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8.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Buddhastudy 2018. 5. 2. 20:27

 

부처님께서 우루벨라가섭 등 1천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왕사성을 향해서 가셨습니다. 이 보드가야에서 왕사성은 동쪽입니다. 80키로, 200리 정도 되죠. 그 왕사성 서문 밖 한 40, 하루거리 정도의 위치에서 부처님과 1천명의 제자들이 머무르고 있을 때, 빈비시라 왕은 가족과 대신들을 이끌고 이곳까지 마중을 와서.

 

인도 당시의 풍속은 수행자를 존중하는 그런 문화였기 때문에 훌륭한 수행자가 자기 집이나 나라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나가서 영접을 합니다. 많은 불교인들은 빈비시라 왕이 부처님이 오신다니까 영접을 갔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빈비시라 왕은 아직 부처님을 모를 때였기 때문에 사실은 우루벨라가섭을 영접하러 갔다. 이렇게 보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빈비시라 왕은 우루벨라가섭을 3바퀴 돌며 예의를 표하면서 문안을 한 뒤에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제가 듣기로 우루벨라가섭파님께서 어떤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소문이 사람발보다 빨랐던 거요.

 

그런데 제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3살 먹은 어린아이가 80먹은 노인을 보고 내 손자요.” 이게 더 믿기기 쉽겠다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벨라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3바퀴 돌고 우리 금강경 표현대로 한다면 편단우견우슬착지합장공경하는 그런 태도로

 

이분은 저의 스승이며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내가 이 분을 뵙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분을 뵙고 법을 깨치고 나서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했어요.

 

이 윤회의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제사의식을 했다는 얘기죠. 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건 뭐요? 해탈과 열반을 윤회 고를 벋어나는 해탈로 나아갔다는 얘기에요.

 

이 분은 참 굉장하신 분입니다. 이 부처님의 제자들의 한 특징인데, 세속으로 말하면 나이차이가 굉장히 많은데도 부처님의 초기 제자 가운데는 대부분이 부처님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스승에 대한 그 예의, 태도가 정말 깍듯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태도들이었죠. 왜 그러냐하면 그것은 스승으로부터 법을 듣고 자기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야 왕이 부처님을 향해서 예를 취하고, 부처님께 법을 청했던 거요. 그래 부처님께서 이 빈비시라 왕을 위해서 법을 설했고, 빈비시라 왕 또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어. 그래서 이렇게 자기 신앙고백을 했어요.

 

부처님, 제가 젊은 왕자일 때, 저에게 간절한 5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왕이 되는 거고, 왕자라고 다 왕이 되는 건 아니죠. 임금이 부인도 여럿 두고, 이렇기 때문에 왕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왕위쟁탈전이 심하지 않습니까. 첫째는 내가 왕이 되는 거고.

두 번째는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이고

셋째는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넷째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내가 그 미묘한 법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이시여, 이 기적 같은 일이 지금 일어났습니다. 왕이 되었고,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했고, 내가 부처님을 친견했고, 그 법을 듣고 깨쳤다. 나에게 마지막 하나의 소원이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부디 왕궁에 드소서.”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승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 같았으면 좋아하고 가서 맛있는 거 얻어먹었을 텐데.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드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왕은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그 성문 밖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왕이 평소에 아끼던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이 대나무 숲을 벨루바나라고 그러죠. 이 숲을 부처님께 기증을 했던 거요.

 

, 수행자들이 머무르는 처소로 제공을 했다. 이곳을 중림정사라 그래요. 이곳이 불교 최초의 절이죠. 부처님이 1천여 대중과 이곳에 있을 때 사리부트라, 목건련, 마하가섭 등 많은 제자들이 이때 귀의를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중림정사에만 머물고 계셨던 게 아니고, 이 왕사성 밖, 영축산에 많이 머물러 계셨습니다.

 

왕은 자기 인생이 괴로울 때면 부처님을 청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왕궁으로 들어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왕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힘들고 괴로우면 부처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축산에 오르는 길, 그 길을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붓다의 길이다. 이래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길 이름이 빈비시라 왕의 길입니다.

