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48회] 무유정법(無有定法)

Buddhastudy 2019. 11. 14. 20:50


() 삼법인(三法印)은 왜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은 구글 찾아보라고, 안 그러면 네이버 검색하라고 하는 얘기인데

그 말 떨어지자마자 거기에 해당되는 질문을 하세요.

 

그런데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질문이 무슨 질문인지를 몰라요.

질문자체가 무슨 질문인지... 무슨 질문인지 알아들은 사람 손 들어봐요.

지금 한 명도 없어.

그러면 500명 모였는데 자기 혼자를 위해서 해야 되는데 할까? 말까?

 

그래도 질문 한 거니까 말씀 드릴게요.

이런 말 들어봤어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되느냐? 손가락을 봐야 되느냐?’

이런 얘기 들어봤어요?

달을 봐야 되요? 손가락을 봐야 되요?

그래도 대부분 어느 걸 본다? 손가락을 본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말은 손가락 같은 거요.

그러면 말을 할 때는 사람은 그 말에 뭔가 마음을 담아서 표현을 하는 거요.

그럴 때 말에 집착하면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고

그 말하고자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읽으면 뭐를 보는 거와 같다?

달을 보는 것과 같다.

 

, 그런 게 핵심인데

부처님이 대답을 할 때 어떤 식으로 대답하는지, 한번 보세요.

 

어떤 사람이 와서

서울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됩니까?” 부처님이

동쪽으로 가라그랬어.

알았습니다하고 그 사람이 갔어.

 

옆에 있던 제자가

, 서울 가는 방향은 동쪽이구나. 알았다. 나도 안다.” 다음 사람이 와서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내가 알아요

뭔데?”

동쪽이요.” 하니까 부처님께서

아니야, 서쪽으로 가라이러는 거요.

 

틀렸죠. 그죠. 그래서 이 제자가

, 서울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 동쪽만 있는 게 아니라 서쪽도 있구나.

내가 두 개 있는 걸 하나 있는 줄 잘못 알았구나. 알았다.”

다음부터는 두 길 있는 줄 알았으니까.

 

그 다음 사람이 와서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동쪽 아니면 서쪽이다.” 이래요. 부처님이 쳐다보니까 잘했다그럴 줄 알았는데, 부처님께서

북쪽으로 가라.” 이러는 거요.

또 안 된 거요.

 

그래서 이 제자가 생각할 때,

,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더 있었구나.

첫 번째는 동쪽이요, 두 번째는 서쪽이요, 세 번째는 북쪽이요.”

머리가 팍팍팍 돌아갔어.

, 다음에 오면 내가 알겠다. 남쪽이다.’ 이렇게 딱 정했는데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이러는 거요. 또 안 맞는 거요.

 

그러니까 이 제자가

부처님의 말씀은 너무 어렵다. 헷갈린다 .’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런데 첫 번째 질문한 사람은 인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동쪽으로 가라가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런데 두 번째 질문한 사람은 춘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서쪽으로 가라가 맞죠.

세 번째 질문한 사람은 수원사람이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된다? 북쪽으로 가라.

네 번째 질문한 사람은 부천사람이오. 부천은 어디 있다? 인천 옆에 있어요.

그러니까 역시 뭐다? 동쪽으로 가라. 이런 거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정답을 만든다. 이거야.

서울 가는 거는 동쪽, 인천 가는 길은 서쪽, 이렇게..

이게 왜 그러냐? 우리가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늘 정답이 있는 교육, 오엑스, 이런 공부를 해서 그렇다.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서울 가는 길은 뭐라고? 정해져있지 않다.

이 말은 서울 가는 길은 없다는 거냐?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는 얘기냐?

둘 다 아니에요.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의 위치가 정해지면 서울 가는 방향은 정해져요? 안 정해져요? 정해진다.

 

위치, 그 사람의 조건이 어떠냐?

그걸 인연이라고 그래.

뭐라고요? 인연.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 사람이 인천이라는 인연이면 동쪽이요,

춘천이라는 인연이면 서쪽이요

수원이라는 인연이면 북쪽이요

대구라는 인연이면 어떨까? 북서쪽이요.

이렇게 정해지는 거요.

 

그러나 이 인연을 논하지 않고 조건을 논하지 않고 그냥

서울 가는 길은 어느 방향이냐?” 그러면

정할 수 없다. 정해질 수가 없다. 또는 말 할 수 없다.” 이런 얘기에요.

