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화엄일승법계도(법성게)

윤홍식의 화엄일승법계도 1. 화엄, 일승, 법계도에 대해서

Buddhastudy 2017. 1. 24. 20:34



오늘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를 하게 되는데, 제가 이 화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화엄은요,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하다거든요.

 

이 우주를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하시려면 그 꽃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입니다. 한분 한분의 불성들이 꽃을 피워야 되요. 지금 여러분 내면에 꽃이 씨앗으로만 있지 않으십니까. 혹시? 그 씨앗이 꽃을 피우셔서, 한분 한분이 꽃을 피우셨을 때 이 우주가 장엄해 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한분 안에요, 여러분 한분 한분이 소우주거든요. 불교에서는요, 아까 이런 말씀도 제가 드렸지만,

 

대우주가 있구요,

거기에 라고 하는 마음이 있다.

이렇게 접근해가는 방식이 있고_유교식 방법

 

반대로 소우주 입장에서요,

라는 마음 안에 우주가 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_불교식 접근법

 

이게 불교식 방법이고 이게 유교식 접근법이에요. 이 두개는 원래 하나에요. 이렇게 보나 이렇게 보나 같아야죠. 그렇죠? 내 입장에서 우주를 보나 우주 입장에서 나를 보나 같습니다. 같다는 걸 아시면 되구요. 그런데 같지만 설명하는 방식이 틀리기 때문에 오늘은 이(불교식 접근법) 관점에서 보시는 겁니다.

 

우주도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대상일 뿐이에요. 여러분이 더 커요. 이 입장에서는요? 우주 속에 내가 있는 거고, 두 가지 관점을 다 가지셔야 되는데, 이건 오늘 관점은 불교 입장에서는 여기서 관점에서 일체유심조라는 게 나옵니다. 우주도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내 마음의 대상일 뿐이에요. 지금 저도 여러분 마음한테는 대상일 뿐이에요. 제 마음엔 또 여러분이 대상이고.

 

그래서 우리 각자 각자가 소우주에요. 자기만의 마음을 갖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마음이 바라보는 우주, 전체 우주까지 해서 사실 여러분의 세계에요. 그래서 예전에 왕양명 선생이 한 개인이 죽으면 그 사람의 천지가 사라진다.’ 이런 말을 한 게요, 뭔 얘기냐 하면 그 분이 느낀 우주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그 마음에 들어와 있던 우주가.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에 지금 바라보는 세계가 다 다르지 않나요? 배경 음악도 다르고요, 배경색조도 다 틀려요. 각자 자기만의 우주를 느끼고 살아가고 계시고, 그 우주의 근원엔 뭐가 있나요?

 

여러분이 느끼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나요? 여러분이 존재 했어요.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우주를 있게 한 근원이 됩니다. 소우주의 관점, 내 마음의 관점에서 우주를 보면요, ‘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에 이 우주가 존재해요. 이런 관점에서 보셔야 됩니다. 불교는.

 

그래서 일체유심조다. 내 마음이 저 물건을 만들어냈다. 그게 아니고요, 저 오감, 감촉, 보고 듣고 맛보고 하는 이 모든 만물을 이루는 오감의 요소가 여러분 마음에 이미 있던 거더라는 겁니다. 그 마음의 요소들이 조합을 해서 어떤 모양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만지게 하는 겁니다. 다 여러분 마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이게 일체유심조입니다.

 

뭐랄까요, 검은 비닐봉지를 제가 손에 씌어서 그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씌운 다음에 제가 물건을 다 만지면 다 뭘까요? 비닐봉지 느낌이죠. 맛은 다 다르지만. 여러분은 마음으로 우주를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뭘 보고 듣더라도 결국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만 보고 계세요.

 

여러분 참나는요, 여러분 마음밖에 못 봐요. 이해되십니까? 마음으로 우주를 경험하시는 데, 객관적 세계가 없다하면 가짜고요. 객관적 세계가 있더라도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을 통해 우주를 해석하고 계시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다 여러분 마음의 문제에요. 실제로는. 불교식으로 볼 때는.

