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년에 29살이 되는 미혼 여성입니다.
저에게는 오랜 고민거리가 하나 있는데요.
좋아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먼저 상대를 좋아해도,
막상 상대가 다가오면 차갑게 대해서 떠나보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원인으로 짐작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 집안 분위기가
감정 표현을 어색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오글거리고 부끄럽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다른 여자아이들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두고
‘꼬리를 친다’ 하는 말을 하는 게 무서워서 몸을 사렸습니다.
또 유치원 때 생일 파티에서 좋아하는 친구를 골라
뽀뽀하라는 놀이를 할 때,
반에서 욕을 먹지 않을 친구,
그러니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친구를 고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제가 원하는 감정보다도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혹은 불편해하지 않을지에 더 신경 쓰다 보니,
시선에 민감해지고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독립한 지 1년이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속도에 비해
제 자신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더딘 것 같아 조급해집니다.
결혼 적령기라는 생각도 들고,
노산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는데요.
이런 제 모습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보통 16세에서 19세 정도를 결혼 적령기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방년 16세’, ‘방년 19세’ 같은 표현도 있었죠.
스무 살을 넘기면
혼기를 놓쳤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십이든 육십이든, 결혼은
본인이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람에게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이 당연했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질문 자체가 무례하다고 여겨질 만큼
시대가 변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그 형태도 다양합니다.
예전에는 혼자 산다고 하면
비구니, 수녀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가구 중 약 36%가 1인 가구이고,
2030년쯤에는 그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경우
이혼 후 혼자 사는 경우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고,
혼자 사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 너무 사회적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해보고
그것이 짧게 끝나든 길게 이어지든
본인의 선택에 따라 하면 됩니다.
...
부모님 간의 관계가 별로 안 좋습니까?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결혼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 반응이 생깁니다.
나중에 성장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또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밀쳐 내게 됩니다.”
...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어릴 때 결혼을 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내가 자꾸 사람을 밀어내는 성향이 있다면
이번에는 한번 밀어내지 않고 그냥 살아보면 되죠.
일반적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도 상대가 가까이 오면
약간 겁이 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결혼이나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형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릴 때 엄마, 선생님, 혹은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가
거절당하거나 밀쳐진 경험이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있으면
오히려 상대가 다가오기도 전에
내가 먼저 밀어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원인을 분석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상대를 밀쳐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다면 대처를 해보는 것입니다.
밀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밀치는 대신 그냥 상대를 확 끌어안아 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어요?
어쨌든 일단은 상대방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니
밀쳐내서 아쉽게 못 만나게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이런 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질문자가 고민하는 부분이 명확해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연습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성 간에 손을 한번 잡는 것만으로도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 했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잘못 손을 잡았다가 평생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사주를 보기도 하고
여러 조건을 따지며 결정을 내리곤 했죠.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손을 잡았다가 헤어져도 괜찮은 시대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심스럽게 굴지 말고
괜찮다면 한번 손을 잡아보세요.
그리고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스님이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문란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윤리적, 도덕적 관점이 아닙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스스로 괴로워한다는 겁니다.
이 고뇌를 극복하는 방법은
일단 한 번 해보는 겁니다.
손을 잡아보고 경험을 해보면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잡아봤더니 ‘역시 나는 밀치는 게 낫다’ 하는 결론이 나오면
앞으로는 밀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손을 잡아봤는데 ‘생각보다 별일 아니더라’ 하는 결론이 나오면
이제부터는 굳이 밀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어떤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의심만 하지 말고
딱 한 번 찍어 먹어보는 겁니다.
만약 독이 있었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아, 이건 절대로 먹으면 안 되겠다’ 하는 결론을 내리면 되는 것이고,
독이 없었다면
‘괜히 겁먹고 고민했네’ 하며
앞으로는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겁니다.
계속해서 조마조마하며
시도도 못 하고 고민만 반복하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결국은 실험을 통해 확실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야 불필요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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