이런 걸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그래. 무유정법.

 

그런데 종교를 하거나 철학을 하거나 진리를 탐구한다는 사람들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성인이 한 말을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야. 경정에 써 놨어. 서쪽이야.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잖아.’

이런 식으로 그 말을, 그 글자를 절대화 한다 이 말이야.

이걸 갖다 뭐라냐?

상을 짓는다이래요. ‘상을 짓는다. 절대화 한다.’

이게 뭐냐?

달을 가리키면 달을 안 보고, 손가락 끝을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류를 범한다.

 

부처님은 인연을 따라서 인천 사람이 물으니까 동쪽으로 가라고 그랬고,

춘천 사람이 물으니까 서쪽으로 가라 그랬고,

수원 사람이 물으니까 북쪽으로 가라고 그랬는데,

이거를 기록해 놓은 게 뭐다? 경전이다.

 

이것을 절대화 시키니까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야!”

딴 경전 보니까 서쪽이던데? 그러면 어느 게 맞노?”

, 동쪽이라는 건 초등학생한테 한 얘기이고, 서쪽이라는 건 대학생한테 얘기한 거야.

그러니까 서쪽이 동쪽보다 더 높은 거야.”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한다 이 말이오.

 

동쪽으로 가라, 서쪽으로 가라, 북쪽으로 가라 하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자기 맘대로 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거에요.

 

그럼 경전에 남쪽으로 가란 말은 없다.

왜 그럴까?

부처님 당시에 의정부에 사는 사람이 물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기록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나한테 누가 의정부 사람이 나한테 와서

서울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갑니까?” 하면

제가 경전을 찾아보니 동쪽하고, 서쪽하고, 북쪽하고 있는데, 셋 중에 뭐라고 해야 될까? 동쪽으로 해버릴까? 서쪽으로 해버릴까?” 이러면 안 돼요.

경전에 없더라도 뭐라고 해야 된다?

남쪽으로 가라이렇게 말해야 된다.

 

그러면 그 남쪽으로 가라를 자기 맘대로 한 말이냐? 아니에요.

인천사람에게 동쪽으로 가라는 줄을 그어보고,

춘천사람에게 서쪽으로 가라는 줄을 그어보고,

수원사람에게 북쪽으로 가라는 줄을 그어보니까

서울이 어딘지를 알 수 있나? 없나? 알 수 있어.

 

그러니까 목표점을 찾았어.

그런데 이 질문자가 의정부에서 물으니까 어때요?

목표점을 딱 그으니까 뭐가 나왔다? 남쪽이 나왔어.

그러니까 남쪽으로 가라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부처님은 아니지만, 거의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이거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이 사람이 남쪽으로 가라하는 거는 부처님 말씀은 아니라도, 부처님 말씀과 거의 준하는 가치를 줄 수가 있다.

 

부처님 말씀은 법, 담마, 이렇게 말하고

이 분이 한 말은 논(),

부처님이 한 말씀은 경(), 이 사람이 한 말은 뭐라고? .

그래서 법에는 진리에는

경만 들어가는 게 아니고, 율도 들어가고, 논도 들어가는데, 경률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고

논은 뭐다? 후대의 위대한 선각자가 한 말을 논이다, 이렇게 인정을 하는 거요.

 

그런데 소승불교라고 하는 불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불교에 무슨 소승이 있고, 대승이 있고 그러겠어요.

 

그런데 동쪽으로 가라는 거를 정답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을 두고 뭐라고 이름 붙였다?

소승이다.

문자에 집착했다.

이렇게 이름 붙인 거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고대로 하기는 하는데, 동쪽이라고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맞아요.

그래서 자기는 그걸 움켜쥐고 있는데, 그거를 춘천사람에게 적용하면 안 맞다. 이거에요.

 

그래서 뭐다? 이거를 법집이라고 그래.

진리라고 하는 것에 집착을 해서 이미 진리 아닌 경지에 이르러 버렸다.

그래서 그것을 타파해야 돼.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이제, 무고집멸도 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고집멸도에요.

 

그런데 이 고집멸도를 동쪽이라고 정하듯이

정답을 정해서 형상화했기 때문에 그러면 너는 이미 어긋났다.

그래서 앞에 무()자를 붙여서 부정한 거다. 이 말이오.

 

가장 중요한 이 무유정법의 원리가 뭐냐?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이에요.

 

무아와 무상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 게 뭐냐?

