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박기웅
북한인민군에 육탄으로 맞서며 목숨을 던진 장병들
총 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된 학도병들까지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 中/
3년 1개월 2일 간의 전쟁
그 참혹했던 전장을 지켰던
우리 영웅들
6.28 전쟁 한국군 피해 규모
전사 137,899명
부상 450,742명
행방불명 24,495명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강방어선을 지켜낸
그 분을 기억합니다.
--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장군 김홍일
그는 독립운동가였고
한국광복군이었습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한인 참모장 김홍일 )
1948년 8월 귀국해 육군사관학교 교장에 취임한 김홍일 장군
그런데 아직 군대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나고 만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
전쟁 발발 3일 서울 함락
이때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에 임명된 김홍일 장군
김홍일 장군은 깨끗하게 다려진 군복을 입고
전투현장으로 가셨다고 해요.
사기를 잃고 흩어진 병력들을 부대에 복귀시킨 뒤
우선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셨다는데요
그리고는 문짝을 떼어내 ‘미군참전’이라고 크게 써서 내거셨대요.
장병들은 그제야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습한 병력으로 무려 7일간
한강을 방어하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한강 방어선이 조기에 붕괴되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극히 제한되었을 것이고
미군의 참전도 훨씬 더 급박한 상황에서 늦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개전 초기의 북한군의 전격 속도를 감안한다면
훨씬 위험한 상황에서 전환이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이 됩니다.
-나종남 <대령(진)/ 육군사관학교 교수>/
독립군과 광복군의 계승한 대한민국 국군
조국 사수를 위한 순국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분명하게 책임을 완수하며
죽어도 명예를 지키라
-김홍일(1898.09.23~1980.08.08)
박기웅,
김홍일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시사 - 역사 > MBC1919-2019 기억-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록] 권해효, 김남주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1.07 |
---|---|
[기억록] 박성훈, 주시경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1.01 |
[기억록] 김상중, 최능진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0.29 |
[기억록] 최불암, 최민식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0.24 |
[기억록] 김선영, 박경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0) | 2019.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