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쌓아올린 탑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1980년 6월 일본 정부
긴 어둠을 뚫고 그녀가 날아올랐다.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
“(끌려간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어. 17살
군인들이 강제로 달려들 때
뿌리치고 도망 나오다가 붙잡혀서 끌려가면...”
위안부 피해를 알린 한국의 첫 증언자
故 김학순 할머니.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두려웠을까?
“엄연히 내가 살아있는데
엄연히 내가 살아있는데산증인이 있는데 없다고 하니까
정말 더 기가 막히데요.
솔직하게 시인이나 해주면 좋겠는데”
평화의 나비가 되 날아오른 김학순 할머니
강요에 못 이겨 당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후
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냈습니다.
“죽기 전에 (일본 정부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를 해주면
마음 놓고 훨훨 나비가 되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故 김복동 할머니 1992년 피해증언
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 증언하신 이듬해인 1992년부터 수요집회가 시작되었는데
벌써 27년째더라고요.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건 너무 안타까운 거 같아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2016년 2월 16일 스위스 제네바,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외무성 심의관
“일본정부는 문서 어디에서도 이른바
위안부 강제연행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민간기금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잘못된 건 잘못했다고 해야, 깨끗이 청산해버려야
뒤가 깨끗한 것 아니냐고”
그녀가 진정 원했던 그것
전쟁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그러나 세상을 떠나고만 김학순 할머니
해방 후 귀국선에서
태극기를 보며 부른 노래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국깃발을
갈매기여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을 풀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40명
2019년 8월 현재, 사망자 220명 생존자 20명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나비로
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한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되었다.
김학순
(1924.10.20~1997.12.16)
김아랑
김학순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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