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깨달음과마음치유

[깨달음과마음치유 14강] 그것이 사실인가? / 가만히 본다

Buddhastudy 2025. 5. 29. 20:18

 

깨달음과 마음 공부에 대한 내용으로, 특히 무위법(無爲法) 수행의 중요성과 그 어려움, 그리고 **유위법(有爲法)**을 활용한 수행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길: 밖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고 계속 도모하면 오히려 자신에게서 멀어집니다 [00:05].
  • 중도와 마음 공부의 급소: 중도는 자기 안에 도가 있는 것이며, 마음 공부의 핵심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00:30].
  • 습관 바꾸기의 어려움: 오랫동안 추구하는 삶에 익숙해져서 반대 방향으로 공부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01:00].
  • 본질과 현상: 세상은 주관이 객관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본체가 작용하며 현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02:21].
  • 의식의 역할: 지금 이 순간 보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본체, 즉 의식이 현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02:51], [04:00]. 의식은 물질에 물들지 않습니다 [05:54].
  • 무위법 수행: 깨달음은 자기 안에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가만히 있어야 하며, 어떠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06:29], [07:59].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06:53].
  • 질문의 중요성: 자신이 틀린 전제(예: '나'가 있다는 생각)를 가지고 질문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07:18], [22:44].
  • 본질에서 나오는 말: 깨달은 사람의 말은 아상(주관적인 고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 투명하게 흘러나옵니다 [11:30], [12:16].
  • 관점의 전환: 주객의 입장에서 체용의 입장으로, 즉 현상을 쫓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깨닫는 관점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14:16].
  • 의식은 하나: 이 세계는 하나의 의식이며, 삼라만상은 그 의식의 표현입니다 [15:13], [35:13].
  • 탑다운 방식의 공부: 본질을 먼저 알아채고 그 관점에서 현상을 다루어 가는 것이 효율적인 공부 방법입니다 [37:57].
  • 유위법의 필요성: 처음부터 무위법으로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유위법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으며, 화두는 자기를 깨닫는 목적을 분명히 해주는 유용한 방편입니다 [38:27]
  • 화두의 발전 단계: 임시 화두(방편), 진 화두(생각에 속지 않는 역할), 그리고 모든 것이 화두가 되는 단계를 거칩니다 [42:27].
  • 생각에 속지 않는 수행: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올라오는 생각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사실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7:58], [29:28].

요약하자면, 이 영상은 진정한 자신(본질, 의식)을 깨닫기 위해서는 밖으로 향하는 추구를 멈추고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무위법 수행이 중요하지만, 초심자의 경우 유위법적인 방편(특히 화두)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고 생각을 다스리는 과정을 거쳐야 함을 강조합니다.

 

 

/자기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밖으로 추구하는 힘이 빠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꾸 뭔가를 도모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도모하면 외도고

외도는 밖으로 도를 구한다, 이 말이에요.

도모하면 외도고

힘을 빼면 중도다.

중도는 자기한테 도가 있다.

이것이 마음공부의 급소다.

 

따라서 힘 빼는 것이 공부예요.

힘을 뺀다.

근데 유치원 전부터 요즘 학원 다니지 않나?

그리고 평생을 하여튼 학원 다니면서 공부를 해서

뭔가를 추구해 왔다.

평생을 추구해 왔다.

근데 그걸 반대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되는 게

우리 공부라서

이것이 쉽다고 하면 쉬운데

어렵다고 하면 어렵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라서.

 

그래서 하여튼 영리하게 해야 돼요.

영리하게 해야 된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괜히 불교 많이 공부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공부 안 한 사람이 훨씬 더 유리하다.

 

이미 집에서 많이 멀어진 사람은

돌아갈 길이 멀어.

근데 집 나간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빨리 돌아오는 거예요.

 

의식이 있습니까?

매일, 매 순간, 실제로는 의식이 현상을 경험하는 거예요.

이걸 착각해서 내가

아무개가 주관이 객관 대상을 상대한다고

지금 착각하는 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착각을 바로잡는 거는

이 세계는 주관이 객관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본체가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본체가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체용, 본체와 작용

 

주관과 객관은 다 작용이에요.

주관, 객관은 다 작용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실증적으로 확인이 되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보는 것은

본체가 보지

김 아무개가 보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김 아무개는

몸과 생각,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도 보이고, 생각도 보이고, 감정도 보여요.

그럼 실제로 보는 것은

김 아무개가 보여요.

