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5회) 이웃과의 다툼

Buddhastudy 2010. 11. 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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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 심보가 꼭 놀부 심보 같아.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흥부는 어느 날 제비가 다리가 부러져서 파닥파닥파닥 뛰고 있었단 말이오. 너무너무 불쌍해. 그래서 제비를 가져와서 치료를 해서 날려보내 줬단 말이오. 그런데 그때 흥부는 복 받으려고 제비치료 해 줬나? 아니지. 다만 불쌍해서 불쌍한 마음으로 치료를 해 줬다 이 말이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냐? 박씨를 물어와서 심었더니 거기에 큰 복이 돌아왔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놀부가 어느 날 와서 보고 흥부가 어떻게 부자가 됐나 물어보니까. 제비다리 치료해 주고 박씨 물어 온 것에서 복을 받았다 하니까. 놀부는 제비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복이 중요했단 말이오. 어떻게 복 받을까? ~ 복이라는 것은 제비 다리 치료해주면 복 받는구나. 그렇게 해서 돌아다녀보니 제비 다리 부러진 게 없단 말이오. 한 마리 잡아다 다리를 독 부러뜨려서 그 다음에 치료를 해서 날려 보냈단 말이오. 복이 돌아 오려니 생각했단 말이오.

 

그런데 결과는 재앙이 돌아왔단 말이오. 보살이 지금 놀부 심보 같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거는. 배고픈 사람을 보니 불쌍해서 음식을 주고 병든 사람을 보니 불쌍해서 치료를 해 주고 애들이 길거리에서 거지 생활하니까 불쌍해서 모아서 보살펴 준 게 아니고. 복 받는다니까. 그런 일 하면 복 받는다니까. 지금 그렇게 하고 싶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마음 아파하면서 그들을 보살피면 큰 복이 된다. 이게 놀부의 예를 들어서 하는 얘기고.

 

그러니까 그게 큰 복이 된다니까 눈이 번쩍 뜨여서 나도 그런 일 해야지 할 때는 이미 놀부 심보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 재앙을 가져오는 거요. 복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는데 복은 안 오고 재앙이 와. 놀부도 복 달라고 제비 치료해 주었지 재앙 달라고 치료해 준건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들의 기도가 대부부분 놀부기도가 될 확률이 높다. 정말 이렇게 미꾸라지 통에 있는 미꾸라지들이 아이고 저 먹을까 봐 불쌍해서 살려 줘야 되겠다. 내가 돈 주고 사서라도. 어항에 있는 물고기 보고 아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를 죽이나. 내가 돈을 주고라도 사서 놔 줘야 되겠다.

 

이렇게 방생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 복 된다니까. 방생이 제일 복 된다니까 방생을 하고. 또 그 중에도 미꾸라지 할까, 자라 할까? 미꾸라지를 하는 게 좋다 하는 이론은 같은 돈에 마리 수가 많기 때문에. 자라를 하는 게 좋다 하는 거는 자라가 오래 사니까 복이 된다. 왜 오래 살면서 복을 물어물어물어 자꾸 오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배에다 이름까지 써서 보내주잖아. 혹시 복을 물어 다른 사람 갔다 줄까 싶어서. 이거는 다 놀부 심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을 바래서 하는 것 중에 재앙을 자초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바르게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복을 바라기 위해서 또 어떤 데는 어떻게 하는 기도도 있어요? 돼지 목을 따 가지고 돼지머리를 얹어 놓고 기도하는 경우도 있고, 양의 목을 쳐서 그 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도 이거보다는 그래도 살려주면서 기도하니까 낫나 못하나? 낫지. 이거 보다는 나아. 그러니까 불교 안에서는 아무리 못해도 이것은 다른 것 보다는 나아요.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돌아가서 보면 이것도 놀부심보에 근거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이 올래야 사실은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자기를 돌이키면서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러니까 윗집 하고 소음 때문에 싸웠다면 내가 기도를, 내 복을 비는 기도를 할 때는 아이고 내가 그거 때문에 욕을욕을 하고 불교신자라는 게 싸워놓고 또 갑자기 또 부처님. 기도하기가 내가 생각해도 민망찮아. 그지? 그러니까 아이고 이런 마음에 기도하면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고. 그런데 내가 나를 돌이키고 뉘우치는 기도를 하면 바로 싸웠기 때문에 기도할 게 더 있는 거요.