 

왕이 부처님을 뵈러 그 산을 올랐기 때문에, 신하들은 왕이 다니기 쉽도록 길을 닦았던 거요. 그래서 왕은 마차를 타고 그 산 아래에 와서 거기서 내려서는 가마를 타고 올라가고, 또 거기에서 내려서는 신하들은 다 두고 혼자 올라가서 부처님께 상담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왕이 천하에 제일 높은 사람인데, 자기 그 골치 아픈 얘기를 부처님한테 상담하는데, 그것을 누가 듣는 것은 창피한 일이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이 그 산중턱에 있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어쩔 수 없이 홀로 부처님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요.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가치관, 즉 행복이 재물과 사회적 지위와 인기와 건강과 자식이라든지, 뭐 이런 걸 갖고 우리가 보통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 복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얼마나 빕니까.

 

그런데 빈비시라 왕은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제일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제일 좋은 차를 타고 다녔잖아요. 제일 좋은 마차를 타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제일 귀한 보석을 차고, 많은 호위병이 그를 보호했고, 천하 예쁘다는 여자는 다 불러 모아서 궁중에 살게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거기에 자식도 또한 얼마나 많이 낳았습니까. 강력하다보니까 주변에 있는 작은 나라를 쳐서 나라도 크게 넓혔죠. 절대 권력을 가졌다는 거요. 그런데 뭐가 부족하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빈비시라 왕은 번뇌가 많고, 괴로움이 많고, 인생이 괴로웠던 거요.

 

그에 비해서 부처님은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집도 없죠. 신발도 없죠. 옷도 다 떨어진 분소의 한 벌이죠. 밥도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죠. 자식도 없죠. 가족도 없죠. 호위병도 없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부처님은 마음이 편안하고, 아무런 호위병이 없는데도 두려움이 없고,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늘 위로와 도움을 줬잖아요.

 

그런데 왕은 세상에 제일 좋은 것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했지 않습니까. 돕기는커녕 지금도 어디든지 예쁜 여자 있다면 뺏어와야지. 맛있는 음식 있다면 가져와야지. 좋은 보석 있다면 가져와야지. 좋은 말이 있다 해도 가져와야지. 다 뺏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행복하지가 않느냐.

 

스스로 행복하지 않고, 또한 남에게 고통을 준다.

부처님은 스스로 행복하고, 남에게 이익을 준다는 거요.

 

빈비시라 왕이 부처님께 와서 상담한 내용이 뭐겠어요. 나라가 크니 주변에 국경을 맞댄 나라가 수십 나라가 될 거 아니오. 그러니까 변방에서는 반란이나 전쟁이 끊임없었다는 거요. 아들들이 많으니까 형제끼리 왕위경쟁을 해서 서로 죽이고 하니 얼마나 부모로서 가슴이 아픕니까.

 

여인이 많다 보니까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왕이 어쩌다가 한번 오니까, 온갖 얘기를 할 거 아니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전부 시비하고 질투하고 비난하는 얘기만 잠들기 전에 계속 들어야 되잖아.

 

음식을 먹을 때는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늘 은수저 넣어서 독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먹는데 맛이 있을까? 그렇게 호위병이 많은데도 늘 암살당할까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게 인생이에요.

 

그러니 부처님께 가서 하소연을 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는 마치 악몽을 꾼 사람이 깨어나듯이 편안해 지고 기뻐져서 그렇게 돌아오곤 했던 거요.

 

여기서 우리는 왕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런 생각만 하면 안 돼요. 이런 생각만 하면 여러분들은

, 왕이 부처님께 뭘 많이 해드렸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부처님이 집이 필요하다면 집을 지어줬을 거요. 옷이 필요하다면 옷을 해드렸을 거요. 음식이 필요하다면 음식도 줬을 거요. 마차가 필요하다면 마차도 줬을 거요. 그런데 부처님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고 해서 특별히 부처님께 뭘 해드릴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한 번도 빈비시라 왕이 제자라고 해서 빈비시라 왕에게 뭘 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미묘한 불법을 듣고 깨쳐서 걸림 없는 자유, 두려움 없는 행복을 얻어야 되는데, 우리는 이 부처님께 하는 일이 겨우 뭐요?