여러분 보이지요. 자기 몸이 보이잖아요.

그럼 보는 것이 의식이 보는 거죠.

 

그러니까 이거를

처음에는 몸을 나라고 하던 사람이

의식을 발견할 때는

당나귀가 우물을 발견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니다, 처음 할 때는 그것까지도 아직까지도 그건 착각이다.

실제로는 뭐냐?

우물이 당나귀를 보고 있는 거다.’

이때 우물은 본체고

당나귀는 현상으로서의 자기에요.

 

아무개가 의식을 깨달았다가 아니고

의식이 아무개를 지금 보고 있는거예요, 경험하고 있는 거죠.

 

의식을 하나님으로 바꾸면

제가 존경했던 그 목사님은 그랬어요.

인간이 하나님을 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본다.’

음미가 됐나요?

-인간이 하나님을 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본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믿는다.

 

이게 지금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뭐예요?

하나의 님이잖아요.

님은 존경하니까 붙인 존칭어고

하나라는 말이잖아요.

하나 혹은 하늘

같아요, 하나나 하늘이나 다 같다. 본질을 말한다.

 

이 순간

본질이 현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순간

본질이 현상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은 아무개는

하느님 믿기 어려워요.

사실은 하나님이

아무개를 믿어주고 있는 거예요.

믿어주니까 모든 걸 허용하고 있어요.

착각조차도 허용해 주고 있어.

그러니까 이거를 우리가 빨리 알아채야 되는 거예요.

 

의식으로서 물질세계를 살아간다.’ 이 말 이해됐나요?

근데 좋은 점은 뭐냐 하면

의식은 물질에 물들지 않아요.

그래서 영향을 받지 않아요.

아무리 뒤집어져도 의식 자체는 물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게임하는 사람이

게임하는 사람이

게임 속의 캐릭터는 죽어도 자기는 안 죽는다는 걸 알잖아요.

그러니까 마음껏 하잖아요.

그거랑 같다 이거예요.

우리는 안 죽어요.

이건 게임이에요. 지금.

 

그러니까 안 죽는 사람이

게임하는 사람이

게임 속의 캐릭터의 죽음에 대해서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는 거죠.

 

툭 터놓고 자유롭게 살아라

그러면 무위법이란 말은

할 필요가, 어떤 액션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나니까

내가 나를 탐구하는 거니까

이거를 밖으로 뭔가를, 액션을 취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액션을 안 취하는 것이 수행이에요.

근데 이거 어려워요, 이거 어려워요.

얼마나 어려운가?

공부에 대해서 저한테 질문하시는 분들은

전부 다 유위법을 가지고 질문을 해요.

이해되세요?

 

오늘 제가 수업 해 봐도 소용없다는 거 알아.

지금 알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돌아서면 또 질문이

모든 질문이 내가 있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요.

근데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거예요.

나는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나는 없고

실제로 있는 것은 본질이 있는 거예요.

 

나는 본질이에요.

나는 본질이다는 이 말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서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자기를 깨닫는 핵심 수행법은 무위법이다.

깨달음이란 자기에게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제발 가만히 좀 있으세요. 멈추세요.

이런 말을 수업시간마다 하는데

불뚝성이 있어서

사람들마다 구하지 않으면 못 살아.

그래서 그거 구하는 그 마음을 쉬게 하는 게

그래서 옛날에는 행자 생활을 지켰다 이거예요.

그 마음을 쉬게 하려고

그래서 일을 많이 시켰다 이거야.

 

일을 많이 함으로써

그런 구하는 마음을 스스로 소화하게 하려고.

그런 행자교육을,

도제교육을 행자교육이라고 해요.

절에서 스님들이 출가하면

처음부터 스님 되는 게 아니고

행자 생활을 하면서 자기 숨이 죽는다.

사회에서 뭔가를 구하든 그 습관이 좀 가라앉는다.

근데 그게 수행이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가?

우리는 행자교육을 여기서는 어떻게 하는가?

도반끼리 서로 간에 서로 간에

같이 생활하는 게 서로 부닥치죠.

 

그래서 숭산 스님이 그 말 많이 했어요.

당신이 뉴욕에 있는 프로비던스 그 절에

사람들을 같이 생활하게 하는 거예요.

초보자건 고참이건

같이 생활하게 되면 사람들끼리 충돌하잖아요.

그게 행자교육이라는 거예요.