 

그래서 지금 시간도 여러분 마음에서 분리되어서 있을 수 있나요? 시간성을 느낀다는 건 여러분 마음 아닌가요? 지금 공간을 느끼는 것도 여러분 마음이죠. 우주의 모든 게 여러분 마음의 작용일 뿐이에요. 마음에 없는 건 여러분이 인식할 수가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불교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화엄일승법계도는 특히나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우주를 아주 멋지게 해석한, 화엄경 있죠? 이 화엄경을 요약한 겁니다. 화엄경의 핵심 가르침을 요약해서 화엄일승법계도라는 그림을 그리셨구요, 이게 그림이죠. 그림이고 요 안에 있는 거는 게죠. 이거는 법성게라고 합니다. 안에 있는 이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이렇게 나가는 이 글은 법성게. 하나의 게명이라고 해서 게라고 하고, 이 그림 자체는 도장의 모양을 하고 있죠. 그래서 무슨 인, 도장 인자를 써서 인이라고도 하고,

 

보시면요 2페이지 옆에 보시면 있죠. 화엄일승법계도는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 화엄의 세계를 화엄의 세계를 말합니다. 그런 일승의 진리, 일승은요, 보살승이 있고 그 전에 보살승이 있고 성문승 독각승 삼승이 있었거든요.

 

성문승이 제일 어떤 스케일이 작고요,

독각승이 좀 더 그릇이 크고,

보살승이 그릇이 더 큰데,

 

이 삼승이 결국은 부처되자는 거다 해서 일승이라고 풉니다. 일승 그러면 그냥 부처되는 오직 한길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이 왜 나왔냐하면요, 결국은 보살승이에요. 일승이.

 

그러니까 그 전에는 보살승이 소승불교에 대항해서 나왔잖아요. 소승불교의 아라한에 대항해서, 소승에 대항에서 보살승이 나왔죠. 소승이 둘로 쪼개지면 성문승 독각승 그럽니다. 성문승은 소리 들은 양반이니까 부처님 얘기 듣고 공부하신 분들이고, 독각승은 부처님을 안 만났는데, 혼자 12연기를 깨달은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더 역량이 더 탁월한 분들이죠.

 

그래서 이 두부류가 소승이에요. 이 두 분들은 어차피 남한테 잘 가르쳐주지 않아요. 각자 책임을 주장하시는 분들이고, 대승은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뒷사람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신 분들인데, 결국 이 소승의 대항해서 보살승이 나왔는데, 일승이라는 건 결국 뭘까요?

 

일승은요,

보살승하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원래는. 소승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공부하가다 중간에 멈춘 거지, 원래 소승과 보살승이 결국 한길이고, 성문들도 다 보살되어야 주장을 해버린 거예요. 회통시켜 버린 거예요. 그래서 일승 그럽니다. 그래서 결국 부처되자는 거고, 큰 보살되자는 거구요,

 

그래서 화엄, 여러분 한분 한분이 꽃을 피워서 우주를 장식하자는 건데 보십시오. 제가 잘 그리는 그림인데요, 여러분에게 제가 늘 에고 그러죠. 요거는요? 참나. 꽃을 지금 여러분 참나가요, 에고 등살에 못 이겨서 참나가 전혀 제대로 된 발원이나 능력을 못 보이고 살아가신다면, 꽃을 못 피운 거고요, 씨앗으로만 있습니다.

 

씨앗은 있으세요. 누구나 양심, 참나가 있어서요, 남 보면 불쌍하고 자비의 마음도 일어나고, 어떤 일 들으면 옳다 그르다 반야의 지혜가 나와서요, 옳은지 그른지 아실 겁니다. 지금 여기 제 얘기 들으시려고 오신 분들 중에 나는 뭔 얘기를 들어도 판단을 전혀 못해.” 하는 분 안계십니다. 들으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오신 거죠. 반야가 계세요. 그러면 그 반야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참나에서요.

 

참나는요, 전지전능한 자리이기 때문에 참나가 전능하다라는 게 간단한 게 여러분 땀구멍을 여러분이 열고 디 닫으세요? 추우면 땀구멍 닫히고 더우면 열립니다. 항상성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여러분이 하시는 게 아니에요. 누가할까요? 모르는 힘이 해요 이걸. 여러분 무의식도 의식도 다 그 근원에는 초의식에 해당되는 참나가 있어서 굴러갑니다.