오온, 12, 18, 12연기, 사성제, 팔정도 이런 거요.

 

언어에 집착을 하게 되면

무아와 무상의 원리에 어긋난다.

 

그래서 그걸 부정하는 거요.

무아와 무상의 원래 정신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

언어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관점에서 나머지를 부정하는 거요.

 

그러니까 무상과 무아는 원래의 의미이기 때문에

그건 오리지널이기 때문에 거기다 붙이지 않는 거요.

그 무상과 무아를 상황상황 따라 설명한 것이

오온십이처, 18, 12연기, 팔정도, 사성제 이런 거요.

그래서 다 앞에다가 부정한 거요.

 

소승교리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소승교리라는 교리는 따로 없어요.

그렇게 말에 집착을 하면 이름하여 뭐라고 그런다? 법집이라고 그러고

법집을 가지면 소승이라고 부르는 거요.

 

그러면 대승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걸 안해야 되는데,

대승도 거기에 집착을 하면, 공이라는 언어에 집착을 하면

이미 공이 아니다.

공이라는 상을 지었다. 이렇게 말해요.

 

선에서는 또 그걸 부정하는 거요.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종교 보면 다 말씀이라 그래서 문자를 절대화 합니까? 안 합니까? 절대화하죠.

그런데 불교는 문자를 절대화 하면 안 된다. 이런 얘기에요.

 

사람이 옷을 입어야 됩니까? 벗어야 됩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벗어야 된다, 입어야 된다고 정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입든지 벗든지 지 맘대로 할 거냐? 아니에요.

 

목욕탕 안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 벗어야 되고,

밖에 나올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 입어야 된다.

그러면 밖에 나올 때는 무조건 입어야 되냐?

그렇지 않다. 부부가 침대에 들어갈 때는 벗어야 되요.

넥타이 메고 허리띠 졸라메고, 이렇게 들어가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이걸 뭐다?

인연을 따라,

이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이런 의미가 전혀 아니에요.

인연이 딱 정해지면 어디다하고 딱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법집,

진리라는 데 집착해서 진리에 어긋난 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그런 말을 썼다.

그 중에 왜 삼법인은 안 나오냐?

 

삼법인이라는 것은

무상과 무아는 본래 진리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됐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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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이 무상이 뭔지 무아가 뭔지는 몰라도

지금 말하고자하는 요지가 뭔지 알아들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일상적으로는 저녁 8시 전에 들어오면 좋다.

아이들이 8시에 들어오면 좋다.

맞습니다.

그런데 반드시는 아니에요. 아시겠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는 8시에 들어오는 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없나? 있어요.

그거를 맹목적으로 절대화 할 수는 없다.

 

윤리도덕은

사람들을 서로 좀 더 편리하도록, 좀 더 행복하도록 만드는 거요.

괴롭히려고 만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윤리도덕이 사람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법률도 있어.

왜 그러냐?

절대화해버렸기 때문에. 절대화해서.

 

상황이 바뀌었는데, 인천에서 이미 이 사람은 춘천으로 이사 갔는데, 그 사람한테 계속 동쪽으로 가라고,

서울 가려면 동쪽으로 가라면 그 사람 동해 바다에 빠져 죽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되 진리에 대한 이런 지나친 믿음

, 절대화하는 것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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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즉문즉설이 무유정법에 기초하고 있다는 거 눈치 챘어요?

스님의 즉문즉설이

무유정법, 정함이 본래 없다.

그러나 인연에 따라 정해진다는데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스님의 즉문즉설을 영상으로 보고 정답을 만들면 안 됩니다.

 

, 부부가 뭐, 사이가 안 좋다니까

이혼을 해라, 그러더라,

이혼을 하지 마라 그러더라,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이혼을 하는 게 더 행복하면 어떻게 해야 된다? 해야 되고

하는 게 지금은 좋은 거 같지만 나중에 더 큰 불행을 가져오면

지금 하고 싶지만 참아야 되나? 해야 되나? 참아야 돼.

그런 거를 잘 살펴서 대화를 하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즉문즉설을 천 개를 보고 분석을 해서

, 뭐는 뭐다, 뭐는 뭐다. 뭐는 뭐다, 뭐는 뭐다이렇게 정답을 만들어서

나한테 물어라. 내가 다 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까 그 뭐가 된다? 소승이 되는 거요.

춘천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었는데 동쪽으로 가라 그래서 동해바다에 빠뜨리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