마치 감자 벗길 때

망태기 안에 감자를 넣고 물에다가 넣어서 비비면

감자와 감자가 껍질끼리 서로 비벼서 나중에는 쉽게 벗겨진다고.

 

감자와 감자가 부닥쳐서 껍질 벗겨지는 거

그게 지금 구하는 마음이 쉬어지는

그래서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쉬어지는 게

이게 또 인간의 하나의 과정이에요.

 

그래서 한 번씩 여행도 같이 가고 하면

저는 갈등을 좀 일으켜서

룸메이트끼리 좀 싸우고

이러면서 껍질 벗겨지길 바라는데

표시는 잘 안 내대요, 이번에 해보니까.

근데 속으로는 하겠지.

참 이 개체로서 살아가는 것은...

 

그 하여튼 어느 분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젊은 분이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어서 그 지랄은 꼭 나온다.”

근데 그거를 기왕이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꾸 벗겨져 나가야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자기를 찾을 때는

찾는다는 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은 어긋나 버린다.

그리고 입을 여는 순간 틀린다.

개구적착(開口卽錯)

입을 여는 순간 틀린다./

 

자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는 순간 틀린다, 이거예요.

그래서 두 가지 말이 있어요.

주관이 하는 말이 있고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어요.

달라요.

주관이 하는 말이 있고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어요.

 

주관이 하는 말에는

주관의 고집을 분류에서는 상이라고 불러요.

모양 상자를 써서.

아상, 이런 말 쓰잖아요.

 

그래서 주관이 하는 말에는

그 주관의 상이, 아상이 묻어 나와요.

그래서 입을 벌리면 그 사람의 아상이 드러나는 말이 있다.

 

그런데 깨달은 사람은

입을 벌리면

그 말이 아상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본질에서 투명하게 아상이 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보세요.

 

부처가 무엇입니까?”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은

주관이 물은 질문이에요. 맞죠?

부처라는 대상에 대해서

주관이 부처라는 대상이 알고 싶어서

부처가 무엇입니까?”할 때는 아상이 묻어 나온 질문이에요.

 

근데 깨달은 사람은 아상이 없겠죠.

본질의 입장에서 살아간다 이거예요.

본질의 입장에서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의식의 입장에서 살아간다.’

의식의 입장에서는 놀랍게도

의식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의식 입장에서는 의식의 표현이에요.

 

부처가 무엇입니까?”

부처가 의식이잖아요.

그러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의식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의식을 아마 사진에서 찾아보면

깨어 있는 인간의 정신 상태뭐 이런 식으로 돼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하는 답은

상이 묻어 있는 답인데

부처가 무엇입니까?”할 때

막대기다

그러면 그 막대기가 막대기라고 하는 모양을 가지고

막대기라고 한 게 아니고

이 사람은

막대기는 막대기가 아니라 그 이름이 막대기일 뿐이다.”

근데 뭐라고 말은 해야 되니까

뭐라고 말은 해야 되니까

제일 가까운 거 막대기다.

 

그러니까 이 막대기다하는 요 말은

아상이 묻어 나온 게 아니고

본질이 그대로 드러난

아까 제가 주객에서 체용으로

이게 지금 인간이 성숙하는 가장 핵심이거든요.

 

주객의 입장에서

체용의 입장으로의 전환

관점의 전환

 

이 관점의 전환에서

체용의 관점으로 전환된 사람은

바다 가서

바닷물이 뭡니까?” 하면

모든 파도가 다 바닷물이잖아요.

그러면 입을 열 때 삼서근_ 삼베 서근이다.

 

의식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까

삼서근, 삼배가 세 근이다.

아마 뭐가, 삼배 서 건이 그때 뭐 있었나 봐요.

 

그 말이 진짜 모든 걸 탁 뛰어넘어서

본질이 탁 이렇게 드러난

그러니까 그 뜻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전체가 의식이니까

의식이 뭡니까?”물으면

이 전체를 표현할 때는

뭐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

뭐라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의식의 표현이다, 이거예요.

 

이미 의식이 전체인 사람한테는

손가락을 들든지

이렇게 치든지

삼서근 하든지

막대기라고 하든지

 

의식을 자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의식의 표현이다.

이 말 이해돼요?

 

그러니까 만약에

의식이 뭡니까?” 할 때는

의식이라는 건 없다.

여러분 의식이 뭡니까?” 했을 때

의식이라는 건 없다.

이것도 답이라는 거예요.