 

이 참나는 정확히 알고 있어요. 더우면 열어야 되고 추우면 닫아야 된다는 걸. 이게 안 되면 여러분 몸이 굴러가지를 못해요. 즉 우리는 모두 이 참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데요, 깊이 생각을 안 해봅니다. 다 에고, 내가 마음대로 되어서 될 줄 알아요. 그래서 그 얼마 전에 신명사도.. 했지만 거기서 나오죠.

 

에고는 간신배, 에고가 자기주장만 하면 간신배가 되고, 훌륭하게 굴면 제갈량, 결국은 신하일 뿐이고, 참나가 임금인데 참나 말을 안 들어버리면. 여러분 에고가요, 에고가 주장을 하고 있으면 여러분 마음은 지금 마음의 왕국은 간신배가 정권을 잡으신 거고, 참나 주장대로 참나의 지혜와 능력이 밖으로 뻗어 나오면, 여러분 마음의 왕국은 주인이 제대로, 주인공이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 그런데 보십시오. 육바라밀로 살짝 들어가 볼 게요. 전지전능하면 이게 기독교에서도 쓰는 말이니까, 같은 얘긴데,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이 전지를 뭐라고 하죠? 반야.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닦아야 되는 이유가, 참나는 원래 지혜롭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실은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다 판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판단이 안 될까요? 에고가 이 반야를 가려버려요. 뭐로요?

소지장이라고 하는데요, 소지의 장애, 지적인 장애라는 뜻입니다. 아는 것에 있어서의 장애인데, 이걸 요즘말로 무지 그러면 됩니다. 이 에고가 무지를 가지고 있어서요, 지혜를 가려버려요. 뭘 정확히 보려고 하면요, 확 흐려버려요. 고정관념이나 이런. 에고가 지금 여러분이 참나에 있다는 거 선명하지 않으신 분 많죠. 뭐가 가리고 있을까요? 당장 간단합니다. 지혜는. 여러분 이거 만드는 원리 아시겠어요? 돌아가는.

 

요거 사실은 불교적으로 볼 때 법, 법이라고 하죠. 불교에서요, 만물을 다 법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대게 중요한 말인데, 잘 모르고 쓰세요. 만법유심 그러면. 만법이라는, 왜 물건을 법이라고 할까요? 물건들을 법이라고 해요. 불교에서. 법은 법칙에서 온 말입니다.

 

이 물건들은요, 얘는 얘대로의 법칙을 가지고 있죠. 얘는요, 얘들의 법칙이 있죠. 플라스틱은 다 플라스틱대로 법칙이 있어요. 우주 만물이 다 정보 덩어리라는 거 아시겠어요? 01로 다 컴퓨터를 다 만들어내듯이,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다 짜듯이, 우주도 그런 간단한 01의 음양으로 만들어진 법칙들로 만들어진 정보의 세계입니다. 지금.

 

만물을 법이라고 부르는 건요, 우주만물이 결국 정보, 정보를 가지고 각자 서로 구분되고 있다는 겁니다. 얘가 파란색을 띄게 된 것도 법칙이 달라서예요. 조합되는 방식이 다 틀려서죠. 결국 정보일 뿐이에요. 그리고 정보인 안에. 이 법은요, 이 만물을 말하는 법은, 우주의 그 법신 할 때 우리 참나의 법이랑 둘이 아닙니다. 이해되십니까?

 

이 플라스틱을 이루고 있는 그 법이랑, 우리 참나를 이루고 있는 법이 다를까요? 우주에 꽉차있는 이 법이? 그래서 이 법은 사실 하나일 뿐이에요. 우주에. 우리가 지금 낱개로 구분해서 보고 있을 뿐이죠. 관통해 있는 우주법칙이 둘일까요? 우주를 굴리는 법칙이? 그래서 그걸 법계라고 합니다. 법의 세계. 이러면요, 그대로 이건 참나의 세계에요. 법계. 우주법계 그럽니다. 우주법계는 참나이자 온 우주가 다 참나라는 겁니다. 온 우주 돌리는 공식이요, 다 신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온도 신성하다는 거예요. 색깔도 신성해요. 소리도 신성하고 여러분의 욕망마저도 신성해요. 욕망도 일정한 법칙으로 굴러가시죠. 그 법칙은 신성해요.

 

우주 만물이 신성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데, 아무리 좋은 물감도 그림을 잘못 그리면 추하듯이 우리한테 혐오감을 일으키듯이, 좋은 느낌을 주게 법을 만들어갈 수도 있고, 나쁜 느낌을 주게 법을 펼쳐갈 수도 있을 뿐이지, 법 자체는 신성하다는 게 법계의 이론입니다.

