수 있는데. 자꾸 바깥에 재미를 붙여가지고, 아이고 요렇게 됐다. 저렇게 됐다. 요래야 좋다. 요래야 나쁘다. 요러면 그 인생이 끝날 날이 없어. 으음. 그래서 자기 공부에 더 집중해라.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다. 이런 일이 생깁니다. 알았어요? ~ 그러면 그동안에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정진 열심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