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에 출현한 영화가
범죄자들을 끝가지 추적하는 정말 통쾌한 범죄액션 화였습니다.
진짜 웬만한 사명감이 없고서는 경찰이라는 것이 하기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제가 기록할 인물도 경찰입니다.
독립운동가였던 그분은
해방 직후에 특별한 어떤 이유 때문에 경찰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그때 그 뜻을 이뤘다면
우리역사가 좀 달라졌을 겁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악독한 친일경찰들이셨습니다.
해방이 됐는데 처벌을 받기는커녕
그들은 버젓이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버렸습니다.
친일경찰을 소탕하고야 말겠다.
그래서 경찰이,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
경찰이 된 최능진 선생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뭔지 아십니까?
강습소에 남아있는 일제총독부 경찰 출신자들부터 사표를 받는 거였습니다.
1945년 경찰관 강습소 책임자 취임
친일경찰 출신자들에게 요구한 ‘사표’
1945년 경무부 수사국장 취임
비밀리에 친일인사카드 작성 시작
“경찰 내 친일인사 카드는 수백 명 분이었다.
카드마다 친일 비행 기록이 올려지고 있었다”
-나경덕(당시 경무부 특무과장) 증언
해방 후 조직된 국립경찰
여전히 남아있던 친일경찰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들이
왜 해방 후에도 버젓이 경찰에 몸담고 있는가?
국립경찰은 친일경찰과 민족반역자들의 피난처가 됐다.
그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최능진의 주장,
경찰 수뇌부의 답변
“친일부역자라고 모두 직업적 친일은 아니었다.
생계형 친일도 있었다.
-조병옥 경무부장
“경찰은 기술직으로 어쩔 수 없었다.”
-장택상 수도경찰청장
하지만 결국 경찰에서 쫓겨난 건 친일경찰이 아니라
최능진 수사국장이었습니다.
민족 운동자를 잡아주던 인간을 고관대작에 채용하고
순수한 독립운동자를 무경험자라고 배척...
일제 주구가 일조일석에 애국자가 되어 민중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최능진 공개 성명서 中
친일경찰 청산을 주장한 최능진
이승만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
이승만 후보 측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친일경찰 출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1951년 내란 혐의 구속
군사재판 사형 선고
최능진은 설치 근거도 없고 법관의 자격도 없으며
재판 관할권도 없는 재판부에 의해
사실관계가 오인된 판결로 총살당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009년 9월 4일)
국가의 운명은 끊어졌다가도
몇 번이고 갱생할 수 있으나
민족이 죽으면
민족도 국가도 재건할 수 없다.
-최능진 유서 中
대한민국 경찰
최능진
(1899.7.29~1951.2.11)
김상중
최능진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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