 

의식이 없다의 말뜻을 따라가는 게 아니고

의식이란

의 식 이 란 없 다자체가 하나 하나가

다 이 의식의 발현이라서

희한하게도 의식이란 없다가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따라서 돼지 눈은 말뜻을 따라가고

부처 눈은 그 말 하나하나가 말뜻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말 하나하나가 지금 본체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듣는다.

 

사람이 흙덩이를 던지면

돼지 눈을 가진 사람은 흙덩이를 쫓아가고

본체에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을 쫓아가고

근데 사자는 사람이 흙덩이를 던지면

흙덩이를 쫓아가는 게 아니고

흙덩이를 던지는 사람을 문다 할 때

사람이 흙덩이를 던진다 하면

사람은 본체고, 흙덩이는 작용이죠.

그러면 본체는 의식이고

의식의 입장에서는 진짜 모든 것이 다 작용이다, 이거예요.

 

그럼 알아듣는 사람이

눈에 따라서

현상만 쫓아가는 사람은

이 의식을 못 알아채고

현상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 지금 깃발이 흔들린다, 바람이 흔들린다 하면서

계속 왈가왈부할 거고,

그게 아니라

의식에 딱 눈이 가 있는 사람한테는

모든 것이 의식이라서 그 말을 탁 알아듣는다.

사람을 본다, 사람을 문다.

 

모든 것이 의식이 나오고 있는 거예요.

분별이 참 의미가 없다는 거죠.

의미가 없는데

어쨌든 몸을 가지고 사는 한은

이 몸에 또 합당한 분별을 해줘야 되는 거죠.

 

지금 이 세계가 의식의 바다고

우리는, 이 몸은 이 바닷속에 사는 물고기 같은 존재죠.

근데 재미있게도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이렇게 말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이런 말 듣고 알아차리라 이거예요.

지금 내가 어떤 꼴인가?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찾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공부를 크게 하시라.

그래서 계속 지금

이겁니까? 저겁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나의 입장에서 이거다 저거다하고 따지고 있다, 이거예요.

그게 아니다 이거예요.

 

이겁니까 저겁니까?” 하는 것은

자기를 봐라.

그 질문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 질문이 바로 분별해서 나온다.

이 세계를 분별로 보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이 전체를 못 본다.

분별하는 눈으로는 전체를 볼 수가 없다.

빨리 자기를 돌아봐서

내가 분별하고 있구나하는 걸 돌아봐서

그걸 놓으세요, 멈추세요, 그 스톱하세요 하고

지금 계속 지금 글을 그렇게 쓰고 있는 중인 거예요.

 

들어보면 간단하죠.

근데 돌아서면 또 물어.

여러분께서 빨리 알아차리세요.

 

/찾는 그것이 바로 의식이다

그러므로 찾는 것을 멈춰야 스스로 확인하는 기회가 열린다./

 

찾는 그것이 의식이다

여기서 게임이 끝나버리는 거예요.

찾는 그것이 바로 의식이다

 

에고는 의식을 찾는데

에고는 자기가 부처가 되고 싶어서

부처를 찾는데

문제는 찾는 그것이 에고가 아니고 부처인 거예요.

이거를 빨리 알아차려서

 

알아차리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자기라고 하는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밖으로 찾는 마음이 그때부터 쉬어져요.

 

지금 멈춘다’ ‘쉰다이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하는데

이것이 그냥은 안 쉬어져요.

그러니까 언제 쉬어지는가?

자기 자신이 답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한번 알아채야

마음이 그때부터 쉬어진다.

 

지독해요.

찾는 마음은 아주 지독해요.

근데 찾는 그 대상이 바로 자기라는 사실을 한번 진짜 이렇게

탁 이렇게 간절하게 한번 탁 와야

그때부터 마음이 쉰다

그러면 마음이 쉬는 게 공부가 된다, 그때부터.

그리고 쉬면 쉴수록 자기랑 하나가 된다.

 

힘을 빼면 뺄수록 힘이 붙는다.

자기가 하나 되는 힘이 붙는다.

하여튼 골프 치는 사람들은

어깨 힘 빼는 데 3

어깨 힘이 들어가면 욕심이 앞서서 공이 안 맞는다.

어깨 힘 빼고 쳐야

그래야 모든 포인트가 공 하나에 딱 가게 되어서

 

도는 어깨 힘 빼는 거예요.

도 닦는다할 때 그 도의 공부는, 마음공부는

어깨 힘을 빼는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많이 때렸어요.

