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금강경 제22장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다.

Buddhastudy 2022. 12. 22. 19:52

 

 

 

不滅永存分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다-

 

수보리야,

네가 만일 여래가 구족상을 갖췄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여래가 구족한 32상을 갖췄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지 말지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 발원하는 자라면

으레 모든 법이 결국에는 끊어져 소멸한다고 말하겠거니 예단하지 말지라.

 

왜 그런가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 발원하는 자는

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일체의 법이 끊어져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으니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수행자가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세상을 칠보로써 가득 채워 보시하고

다시 어떤 사람이 일체의 법에 나라고 특징 지을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달아

나라는 구분에 의해 발생하는 분별심이 줄어든다면

이 수행자가 앞서 말한 수행자보다 공덕이 큰 것이니라.

 

왜 그런가 하면 수보리야,

모든 수행자는 사실상 복덕이란 것을 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 어찌하여 복덕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하시나이까?”

 

수보리야,

수행자란 모름지기 복덕을 받아도 그것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에

내가 그들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는 것도 같고, 가는 것도 같고

앉은 것도 같고, 누운 것도 같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라.

 

왜 그런가 하면

여래란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기에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解義-

 

단멸상이란

삼라만상의 실체가 없어 일체무상함을 말한다.

흔히 단멸상을 설명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은 소멸될 것인즉

일체가 공이다라는 식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발상은 지극히 불법에 배치된다.

일체의 상은 과거현재미래에 관계없이

그 자체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라고 생각하는 색의 세계는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실상은 어디에도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유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이 무상하고 단멸의 상이다.

이런 까닭에 이 세상은 알고 보면

실존을 깜빡 잊어 일어난 한바탕의 꿈에 불과하게 된다.

 

꿈에 강도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앞을 가로막은 강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깨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깸과 동시에 강을 건너야 할 문제가 해결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문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잠을 깨서 꿈이라는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하는 것이

여러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보다 완전한 길이다.

그러므로 꿈 깨는 길, 즉 깨닫는 길을 가라고 권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상대는 꿈에서 깨기 위해 있는 것이요

깨어 있는 절대는 다시 꿈을 꾸기 위해 존재한다.

상대와 절대가 구분 없이 둥글어 가는 모습이 실존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허상에 빠져 괴로움을 달고 사는 중생 또한

실존의 한 모습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기에

피안의 절대를 간절히 동경하고 있을 뿐이다.

 

악몽은 그것이 꿈인 줄 알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중생살이의 고통도 깨어나 환상이었음을 알면 사라진다.

생로병사에 대한 두려움도

자신이 영존하는 실존임을 알면 사라진다.

 

그래서 깨고 보면 모든 것이 즐거움뿐이다.

모든 성인들이 한결같이 깨어나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깨면 초월이요

잠들면 얽힘이다.

얽힘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으니

해결의 길은 오직 하나

깨어나는 길뿐이다.

 

깨어 나서 존재 가치를 영원히 이어 나가는 자를

여래라 하고

모든 중생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존의 법문은 거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