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17)

지금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

Buddhastudy 2018. 11. 16. 19:37


2010년 나는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유럽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법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 유럽인이 아니면 구사하기 힘들다는 라틴어를 잘해야 한다.

 

우연한 계기로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과연 학생들이 라틴어에 관심이나 있을까?

수업 첫날, 나는 24명의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이 친구들이 라틴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두 번째 학기에서는 67명의 학생들이 라틴어 수업을 들었다.

그 다음 학기부터는 연세대, 이화여대를 포함한 서울 시내 다른 학생들

그리고 학생이 아닌 일반인 청강생들까지 내 수업을 찾아왔고

매 학기마다 200~300명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실생활에 별 소용도 없을 것 같고, 난이도는 최고조에 달하는 라틴어 수업에 많은 이들이 뜨겁게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선배가 이 수업이 좋았다고 해서요.”

그냥 있어 보이려고요.”

 

가장 많이 나온 대답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교수님의 강의는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니라,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게 느껴졌어요.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어 유익했어요.”

 

세네카의 <도덕에 관한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도 많이 배웠다.

지난 5년 동안 강의를 하며 배운 것들을 라틴어 수업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한 마음가짐 하나를 말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겸손한 사람 되기

 

성토마스에 따르면,

겸손은

내가 할 수 있는 것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

다시 말해

나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실패의 경험앞에서 쉽게 좌절하고 비관한다.

이것은 실패한 나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인데,

한 두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이지

온전한 내가 아니다.

따라서 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이는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실패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라고 여기지 않는 것,

오히려 나 자신의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것,

이것이 겸손함이며 제대로 공부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로 습관은 하비투스(Habitus)라고 한다.

하비투스라는 말에는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수도사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밥을 먹는 것을 습관화했다.

공부 습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가 잘 안 나와도, 주변 사람들이 잘 안 될 거라고 폄하해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그냥 하는 거다.

 

나는 학생들에게 주변 잡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냥 쌩 까라고 적나라하게 충고한다.

 

쌩 까고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아 일정 시간을 공부하면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수업의 내용과 용어조차 못 알아듣던 로마에서의 내 석사 과정도 그렇고, 변호사 시험도 그렇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수두룩했고, 그래서 멈추고 싶을 때가 비일비재했지만, 꾸준히 체계적으로 학습량을 쌓은 나의 두뇌는 결국 화수분이 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이 라틴어를 꼭 말해주고 싶다.

Non efficitur ut nunc studeat multum,

sed postea ad effectum veniet

지금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

 

그러니까 하비투스,

쌩 까고 그냥 계속해라!

한동일, <라틴어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