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고
기억은 흐려져도
역사를 잊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는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기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으니
도산 안창호
대한민국 독립운동
결정적 순간마다 그 사람, 안 창호가 있었습니다.
/1907년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조직..
1909년 미주항일단체 통합 대한인국민회 설립
1913년 홍사단 조직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 역임/
안창호가 가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학교가 생기고
그가 행동하면 돈이 모이고 독립운동가들이 성장했습니다.
안창호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고 지쳐가는 이들을 일으켜 세운
독립운동가들의 스승이자 지도자였습니다.
‘낙심마오.
나는 국난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고
나는 민족 문제에 대해 낙심하지 않고
그대들도 낙심마오.’
그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 배후로 일제에 체포되고 만 두산 안창호
“직업이 무엇이냐?”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가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지는 날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언제나 반듯하고 기품이 있었던 안창호
혹독한 심문.
두 차례에 걸친 감옥생활로 위독한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도산 안창호의 옥중 투쟁을
김설진의 현대 무용으로 기록/
그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피골상접이었다.
거의 저승의 시민을 보는 듯하였다.
앙상한 얼굴에..
-함께 체포된 장이욱의 회고 中
1937년 서대문형무소
30여년 생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던 사람...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도산 안창호
1937년 12월 24일 신병으로 보석 출감
1938년 3월 10일 순국
진정한 애국심은 그 말보다
실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안창호
(1878.11.9.~1938.3.10.)
무용가 김설진
안창호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시사 - 역사 > MBC1919-2019 기억-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록] 이희준, 박은식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0.07 |
---|---|
[기억록] 전효성, 차미리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0.04 |
[기억록] 김아랑, 김학순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09.17 |
[기억록] 김해숙, 김수환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09.10 |
[기억록] 박진주, 김순길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