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4회) 직장에서 직원들과의 갈등

Buddhastudy 2010. 11. 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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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하고 살든지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살면 갈등이 생깁니다. 안 생긴다면 다 거짓말이에요. 그 갈등을 바깥으로 표출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지. 마음에서 갈등은 다 생겨요. ? 다른 사람이 내 원하는 데로 되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다만 그것이 마음에 좀 드는 사람이 있고, 덜 드는 사람이 있지만은. 드는 사람 중에도 어떤 건 마음에 안 드는 거고. 안 드는 사람 중에도 어떤 경우엔 또 마음에 들잖아 그죠? 그런데 그럴 때 마음에 안들 때, 첫 번째 우리는 회피하려는 마음이 많이 일어나요. 외면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 외면하고 싶은 것 보다 더 먼저 드는 마음은 뭘까요? 내 생각대로 상대를 움직이려고 해요. 움직이려고 하는 게 한 두 번 해보고 잘 안되면 그 다음에 회피하려고 그래요. 귀찮다 이 말이오. 그 얘기 괜히 꺼내가지고 시끄럽게 할게 뭐있노? 아이고 뭐 안보면 되지. 이런 것들이 커지면. 그러니까 갈등이 부부지간에도 갈등이. 갈등이 있다는 것은 내 식대로 하겠다는 거거든. 그러다 그 다음에 갈등이 잠재 합니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갈등이 수면 밑으로 가라 앉는다는 거는 안되기 때문에 포기하는 마음.

 

그런데 사실은 포기가 아니고 회피입니다. 피해버린다 이 말이오. 그게 피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될 때 피하는 방법이 강화된 게 뭐요? 안보는 거요. 헤어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부부지간에는 헤어지는 쪽으로 생각한단 말이오. 이혼을 생각한단 말이오. 자식 같은 경우도. 그래서 자식이 남편보다 어려운 거요. 자식을 집에서 내쫓는 거 하고. 부부간에 헤어지는 거 하고. 어느 게 더 어렵겠어요? 자식을 내쫓는 게 어려워요. 그래도 자식도 되게 마음에 안 들면 회초리 들고 대문 밖으로 내 쫓는단 말이오.

 

부부지간에는 남편을 못 내 쫓으니까 자기가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지 않습니까? 그죠? 애는 약하니까 내 쫓는단 말이오. 이게 도망가는 방법이거든요. 그럼 이것을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해서 아~ 이게 세상이 내 식대로 안 된다. 안되는게 이게 정상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구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우리가 공부를 하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편안해 진단 말이오. 그걸 인정하니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받아들이니까.

 

그래서 아까 보살이 남편이 화를 낼 때, 남편이 화를 안 냈으면 하는 거나, 남편이 애를 보고 컴퓨터 안 했으면 하는 거나 동일한 심리라는 거요. 내가 남편 볼 때는 남편이 저러면 안 된다 하듯이. 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이렇게 되는 거란 말이오. 나부터 먼저 해 보는 거요. 남편이 자식이. 자식은 또 마찬가지로 제는 또 제 나름대로 또 이유가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나부터 먼저 해 보는 거요. 그런 남편을 내가 편안하게 볼 수 있나 없나? 이걸 먼저 연습해 보는 거요.

 

이게 되면 남편에게도 다음에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안되면서 남편보고 하라고 하는 거는 될 가능성도 없고 효력도 없어요. 그러니까 나부터 해 봐라. 그러듯이 지금 우리가 여러분들이 다 도망가거나 내 맘대로 하거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방법, 이거 비는 거 아니오. 부처님이나 신에게 빌어서 내 맘대로 한번 해 보겠다는 건데. 그러다가 그 다음에 도망가는 방법. 이것을 내 맘대로도 안하고 도망도 안가고 그냥 인정하고 지켜봐 주는 공부를 우리가 하므로 해서 그냥 한 집에 살아도 편안하게 잘 지낸다 이 말이오.

 

그래서 너무너무 좋아서 정토회 나왔단 말이오. 그런데 남편한테는 이것을 수행의 과제로 자식한테는 수행의 과제로 삼았는데. 절에 와서 도반한테도 똑같이 그걸 남편과 자식처럼 보고 이 노반도 내 맘대로 안되는거고. 그거 하는걸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수행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면. 여기와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여기 문제는 뭐냐? 남편이나 자식은 나의 경계의 대상이에요. 이걸 상대로 내가 수행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 와서는 이 도반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니 수행자 아니냐 이렇게 생각이 딱 드는 거요. 네가 수행자가 왜 그래?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그래서 여기오면 새로운 갈등이 또 생기는 거요. 그 새로운 갈등이 도반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옛날에 남편한테 이렇게 했든, 자식한테 이렇게 했든, 시어머니한테 이렇게 했든, 그것의 습관이 아직 안빠졌다. 남편이라는 대상을 놔 놓고 연습을 해서 그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 졌는데. 그러니까 그 대상이 바뀌면 그 까르마가 그냥 남아있기 때문에. 여기와 서는 그 심리가 도반에게 일어나고. 그 도반에게 일어나는데 똑같이 해결하는 방법을 수행의 과제로 일어나는 건 좋은데 그걸 수행의 과제로 안삼고, 이거는 어떻게? 집에서 절에 안 오겠다. 이 말은 뭐요?