어깨 힘 빼라고.

근데 지금은 세월이 좋아서 때릴 수는 없고

말로 때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일 좋은 거는

이런 말을 듣고 알아들었죠.

근데 돌아서면 또 구해요.

이거는 정말 반복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공부에 향상이 있으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알아들었다고 가만히 있으면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요.

자꾸 자기의 병자랑을 해야 돼.

질문을 자꾸 해야 돼요.

질문하는 기회는 많거든요, 질문할 기회는 많아요.

수시로 질문할 수 있어요.

자꾸 질문을 해야 돼요.

 

그러면 자꾸 질문을 하면

자기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와요.

질문을 해야지 질문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틀린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알아들었다고 가만히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옛날 습관으로 다시 빨려가요.

 

하여튼 용감하게 질문을 해야 돼요.

질문하고 깨지고.

그 병 자랑을 해야 돼요.

그래서 공부는 약간 용기도 있어야 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를 깨닫는 것이라서

우리가 열심히 자기를 갈고닦아서 어떤 경지에 가는 것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심은 초심이다.

Zen Mind, Beginner's Mind

이게 묵조선의 종지거든요.

묵조선이라고 하는 그 수행법에서는

선심은 초심이다.

이게 가르침의 가장 기본이에요.

 

선심은 뭐예요?

깨달았다고 하는 의식은 처음부터 있던 의식이다.

이거는 시간을 초월하는 거예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의식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이것이 깨달음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묵조선에서는 모든 것이 깨달음이라고 봐요.

묵조선의 수행법은

헛짓만 하지 말라

헛짓만 하지 말라.

모든 것이 깨달음의 표현이다.

헛짓, 깨달으려고 하는 헛짓을 하지 말라.

이게 묵조선의 가르침이라서

거기서는 수행법이 지관

지관_ 오직

타좌

_ 강조할 타

_ 앉는다.

오직 않는다.

앉는 것 자체가 깨달음의 표현이다.

 

그거를 철저하게 믿고 실제로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진짜 그렇네하는 때가 온다 이거예요.

그게 묵조선의 수행법이에요.

그리고 맞는 말이에요.

그대로만 하면 깨닫게 되고

실제로 많은 깨달은 사람들이 나왔어요, 묵조에서.

 

특히 요즘은 미국에 전파된 선은

묵조선이 주로 전파됐어요.

미국에서 지금 깨달은 사람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 사람들은 묵조선 수행한 사람들이에요.

그것도 다 일리가 있고 맞는 말입니다.

무위법이에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무위법은 쉬운 수행길이다./

 

쉽지 않나요?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근데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이게 참 어려워요.

 

/노력을 하면 어렵지만 노력 안 하면 쉽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자기가 하려고 하지, 맡길 줄을 모른다./

 

수행하는 사람은 죽어도 자기가 하려고 하지

자기 자성한테 맡길 줄을 모른다.

도 닦는다는 말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본질에다가 맡기는 거예요.

그게 도 닦는 거예요.

 

/근데 역설적으로 말하면

따라서 무위법은 쉬운 수행길이지만

노력을 하면 어렵지만 안 하면 쉬우니까 쉽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자기가 하려고 하지

본성에게 맡길 줄은 모른다.

역설적으로 에고에게 무위법은 정말 어려운 길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죽게 되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놈이 에고잖아요.

그럼, 무위법을 하라 그러면

에고한테는, 에고는 아무 할 일이 없으니까 죽는 거예요.

에고는 필사적으로 우리의 귀에 대고

이대로 있으면 안 돼, 뭔가를 해야 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속삭여요.

거기에 백발백중 속는다 이거예요.

 

그래서 수행이라는 것이

에고에 속지 않는 게 수행인데...

에고가 우리한테 어떤 걸 가지고 속일까요?

에고가 우리에게 어떻게 속일까요?

한 생각을 일으키게 해요.

그 한 생각에 속는 거예요, 우리는.

 

근데 그 생각이 항상 그럴듯해요.

그래서 거기 속아요.

그래서 하여튼 재미있는 게

여러분께서 질문하면 제가 뭐라고 답변을 하느냐 하면

그거 생각 아닙니까?”이거예요.

그거 생각 아닙니까?

 

깨닫고 난 뒤에 보림하는 수행이라는 게 있거든요.

깨닫고 난 뒤에 점수법, 보림법.

깨닫고 난 뒤에 수행법은 생각에 속지 않는 거예요.