돈 좀 벌게 해주세요.” 돈 버는 거 직장 다니고 사업하는 사람 전공 아니오?

출세 좀 하게 해주세요.” “인기 좀 얻게 해주세요.” “병 좀 낫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 시험에 좀 걸리게 해주세요.” 이것은 나 왕 되게 해주세요.” 이 말 아니오.

 

부처님이 왕위를 버리셨는데,

우리는 부처님의 이름을 빌어서

나 왕 되게 해주세요.”

여기에는 붓다가 깨치고,

붓다가 가르친 그 어떤 법도

우리가 지금 모르고 있다는 얘기요.

 

부처님이 출가 하셔서 스승을 찾아 정진할 때, 그때 이 왕사성 근방, 언덕에서 정진을 할 때 어느 날 이 빈비시라 왕을 만났어요. 성도하시기 전 얘기에요. 그때 그 부처님의 자태가 너무나 거룩해 보였기 때문에 빈비시라 왕이 부처님은 어디 출신이며, 누구냐고,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석가족 출신의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말을 했을 때, “왕족이 출가했다.” 이 얘기를 빈비시라 왕이 들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고 빈비시라 왕이 생각할 때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왕 노릇을 하면 세상을 엄청나게 잘 통치할 텐데, 그 재능을 버리고 출가수행 했다.”는 게 너무너무 아까운 거요. 이 빈비시라 왕이 생각할 때는. 그래서 제안을 합니다.

 

제 여동생이 지금 혼자 살고 있는데, 제 여동생과 결혼을 해서 부마가 되어서 이 나라를 나와 같이 통치하면 어떻겠소.” 2인자가 되라는 거요. 작은 나라의 왕보다는 큰 나라의 부통령이 낫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고개를 저으셨어요. 그때 빈비시라 왕이 생각할 때 2인자 되라니까 양이 안차서 그런 줄 알고,

당신 같은 사람이 나보다 더 이 나라를 다스리는 게 훨씬 낫겠다. 그러니 내가 왕위를 물려줄테니 당신이 이 나라 왕이 되시오.”

한국 대통령 하다 그만 둔 사람보고 뭐라고? 미국 대통령 하라고 그런 거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또 거절을 하셨어요. 그러자 빈비시라 왕이 생각할 때, 남의 나라를 갖는 게 미안해서 그런 줄 알고,

그러면 내가 군대를 줄 테니까, 남의 나라를 쳐서 대제국을 건설하시오.”

그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입안에 있는 가래를

더럽다고 뱉은 사람이

더 큰 가래를 보고

집어 먹는 사람이 있겠소?

 

여기에서 가래라고 표현한 게 뭘까? 세속적인 걸 말하죠. 그것이 해탈의 길이 아니라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도 버렸는데, 자기 입안에 있는 것도 뱉어버렸는데, 남의 입안에 있는 것을 가져다 먹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만큼 거기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아주 분명했던 거요.

 

대왕이시여, 내 나라의 왕도 제가 스스로 버렸는데, 내 사랑하는 아내도 자식도 두고 왔는데, 이 길을 위해서, 내가 왜 지금 새삼스럽게 또 결혼을 하며 또 자식을 낳고, 또 그 길을 가겠느냐. 내 나라의 왕위도 버렸는데, 왜 내가 남이 하는 나라의 왕위를 계승하겠느냐. 내 나라의 왕위도 버렸는데, 내가 왜 군대를 가지고 남의 나라를 뺏겠느냐. 그러니 대왕이시여,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이러한 부처님의 얘기를 듣고 빈비시라 왕은

이 분은 참으로 보통 수행자가 아니다. 이 분은 정말 위없는 깨달음을 얻겠구나. 그래서 당신이 위없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반드시 나를 구제해 주시오. 나에게 법을 설해서 나를 깨닫게 해주시오.”

 

이렇게 요청을 했던 것이고, 부처님은 그때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셔서 빈비시라 왕은 돌아가실 때까지 부처님의 충실한 재가신자였고, 여러 어려울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에 따라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님들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자는 법에 귀의해서

깨달음을 얻어서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는 게 불자이지

 

복을 비는 게 불자가 아니다.

이것을 꼭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