 

그래서 이런 법이 우리 참나 안에 어디 있겠습니까? 참나가 법계에요. 참나의 법칙들이 있으니까 에고도 참나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굴러가고, 우주 만물도 다 그 법칙대로 굴러가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법칙에 대해서 모를까요? 알죠.

 

그런데 왜 여러분은 지금 이거 보시면 모르세요. 참나는 여러분 참나가 이거 돌리는 참나 일텐데 왜 모르시나요? 갑갑하시죠? 이게 무지입니다. 여러분한테 있는 소지장이에요. 뭔 사물을 봤는데, 선명히 안 읽히면 소지장이 있는 겁니다. 그게 고정관념이건 뭐건 때가 껴서 그래요. 참나에 뭐가 에고에 때가 껴서 사물이 정확히 안보여요.

 

선악을 판단해 보시라.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선악판단,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명확하게 하고 계시나요? 잘 안되시면 소지장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지장만이 아니라 하나 더 있어요. 이 전능이요, 육바라밀 중에 반야 빼면 나머지 5개가 이 능력에 관한 겁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능력인데 이 능력은요, 바라밀을 방해하는 게.

 

왜 여러분은 남한테 보시를 못해줘요? 한글로 쓸게요. 번뇌장 때문이에요. 이걸 아집이라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요. 너무 나를 사랑해서 나한테 방해가 되는 건, 해가 되는 건 하기 싫어요. 그래서 보시도 하기 싫고, 지계_계율을 잘 못 지켜요. 유혹이 오면 넘어가버려요. 인욕_못 참아요. 나한테 불리하다고 그러면.

 

그래서 늘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에 선정도 안 되고요, 조금만 틈이 보여지면 쉬고 싶어요. 나태해지는 정진의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방해하는 이런 심리적인 장애입니다. 이거는. 번뇌라는 게 심리적인 장애고, 지적인 장애, 심리적인 장애가 여러분 에고에 꽈 끼어 있기 때문에, 참나는, 지금 여러분의 참나는 퍼팩트하실텐데.

 

지금 여러분 땀구멍 열고 닫고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여러분 마음에서 이 참나는

보시_남한테 베풀어라고 하고,

지계_룰을 지켜라, 원칙을 지켜라라고 하고,

인욕_참아라. 너 개인적인 어떤 분노는 좀 참아라. 공적인 분노가 아닙니다. 바로 잡을 건 바로잡아야 되잖아요. 그런 게 용기인데, 너 개인적으로 남한테 원망하는 그런 것들 참아라. 너한테 손해 왔다고 화내고 그런 거 하지마라. 하는 겁니다.

정진_나태, 게으르지 마라.

 

참나가 계속 명령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데, 여러분 지금 그대로 사시나요? 아니면, 이 두(무지, 아집) 가지 중에 두 가지의 협업으로 인해 여러분 마음이 그렇게 안 좋으신 겁니다. 뭘 보면 안 보인다. 반야바라밀이 부족합니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안 돼요.

 

남한테 좀 베풀려고 했더니 그렇게 속이 시끄럽고, 베풀고 난 뒤에도 찜찜하고, 뭐가 지금 깔끔하게 처리가 안 된다. 일이. 내 참나는 퍼펙트 하다는데, 나는 이게 안 나온다. 하면 무지랑 아집 때문입니다. 번뇌장, 어려운 용어로 원효대사가 이거 이장의라는 책을 썼어요. 두 가지 장애에 대한 어떤 뜻, 해서 이장의라는 책이 있는데, 그게 이 두 가지만 푼 겁니다.

 

모든 불교경전에서 번뇌장 소지장에 관련된 것만 뽑아서 분석을 한 겁니다. 인간한테는 이 두 가지 장애 밖에 없어요. 이게 종교를 초월합니다. 유교도 이거고, 기독교도 이거에요. 지혜와 사랑, 어느 종교나 지혜와 사랑을 얘기하는 게, 참나가 원래 지혜 사랑 덩어리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왜 지금 안 나오실까요?

 

그래서 영성지능이 높다는 건요, 신통력 잘하는 게 아니라, 이 참나가 조금 더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요? 선악을 잘 가르고요, 시비판단을 잘하고요, 남하고 공감능력이 좋고, 원칙을 지켜줘요. 책임감도 강하고. 신기하죠.

