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김아랑, 김학순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9. 17. 20:35


거짓으로 쌓아올린 탑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19806월 일본 정부

 

긴 어둠을 뚫고 그녀가 날아올랐다.

19918

일본군 위안부피해 최초 증언

 

“(끌려간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어. 17

군인들이 강제로 달려들 때

뿌리치고 도망 나오다가 붙잡혀서 끌려가면...”

 

위안부 피해를 알린 한국의 첫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두려웠을까?

 

엄연히 내가 살아있는데

엄연히 내가 살아있는데산증인이 있는데 없다고 하니까

정말 더 기가 막히데요.

솔직하게 시인이나 해주면 좋겠는데

 

평화의 나비가 되 날아오른 김학순 할머니

강요에 못 이겨 당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후

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냈습니다.

 

죽기 전에 (일본 정부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를 해주면

마음 놓고 훨훨 나비가 되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김복동 할머니 1992년 피해증언

 

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 증언하신 이듬해인 1992년부터 수요집회가 시작되었는데

벌써 27년째더라고요.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건 너무 안타까운 거 같아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2016216일 스위스 제네바,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외무성 심의관

일본정부는 문서 어디에서도 이른바

위안부 강제연행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민간기금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잘못된 건 잘못했다고 해야, 깨끗이 청산해버려야

뒤가 깨끗한 것 아니냐고

 

그녀가 진정 원했던 그것

전쟁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그러나 세상을 떠나고만 김학순 할머니

 

해방 후 귀국선에서

태극기를 보며 부른 노래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국깃발을

갈매기여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을 풀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40

20198월 현재, 사망자 220명 생존자 20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나비로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한 814일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되었다.

 

김학순

(1924.10.20~1997.12.16)

 

김아랑

김학순을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