 

남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헤어지는 거와 똑 같은 해결방식을 지금 찾는단 말이오. 그러면 공부가 이렇게 해서 정토회에 안 나오고 절에 안 나오고 집에 있으면 시간이 조금 흐르면. 남편하고 자식문제 병이 다시 도져. 그래서 집에만 오래도 또 못 있어요. 그래서 보통 나와서 힘 든다고 해서 2~3년 집에 있다가 계면쩍게 생각하면서 슬슬 나옵니다. ? 집에 병이 다시 도지니까. 집에 병이 다시 또 도진단 말이오. 이 까르마가 뿌리가 뽑혀야 되는데. 그러니까 집에서 일단 수행을 하고. 절에 와서 또 갈등이 생기면 도망가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고. 내 맘대로 하려는 게 아니라. 이것도 또 수행의 과제로 삼아서 있는 그대로 봐주기.

 

이렇게 해서 또 조율을 해서 또 극복을 한단 말이오. 여기서, 절에서는 됐는데 길거리 가서 모금운동을 한 번 해 본단 말이오. 그럼 길가는 사람이 또 시비를. 내 눈에 또 걸린단 말이오. 그럼 그것도 또 편안하게 봐 주기를. 또 수행의 과제로 삼아야 되는데. 절에 끝까지 와서 봉사는 하겠는데 길에는 죽어도 못하겠다. 그건 안 가겠다. 안나가든지. 거기까지 나가라면 절에 안 오든지. 이런 식으로 자꾸 밑뿌리를 근원적으로 뽑으려고 안 그러고. 이게 늘 나타나는 거요.

 

풀도 초벌 메놓으면 뒤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듯이. 이 업식이라는 것이 늘 한 벌 걷어내면 밑에서 또 올라오고. 한번 걸러내면 밑에서 또 올라오고 이런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을 다 수행의 과제로 삼아서 공부를 하면 나날이 정진이 깊어진다. 그런데 지금 1단계 공부하고. 2단계 다음 까르마가 나타나면 역시 전에처럼 도망가는 방식을 취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남편이나 자식을 수행의 과제로 삼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부처님법 만나 그것은 과제로 삼았단 말이오.

 

그런데 여기 질문에 도반과의 갈등. 이런 질문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다 보니까 도반도 똑 같이 수행의 과제가 된다. 나중에 법륜스님도 여러분들의 수행의 과제가 될 수 있어요. 지금은 별로 딴 게 급하니까 이 병이 안 나는데. 딴 게 다 없어지고 내가 해탈했나 싶은 수준에 가면 법륜스님하는게 뭐든지 걸려요. 나중에 법문까지도 걸려요. 전부 상대를 가지고 시비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런 얘기요. 그걸 다 대상으로, 수행의 과제로 삼아야 된다. 그렇게 더 공부를 하셔야 되. 여기 자원봉사 활동가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런 게 생기죠.

 

이혼하는 사람이 자꾸 생기듯이. 정토회도 좋다고 처음에는 나왔는데 시간이 흐르면 여기도 이혼하는 사람이 자꾸 생기는 거요. 그래서 꾸준히 정진을 해 나가셔야 된다. 그래서 늘 얘기 하지만은 살다가 못살 인연이 되면 안사는건 좋은데. 싫어서 안산다. 미워서 안산다. 이것은 수행자가 아니다. 정토회 다니다가 이사를 가서 딴 절에 다니거나. 또는 가까이 있는 절에 다니거나. 다른 일이 있어서 다니는건 좋은데. 정토회 다니다가 싫어서 갈등이 생겨서 안 나온다 하면 그 자체가 수행이 아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하는거는 오느냐 안오는냐, 사느냐 안사는냐 자꾸 이걸 과제로 삼는데 그거는 과제가 아니오. 그건 뭐 인연이 되면 살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고,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절에 다닐 수도 있고, 교회 다닐 수도 있고. 그건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문제는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이걸 봐야 된다. 그래서 회피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이 말이오. .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