 

아이고 내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가지고 입에서는 욕설을 하고. 성질이 난다고 그 집엔 또 소리 낼만한 무슨 이유가 있었을 텐데 올라가서 또 한바탕 싸우고. 아이고 내가 업이 나도 모르게 경계에 부닥치면 확~ 올라 오구나. 좀 자제하면 될 거를. 그러니까 그 기도할게 더 많아지지. 싸웠기 때문에 기도할 게 많아지고. 잘못했기 때문에 뉘우칠 일이 더 많아지고. 모르기 때문에 물을게 더 많아 진단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 뭐라고 그래요?

 

물어라 그러면, 너무 몰라서 물을 것도 없어요. 너무 몰라서 물을게 너무 많아요. 이래야 말이 되지. 몰라서 물을 것도 없어요. 이래. 그러니까 모를수록 물을 게 많고, 잘못할수록 고칠게 많고. 자기가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록 뉘우칠게 참회할게 많아지거든. 그럼 기도할 양이 많아지는 거지. 그러니까 뭘 목적으로 기도를 하느냐? 그러니까 전자의 목적. 복을 비는 기도를 하니까 내가 좀 민망하지. 이래서 복 주겠나. 자기가 생각해도 이 생각이 드니까. 기도하면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기도의 내용이 바르면 기도하는 중에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건 상관없어.

 

그러니까 보살이 기도하는 마음을 좀 고쳐야 돼. 그리고 우리가 정말 보살이라고 기도를, 기도를 안 한 사람이라면 올라가서 시비를 하고 싸울 수도 있는데. 기도를 할 때는 남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면 저렇게 시끄러운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 부부가 싸운다면 얼마나 화가 나면 저렇게 부부가 소리 지르고 싸우겠나. 애들이 쿵쿵뛴다면 크는 애들이니까 참 부모가 말해도 애들이 말을 안 듣고 저러나 보다. 이런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기도하다가 그런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같은 소리가 나도 내가 화가 덜 난단 말이오. 뭣 때문에 싸웠는데?

 

애는 어쩔 수 없어. 다섯 살짜리, 여섯 살짜리, 게들이 엄마 말 듣겠나? 엄마가 잘못하는 게 아니고. 엄마 말을 애들이 안 듣는 걸 어떻게 해.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해. 그 집 입장을 생각해서 내 손자라고 생각하면 어떻겠어? 방법이 없잖아. 엄마가 맞벌이 하고 나가 버리니 애들이 그렇고. 엄마도 제 살기 바쁘고. 아랫집에서 항의를 해도 엄마도 지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그럼 엄마가 애나 두들겨 패고, 그러니까 엄마 나가버리면 애들은 아랫집에서 항의해 맞았다고 생각하니까 일부러 더 쿵쿵대고.

 

그러니까 오히려 지혜롭게, 어느 날 그 집 애들을 데리고 자장면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그러면서 애들하고 좋아져 봐. 애들하고 친해져 봐. 애들한테 좋은 할머니가 되면, 그러니까 퉁탕거리지 마라. 뭐 하지 마라. 이런 말 하지 않는 게 좋아. 요렇게 달래놓고 너희들 제발 퉁퉁거리지 마라. 요렇게 하지 말고. 자장면 한 그릇 사서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좋은 할머니가 되어 버려. 그러면 내 손자가 2층에서 퉁퉁거린다면 내가 화가 좀 덜 나. 그렇게 하는지 안 하는지,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몰라.

 

그러면 화가 나니까 그러겠지. 화가 나니까 일부러 그럴 거 아니오.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 계속 인터폰 해서 하면 계속 그 사람들이 화가 날 거니까. 계속 더 그럴 거 아니오. 그러면 나한테 이익 될게 뭐 있어. 그 사람들 성질이 그러면 그 성질을 계속 내가 돋우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그걸 녹음을 해서 재판에 붙이든지. 그래서 명도소송을 해서 쫓아내든지. 안 그러면 내가 이사를 가든지. 안 그러면 이웃에 살면서 애들이 키우는 집이니까 그냥 지내든지. 그래야지 이렇게 한다 해서 그 사람이 이미 벌써 내가 항의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진짜 옆에 귀찮은 존재가 들어와서 우리를 못 살게 군다. 온갖 걸 가지고 시비하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일부러 까짓 거 한 번 해 보자. 그렇게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럼 벌써 그건 효과가 없다는 아니에요. 지금 하는 방식이. 그러니까 그런 거부터 그것부터도 벌써 내가 지혜가 없는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 보고, 더 이상 안되는거는 화를 내면 누구 손해다? 그런데 그것도 다 내 욕심 아니야. 철들어서 시끄럽지 않도록 해 달라 이 말 아니야. 애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 걱정 밖에 안 하잖아. 놀부 심보 그만 내고 흥부 심보 좀 내봐.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