 

요게 인간의 지금 뇌로 분석하면요, 전두엽이 발달된 분들은 이걸 해요. 몰입을 잘하고, 집중력, 선정능력이 좋아요. 집중력도 좋고, 공감 능력이 좋고, 이건 과학적으로 다 증명이 된 겁니다. 전두엽이 건강하신 분들은요, 우리 뇌의 사령탑이거든요. 요놈이 건강하면 충동억제도 잘해요. 즉 인욕도 잘해요. 보시_남한테 공감도 잘하고요, 지계_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이 강해요. 그리고 뇌가 더 활성화된 상태라 판단도 참 잘합니다. 사리판단을. .

 

바라밀이 실제로 다 일어난다는 게 지금 뇌 과학으로 연구하면 다 나옵니다. 이 뇌가 건강할 땐 나와요. 그러면 뇌가 언제 건강해지는지 실험해봤더니, 명상할 때 제일 빨리 전두엽이 건강해져요. 재미있죠.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이 허황된 얘기가 아니라, 지금 현대 의학이나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얘기들입니다.

 

이게 따라오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요, 고대 인도건, 희랍 쪽이건, 이쪽 아시아건, 명상을 좀 해보면 이게 나오니까, 명상을 잘하는, 마음 컨트롤 잘하는 분들이 자꾸자꾸 더 파다보니까, 이런 이론들이 각자 대로 문화권마다 전개된 것뿐이지, 결론은 지혜와 사랑입니다.

 

남하고 인간관계를 잘 맺고, 지혜를 잘, 선악을 판단을 잘하는 거, 이게 공부의 전부고, 제가 드리고 싶은 것도 그거고요, 이게 여러분 꽃을 피운 거라는 겁니다. 이 얘기 드리려고 한 거 에요. 화엄. 여러분이 우주를 장엄하게 장식하고 싶으시면 여러분의 우주에서 꽃을 피워보세요.

 

여러분이 사는, 여러분이 느끼는 세계에서 여러분이 주체가 되어서 지혜와 자비가 드러나게 해주시면요, 여러분 한분 한분의 우주가 찬란하게 꽃을 피우면, 온 우주에 꽃이 만발한다는 건 모든 중생들이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꽃피우는. 그거를 보고 그린 겁니다.

 

화엄경은요, 사실 지금 꽃 안 피우셨잖아요. 그런데 왜 꽃을 피웠다고 경을 썼을까요? 여러분 안에 참나가 있는 거 봤으면요, 씨앗 봤으면 나무 봤다는 겁니다. 화엄경 사상은. 씨앗 속에 나무가 다 들어있죠. 여러분한테 씨앗이 있다는 건요, 여러분이 이미 부처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서 불성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부처가 된 모습을 화엄경을 쓰신 분은 다 보는 거예요. 이해되십니까? 그러니까 온 우주가 꽃 피워버렸다는 그런 말도 하는 겁니다. 아직 꽃 안 피웠는데. 겨울에 꽃밭에 가서 보면서, 꽃이 만발한 여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게 화엄경의 세계관이에요. 왜냐?

 

씨앗 속에,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는 게

화엄 세계관이에요.

 

왜냐? 여러분이 지금 부산가는 경부고속을 타고 달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부산 도착하는 게 당연한 일이죠. 당연하기 때문에 여기 화엄경에서는 시간을 초월해가지고, 결국은 이 원인은 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이 얘기하는, 그런 경입니다. 그래서 화엄을 쓴 법계도도 그런 세계관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맛만 살짝살짝 보여드리는 거예요.

 

지금 다 나왔죠. 꽃을 피우면 화엄이고 이게 법계에요. 진리의 세계는요, 여러분이 육바라밀 잘할 때 만들어져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씨앗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미 부처로서의 자질이 충분해요. 이걸 꽃을 피우시기만 하면 되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지금 여러분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이 법계의 이야기는 여러분 마음의 얘기고, 화엄_여러분이 꽃을 피우셔야 되고, 일승_결국 이거해서 뭐하자는 거냐? 부처님 되자는 겁니다. 큰 보살 되자는 겁니다. 부처와 보살의 좀 차이 같은 건 뒤에 따로 제가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