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마인드] 뇌가 망가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 I 잘못된 강력한 믿음의 힘 I 뇌과학 이야기

 

 

한 영화관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들립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영화관 밖으로 서둘러 대피합니다.

이날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격 사건 중 하나가 벌어집니다.

2012년 7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12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을 입은

이 끔찍한 사건의 범인 제임스 홈스는

충격적이게도 뇌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엘리트였던 그는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벌리게 되었을까요?

 

사건 발생 3일 후 그가 범행 직전

자신을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에게

불태운 돈과 함께 부쳤던 그의 연구 노트가 발견되었습니다.

 

연구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어야 할 그 노트에는

그의 평소 생각들부터 범죄 현장 도표에 이르기까지

대량살인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노트에는 ‘망가진 마음의 자기 진단’이라는 제목의 글도 있었는데

홈스는 스스로가 13가지 정신질환을 가졌다고 적었습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정신 골절’이라는 주제로

망가지고 부서진 자신의 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거 자체를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판명되었다.

망가진 마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내 영혼이 제거되어야 한다.

나의 생물학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우고 또 싸웠다.”

 

홈스의 노트 속, 수많은 글들에서 찾을 수 있는 일관적인 메시지는

그가 정신적, 육체적 의미 모두에서

자신이 완전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결함이 있다고 느꼈다는 점입니다.

 

그는 결국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재판에서도 계속해서 모든 것이 자신의 망가진 뇌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고

그의 망가진 뇌와 정신병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은 그의 망가진 뇌 때문이었을까요?

 

뇌과학자 앨런 재서노프는

이 문제의 바탕에는 ‘뇌의 신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뇌의 신비’란?

뇌를 우리 인간의 본질로 간주하고

우리의 문제를 모두 뇌로 환원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뇌가 우리의 성격, 지능, 의지 등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오직 뇌만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능한 구조라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왜냐면 이것은 뇌를 필요 이상으로 이상화하고

뇌만이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는 역할을 한다고

잘못 판단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정신 건강 환자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망가진 뇌’라는 낙인을 만드는 것이죠.

이러한 낙인은 사회생활이 중요한 인간에게 치명적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심장과 같은 다른 장기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비난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뇌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실시된 1989년부터 2009년까지의

우울증이나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수용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홈스는 사건을 벌리기 전

이미 자신의 문제가 자신의 뇌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홈스는 재판에서 자신의 망가진 뇌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없어

결국 인류를 미워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뇌에 기반한 차별은

자기 가치감을 떨어뜨리는데 치명적입니다.

개별 뇌가 가진 문제는

반드시 개인의 문제라는 정신질환의 신경적 토대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개인을 넘어선 환경 및 문화적 역할을 과소 평가해

점차 증가하는 정신질환의 환경적 요인의 교정을 가볍게 보게 만듭니다.

 

쉽게 말해 정신적인 문제는 뇌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의 대다수는

스트레스, 만성피로, 수면 박탈, 대인관계 문제 등 신체 건강상태와

문화적 사회적 경험 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뇌의 신비’주의가 지나치면

환자와 의사 그리고 연구자의 주의를

뇌에만 집중시켜

정신 질환과 뇌질환을 같은 것으로 보게하여

여러 다양한 치료법 고려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사실 홈스는

정신질환 치료를 꺼리지 않고 열심히 받았습니다.

10대 이후 계속해서 심리학자 및 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총격 사건을 저지르기 몇 주 전에도 치료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불안을 완화시키는 다양한 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결함이 생물학적이고 판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뇌과학까지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망가진 뇌’를 타고 난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으로

마치 바뀔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여 자신을 인식해 버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무력감을 느끼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만약 홈스에게 뇌 정신질환에 대한 처방 이외에

대인관계 회복 프로그램이나 심리 행동치료 프로그램, 마음챙김 명상수련 등의

다른 사회적, 문화적 접근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기까지의 그 개인의 상황을 돌아보면

항상 사회의 문제가 발견됩니다.

암이나 심혈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뇌에 기초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처럼

자기 가치감을 대한 심각한 도전을 받지는 않습니다.

 

망가진 뇌라는 낙인은

병에 걸리거나 정상의 궤도를 벗어난 한 개인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어떠한 수치심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깁니다.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인지 처리가 단지 뇌뿐만 아니라

신체 전체의 건강과 그동안의 경험

사회 문화와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 문제를 가진 사람을

그 사람 개인만의 문제로만 보고

비난만 퍼붓지 말고

반드시 그 문제를 야기한 이 사회와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