 

저는 이거를 어디서 철저하게 느꼈느냐 하면

바이런 케이티라고 하는 미국 사람이

인생의 바닥을 쳐서

결혼 이혼, 결혼 이혼을 반복하고

각기 다른 남편한테 낳은 애들은

다 각각 정말 개성이 강해서 말을 안 듣고

그리고 하는 사업은 다 실패하고

그래서 이 여자분이 완전히 인생의 바닥을 쳐서 자기를 포기했을 때

자기를 포기했을 때 진짜 스톱 한 거예요.

 

인생에 대한 모든 노력을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은 스톱 한 거예요.

인생에 대한 모든 노력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바닥을 쳐서

할 수 없이 스톱을 했어.

스톱을 했더니 의식이 깨어났어.

그래서 극적인 변화가 왔어요.

 

근데 변화가 온 뒤에 이분이 뭘 했냐면 2년간

마침 이분 집이 미국의 LA에서도 밑에 아리조나 쪽에 사막지대였어요.

근데 거기서 깨달은 뒤에 2년간 뭐 했느냐 하면

매일 스스로 걸어 나가면 사막이야.

근데 거기 사막은 고운 모래사막이 아니고 자갈로 된 사막이에요.

근데 거기서 앉아서 2년간

자기에서 올라오는 생각

자기는 깨달았는데, 의식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내가 의식이구나하는 걸 깨달았는데

2년간 계속 생각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생각한테 올라올 때마다 계속 물었다는 거예요.

바이런 케이티가 우리한테 알려준 보림법

깨닫고 난 뒤에 수행법

앉아서 그 생각한테

사실이냐?라고 물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 하면

생각은 도깨비더라.

믿으면 엄청난 힘이 있고

그게 도깨비가 원래 허상이라는 걸 알면

전혀 힘을 못 쓰게 되더라.

2년 만에 생각이 잦아들었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 바이런 케이티가 많은 사람을 도왔어요.

돕는 건 하나예요.

둘이서 이렇게 대화

지금 유튜브에도 많이 있거든요.

대화해요. 나오라 하고

질문 있는 사람 나오라 하고 앉혀요.

그래서 자기 인생 고민을 이야기해 보라 그래요.

그리고 바이런 케이티가 딱 한마디만 해

그게 사실이에요?이렇게 물어요.

그럼 모든 인생의 문제는 자기가 만든 문제들이에요.

 

우리가 이걸 참고로 한다면

지금 의식이 있죠?

의식이 생명이에요.

우리한테 생명이 없을 때가 없어요.

그러면 이 생명인 의식이 나한테 이렇게 있어.

그리고 생명인 의식은 이 현상계에 물들지 않아요.

아무 일이 없어.

그런데 우리는 이 현상계에 관여해서 여기에 빠져들어.

그래서 지지고 볶아요.

 

딱 하나의 그 메커니즘이 무엇으로 인하는가?

생각 하나로 인해서 이 메커니즘이 일어나는 거예요.

요 생각을 보고 속지 않는 것

이게 일상에서의 수행이에요.

 

이게 안 쉬워요. 해보세요.

자기도 모르게 또 속아.

모든 문제를 말할 때 가만히 들어보면

참 정말 기가 막히게 문제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걸.

 

정말 한 생각에 속아서

이렇게 그 생각이 그냥 집을 짓는 것

집 짓는 자, 한 생각.

그거를 못 보면

끊임없이 그 반복을 번뇌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이야기하면

너나 잘해라그러지, 말도 못해줘.

 

참 이게 자기한테 해야 되죠.

자기 한 생각을 보고 안 속는 것.

무위법이 깊어지면

자기 생각에 대해서 안 속아 지는 게 진짜 무위법이에요.

 

근데 이게 쉽지 않다 이거예요.

쉽지 않다.

그 천하의 깨달은 바이런 케이티도

2년간이나

매일 집 근처에 사막에 나가서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보고

사실이냐?” 하고

또 나오고

사실이냐?”

그걸 2년간이나 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참 수행이다.

 

그러니까 수행이 없다고도 할 수도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너무나 잘못된 습관에 젖어 있어서

습관 바꾸는 게 수행인 거죠.

근데 그 모든 습관의 핵심은 생각이다, 이거예요.

 

/화두 수행도 마찬가지다.

화두 드는 것도 처음에는 내가 해야 하지만

때가 되면 저절로 화두가 돌아간다./

 

화두는 기본적으로 궁금증이거든요.

