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전효성, 차미리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10. 4. 05:18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백 년 전, 조선 만해도 여성들이 이런 취미활동은 커녕

교육의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어떻게 이런 걸 누릴 수 있게 된 거지?

 

배움보다는 집안일이 우선

인내와 순종이

여성의 미덕이었던 시절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생전 처음 보는 광경

입장료 1

(현재 가치 약 5~6만원)

비싼 돈을 기꺼이 내고

모여든 청중들

 

그곳에선 오로지 여성들만이 모여 갑론을박,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조선 여자계의 급선무는

조선에서의 활동인가, 해외 유학인가?’

 

여성의 해방이 곧 민족의 해방이다.

-조선여자교육회

 

옛날에는 외출 자체가 쉽지가 않았잖아요.

외출을 하더라도 잠옷이나 쓰개치마로 자신을 가리고 다니던 시절에

해외 유학을 갈 것이냐이런 주제로 토론을 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멋있는 것 같아.

 

토론만이 아니었습니다.

여자도 얼굴을 내놓고 자유롭게 외출을...

아들딸 가리지 말고 공부를 시키게 곳간을..

교육을 위해 돈 쓰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맙시다.

 

온전히 여성들로만 구성된 강연단으로

84일간 67개의 마을을 순회하며

여성들을 위한 강연에 나선 이유

 

조선여자교육회를 이끈 차미리사

일천만 여자에게 새 생명을 주고자 하노라.

 

그 역시 조선의 여성으로 태어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명 미리사라는 이름으로

10년 간 떠난 중국, 미국 유학길

 

이후 남들과 달리 새로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며 깨달은 한 가지.

조선이 독립하려면

여성도 깨우쳐야 한다.’

 

나라를 위해 피 흘리는 것은 백성 된 의무다

실로 민족의 딸임을 잊지 말라

 

평생을 여성 교육에 매진

그녀와 여성들이 자력으로 세운

순수 민족자본학교 근화여학교

 

열 계, 어두울 몽, 啓蒙(계몽)

조선 여성들이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던 차미리사.

그런데 이런 그녀의 노력에 일제는 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槿花근화=무궁화

교명이 불온하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근화(槿花)에서 덕성(德成)으로 바뀐 학교명

 

19408월 총독부 압력으로 차미리사교장직 강제퇴임

19408월 총독부 압력으로 친일파 송금선교장직 취임

 

2002

덕성여대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다시금 기억된

차 마리사와 여성들의 역사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그날 스스로 일어선 여성들이 있었기에

당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차마리사

(1880.8.21~1955.6.1)

 

전효성,

차마리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