忘色越相分
-색을 잊고 상을 넘어라-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서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써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복덕이 많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그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복덕이 심히 많나이다”
“수보리야,
만일 복덕의 실체가 있다면
여래가 ‘복덕을 얻을 바가 많다’고 설하지 않을 것이나니
사실 복덕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여래가 ‘복덕을 얻을 바가 많다’고 설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잘 갖춰진 신체의 특징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그런 잘 갖춰진 신체의 특징으로써 볼 수 없나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잘 갖춰진 신체의 특징이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름이 그럴 뿐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 네 생각은 어떠한가?
가히 모든 상을 두루 갖춘 것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상을 두로 갖춘 것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모든 상을 두루 갖췄다’는 것은
정말 두루 갖춘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그럴 뿐이기 때문이옵니다”
-解義-
예로부터 신언서판이라 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그 첫머리로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을 살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는 데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우선 그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의 형태부터 살펴 대략적이나마 내면을 가늠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겉과 속이 어떤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인가?
어떤 물건을 포장할 때, 귀중한 물건이라도 싸구려 포장지로 대충 쌀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것이 겉으로 우러나오기에
물건처럼 내용물과 겉표지가 따로 놀기 어렵다.
어느 정도 연관을 지으며 심신이 일체이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겉을 살펴 내면을 관하는 것이 바로 관상이다.
그렇다면 부처의 관상은 어떨까?
부처만큼 관상을 보기 어려운 대상은 없다.
왜냐하면 부처는 어떤 한 성질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전혀 없는 존재가 부처이니
어찌 관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늘 공한 상태로 머무르는 부처이기에
어떤 신체적 특징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럼에도 당시 세존이 생존할 당시의 사회는
신체적 특징으로써 귀하고 천한 것을 구분하는 문화가 팽배했고
그래서 세존은 본 장에서 그들이 즐겨 쓰는 문화의 일면을 예로 들어
그 실체의 공허함을 일깨우고 있다.
夢中山非幻
醒上水非實
本不在夢醒
眼閉空自分
若越分別識
開眼以空見
歸一無生死
꿈속의 산, 환상이 아니고
깨어나 보는 물, 역시 실재가 아니라.
본래 잠들고 깬 것 없으니
눈이 가려 공연히 가르는 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넘어설 수 있다면
닫혔던 눈이 열려 공으로 보게 되고
본처로 돌아가 나고 죽음이 없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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