-지금 이 순간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가 누구인가?

이게 화두인데

이것도 처음에는 내가 이 궁금증을 일으켰으니까 해야 되지만

때가 되면 저절로 궁금증은

안에서 내가 안 해도 돌아가고 있다.

해결되기 전에는 돌아간다.

 

/그러다 화두조차도 사라진다.

궁금증도 결국에는 스스로 해결이 된다./

 

한 개의 의식을 하늘에 뜬 이라고 하고

우리 개체한테 들어와 있는 완벽한 의식을 달 도장이라고 해서

법신불이고 화신불이고

그리고 그 소통하는 것을

보신이라고 하는 개념은

보신이라고 하는 것은 파워를 말합니다. 파워, .

창조성을 말해요.

우리가 중도에 통달하게 되면

저절로 남을 도와주는 힘이 나오는데

그때를 보신불이라 그래요.

그래서 보신불은

관세음보살이니, 보현보살이니

이런 분들이 보신불이라고 해요.

 

관세보살, 보현보살, 법신불, 화신불이 다 누구냐?

다 나다 이거예요.

나의 세 가지 측면

-전체로서의 측면

-개체로서의 측면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측면

이게 법신, 화신, 보신

이 세 개가 나죠. 나다 이거예요.

 

말을 하고 보니까

이 세계는 한 개의 나예요.

이 세계는 한 개 나고

삼라만상은 나의 분신들이에요.

그리고 나가 없으면 이 세계가 없지요.

이때 나는 의식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의식으로서의 나를

천상천하의 유아독존

나 홀로 존귀하다.

또 예수님은 의식으로서의 나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을 했죠.

육체로서의 나를 말한 게 아니죠.

당연하지 않나요?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육체로서의 나를 말한 게 아니에요.

그분들이 나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런 말이

이 나가 다 이 의식으로서의 나를 말하는 거예요.

 

지금 이 말을 빨리 알아듣고

-빨리 나는 의식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한 개 의식이다.

-이 세상은 나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빨리 알아듣고

알아들은 다음에 이 말을 내가 소화시키는 게 공부다.

그러면 끊임없이 의심이 일어나요.

여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의심을 해소하는

가장 구체적인 근거, 가장 권위 있는 근거는

화엄경이에요.

그 화엄경은 딱 이거예요.

월인청강

화음경을 딱 한마디로 말하면 뭔가?

월인천강이에요.

달이 하늘에 뜨니까

땅에 있는 강물마다 달도장이 찍히는 것

이게 지금 진리를 말한다.

 

하늘에 뜬 달은 의식이고

그리고 달 도장은 우리 한 명, 한 명의 개체들이에요.

이게 지금 하나다.

그래서 일즉일체

한 개 할 때는 의식이고

일체는 개체

전체가 곧 개체고

개체가 곧 전체고

 

이것이 왜 가능하는가?

의식이라서 가능하다, 이거예요.

 

오늘 결론이에요.

하늘에 뜬 달을 보는 것은 무위법.

힘이 안 들어 보면 돼.

진짜 이것도 재밌는 말이네.

그냥 보면 돼.

 

근데 그 물에 비친 달을 건지는 것은 유위법

아무리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다시 물은 흘러버리고 마는 거죠.

 

공부를 아주 영리하게 해야 돼요.

탑다운을 해야 돼요.

탑다운을 한다.

그 탑은 본질이에요.

다운은 현상이에요.

본질을 빨리 하여튼 알아채야 돼요.

 

본질을 알아챈 다음에

그 본질의 입장에서 현상을 다루어가는 법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익혀 나가는 것

그게 도 닦는다는 거예요.

 

 

오늘 공부를 마무리하면

저를 돌아봐도 그렇고, 주변을 돌아봐도 그렇고

처음부터 무위법으로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부처님도 6년간 유위법을 하고

내려놓아서 유위법으로 깨달은 거예요.

6년간의 유위법이 헛되지 않은 거예요.

 

무위법과 유위법을 말하면

지금까지 제 말을 들으면

여러분이 붕 떠서

, 나도 무위법을 해야겠구나. 그리고 유위법은 아니겠구나하고

붕 떠버린다 이거예요.

제가 그걸 워워 시키는 거예요, 지금.

 

왜냐하면 처음부터 무위법 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조건이 그래요.

그래서 유위법의 시간을 빨리 거치는 게 좋아.

