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70) 전법

Buddhastudy 2010. 9. 2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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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것은 뭐 특별한 강연이 아니고. 여러분께서 살아가면서 평소에 여러 힘들었던 것. 또 의문이 있었던 것. 이런 것들을 질문하신다면 그런 것을 소재로 해서. 함께 어떻게 하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이런 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누가 먼저 질문하실 분 계세요? 다 망설여 지나봐요? . 그러면 여기 종이로 입구에서 써내신 분 것부터 먼저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얘기하는 중에 또 질문할게 있으면 하시기 바랍니다.

 

Q

이게 소위 말해서 자격지심이라는 거에요. 알았어요? 무슨 병이라고? 자격지심. 그러니까 저 집 애는 서울대학 갔는데 나는 애도 대학도 못 보내놓고. 내가 뭐 이거 법문 들으라고 권유할 자격이 있겠느냐? 직장생활도 저 사람은 대인 관계도 좋고 하는데. 내가 저보다도 못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느냐?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인생을 자꾸 남을 보고 비교해서 지금 살고 있다 이거요. 그래 아침에 쭉 일어나서 동네 가서, 또는 도시에 가서 각자 얻어서 그 자리에서 안 먹고 거지가 아니죠. 그죠? 그러니까 얻어는 먹더라도 품위는 지켜야 된단 말이오. 쭉 얻어가지고는 다시 수행도량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죽~ 둘러 앉아서 먹는단 말이오. 밥을 먹다가 부처님이 이렇게 봤어요. 이렇게 보니까. 아난다존자는 허연 쌀밥을 그릇 가득히 담아와서 먹고 있어요. 그런데 마가섭존자는 아주 요즘 말하면 꽁보리밥을 조금 얻어와 가지고 요렇게 먹고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아닌다존자에게 물었어. ‘아난다존자여. 존자는 어떻게 걸식을 합니까?’ 아난다존자가 . 부처님 저는 부잣집만 찾아 다니면서 걸식을 합니다.’ 그랬어요. ‘왜 그래요?’ 하니까. ‘부처님 제가 가난한 집에 가면 그들은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제가 왔으니까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고. 큰 고뇌에 빠집니다. 저에게 줘버리면 그들은 굶어야 하고. 또 안주게 되면 수행자가 왔는데 안 줬다는 죄책감이 생겨서. 저는 그런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는 부잣집에 가서 다만 걸식을 할 뿐입니다.’ 일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래 다시 마가섭존자에게 물었어요. ‘존자여 당신은 어떻게 걸식을 합니까?’ 그러니까 마하가섭존자가 부처님 저는 가난한 집만 찾아 다니면서 걸식을 합니다.’

 

왜 그렇소?’ 하니까. ‘가난한 사람은 남에게 보시를 할 마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그래서 지난 생애 복을 못 지어서 이 생에도 가난해지고. 이 생에 또 어때요? 복을 짓지 못하니까 또 다음 생에 가난해 지고. 그래서 이 삶이 되풀이 됩니다. 저는 그들에게 복전이 되고자 합니다.’ 나는 그들이 복을 지을 수 있는 복밭이 되고자 한다 이거요. 내가 비록 음식 받아먹으면 탁하고 나쁘지만은 그들에게 복전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가서 밥을 빌므로 해서. 다만 그들에게 탁한 음식이라도 한 숟가락 저에게 제가 받으므로 해서 그들에게 복을 짓도록 만든다. 이것도 일리가 있어요 없어요? 일리가 있죠. 그때 부처님이 그 얘기를 들으시고 수행자들이여. 앞으로 걸식은 이와 같이 해서는 아니 됩니다 했어요.

 

걸식을 할 때는 이렇게 분별을 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내서 아~이래서 이래야 된다. 저래서 저래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차례로 밥을 비십시오. 그 집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밥을 주든 안주든 그런 것 따지지 마라. 순서대로 밥을 비십시오. 이걸 차제걸이라 그래요. 금강경에 차제걸이 있습니다. 入舍衛大城입사위대성 乞食於已城中걸식어기성중 次第乞已차제걸이 이런 말이 있어요. 차례로 밥 빌기를 마치시고. 차례로 빌어라. 달라고도 하지 말고. 뭘 달라고도 하지 말고. 줘도 고맙다 그러고. 안 줘도 고맙다 그러고. 많이 줘도 고맙다 그러고. 적게 줘도 고맙다 그러고. 이걸 줘도 고맙다 그러고. 저걸 줘도 고맙다 그러고. 거기에 음식에 분별심을 내지 마라. 이게 차제걸이요.

 

전법을 할 때는 팜플렛을 나눠준다고 할 때도. 또는 아파트에다 자기가 만약에 팜플렛을 나눠준다 하더라도. 아 요 집은 십자가 붙었네. 요 집은 안되겠다. 만 자 붙었네. 요 집은 되겠다. 이러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길거리에서 나눠줄 때도 꼬라지 딱 보고. 어 저거는 안되겠다 빼고. 이러면 안 된다 이거요. 받고 안받고는 누구 문제다? 그들의 문제다 이 말이에요. 받아도 고맙고. 안 받아도 고맙고. 그런 것처럼 전법을 할 때는 저 사람은 나보다도 행복할거다. 그런데 내가 무슨 전법을 해? 아 저 사람은 괴롭구나. 내가 전법을 해야지. 이런 얘기는 하지 마라 이 말이오. 다만 이 좋은 법문을 뭐해라? 전해라. 받고 안받고는 누구의 문제다? 그들의 문제다. 그들이 괴롭든 괴롭지 않든 그런 거는 따질 필요가 없다. 이 법문을 듣고 좋아해도 기쁜 일이고. 좋아하지 않아도 기쁜 일이다. 다만 이렇게 해라. 그러니까 분별심을 내지 마라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