처음부터 무위법으로 못 들어오기 때문에

유위법을 빨리 거치는 게 좋아요.

 

빨리 이 기간을 거치게 하기 위해서는

타깃을 정확하게 일러주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이

마음공부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목적이 뭡니까?” 그러면 몰라요.

마음공부 하러 왔다 그러는데

목적이 뭡니까?” 그러면

몰라요.

희한한 일이에요.

그냥 하고 있어.

 

그래서 목적을 분명하게 일러주는 게 화두라는 거예요.

마음공부의 목적은

자기를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를 던져드리는 것이

목적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마중물.

 

누구세요?” 이거예요.

누구세요?”

그러면 누구세요라고 하는 여기에 대해서 답변하려고 하는 거

이게 유위법이에요.

 

자기는 자기인데

자기가 자기인 걸 모르니까

그거 모르는 사람한테 한 번 탁 이렇게

발심시키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누구세요?” 하고 물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답변하려고 할 때

답변하는 것은 유위법이에요.

맞잖아요. 유위법이에요.

 

근데 답변하려고 애쓰지 않고서

어떻게 답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자기는 자기지만 자기가 자기인 줄 모르고 있으니까

자기가 자기인 걸 알게 하려면

촉발을 시켜야 돼.

시간 절약하기 위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은

유위법을 유도하는 거예요.

누구세요?” 답을 한번 해보세요.

아는 사람은 그냥 이러겠죠.

뭐라도 답이니까.

아는 사람은 뭐라고 답을 하는데

모르는 사람은 깜깜해요.

누구세요?” 이러면 깜깜해요. 모르는 사람은.

 

또 이렇게 의식이라고 알아들은 사람도

막상 1:1

누구세요?” 하면

의식입니다이러거든요.

그럼 의식이라는 건 생각이고

생각하지 않을 때 누구세요?” 이러면 답 못해요.

 

이렇게 찔러서 유위법을 하게 만들어.

그래서 빨리 유위법 시간을 지나가도록 유도를 해요.

 

그리고 그런 질문을 가진 사람이

이 법문을 들으면

이제는 알아채는 강도가 훨씬 강해요.

멋모르고 듣는 거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당신 의식입니다하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이 사람 왜 하지?” 하고 지나갈 거예요.

 

근데 이 질문을 당해서 좀 끙끙 대본 사람은

의식이다이 말 한마디가 아주 불꽃처럼 팍 이렇게 와서

그 모든 자기 무명을 태운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알아채고 난 뒤에

화두라고 하는 유위법으로 알아채고 난 뒤에

진짜 화두

이제는 자기하고 떨어지지 않는 무위법이 진짜 화두예요.

 

그러니까 화두도

자기가 의식이라는 걸 깨닫기 전에는 유위법의 화두

방편으로서의 화두

이걸 임시화두, 가화두라고 하고

자기가 자기인 걸 알아챈 사람한테

생각을 조복시키는

생각이 안 속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스위치 역할을 하는

나는 나라서 생각에 안 속는다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그 진짜 화두

그걸 하다 보면 이제는 화두를 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렇게 해서 가화두, 진화두

그리고 화두 자체가 타파되어 버리는

그래서 정말로 모든 것이 다 이 한 개에 드러나게 되는

그래서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화두가 되는 것.

 

모든 것이 화두란 말 이해되세요.

모든 것이 본질의 표현이다, 이 말이에요.

본질의 표현이 화두예요.

 

모든 것이 되어서

-이제는 화두가 이 뭐꼬?만 화두다가 아닌

-모든 것이 본질이 되어 버리는

-그래서 화두가 없어지는

그 과정을 거치는 게

유위법을 하고 무위법을 하게 만들어서

유무를 다 뛰어넘어서

그냥 그것도 다 없어져서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해져 버리는 세계로 우리가 가는 것.

 

그거를 화두라는 걸 만들었다.

그래서 만드는 이유는

제가 무위법을 이렇게 강조했지만

초보자가 무위법에 속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그런 사람 많아요, 진짜로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법문 듣고

무위법이라는 말을 딱 알아들은 사람이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안 해서

공부의 진도가 하나도 안 나가 있어.

 

이건 뭐냐 하면

당신 누구세요?” 하면

의식입니다하고

의식이라는 생각을 믿어버리고 거기서 끝.

그런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화두는

그런 거를 실제로 한번 겪게 만들어 주는 장치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하여튼 무위법과 유위법에 대해서 화두까지 엎어서

한번 오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