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최근에 이석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40대 초반에 이석증을 진단받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고
제 경우는 열 명 중에 한두 명밖에 안 되는 사례로
스트레스로 인한 뇌 손상이 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10년 뒤에 치매가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석증 진단을 받은 후 제 과거를 돌아봤습니다.
지인들은 제가 굉장히 바쁘게 일하고 부지런하다고 평가해 주었고
남편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많이 벌이는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인간관계가 아주 제한적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서 모범이 되려면
내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다가
작년에 불교대학과 경전대학까지 졸업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석증 진단을 받고 나니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 행동들이 과로에 불과했고
오히려 저 자신을 깎아 먹고 있지 않았나 후회가 됩니다.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이석증은 흔히 생기는 병입니다.
첫째,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조금 안정이 필요해요.
발병 후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는 빠져나온 돌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병원 치료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고,
과로를 하지 않도록 업무를 조정하면 됩니다.
둘째, 어느 정도를 과로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정도가 과로다’ 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육체적 과로 여부는 쉽게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체력이 감당을 못하면 육체적 과로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에 정신적 과로는 본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정신적 과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면
남이 볼 때는 별일 아니지만, 본인은 엄청나게 피로를 느끼거든요.
그래서 정신적 과로는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남이 볼 때는
엄청난 일을 해서 몸이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정신적으로 그 상황을 별로 문제 삼지 않고 가볍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육체가 무한히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보통 사람보다는 많은 일을 하지만 특별히 스트레스를 안 받을 뿐이지요.
스트레스는 정신적 피로입니다.
주어진 일을 거부하면서 억지로 하느냐
아니면 기꺼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스트레스의 강도에 큰 차이가 생겨납니다.
질문자가 본래 조용한 성격인데
자기 체질을 한번 바꿔 보겠다고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했다면
의식은 해야 한다고 하지만 무의식은 저항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질문자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게 되고
나중에는 몸이 못 견디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가 수행을 통해서 까르마를 극복하면 좋지만
그걸 극복할 만한 체력이나 의지력, 정신력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생긴 대로 살아라’, ‘손해 보고 살아라’, ‘과보를 받고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러다가 병난다’ 하는 겁니다.
고치려다가 스트레스를 더 받아서 병이 나니까
병이 나는 것보다는
성질대로 살고 손실을 좀 보는 게 낫지 않느냐는 얘기지요.
이 이야기를 ‘스님이 성질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더라’
또는 ‘까르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은 업식을 극복하고 해탈을 얻으신 분입니다.
제가 까르마를 극복하라고 한 것은
‘수행자는 해탈을 목표로 해야 한다’ 하는 의미이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부처님은 목숨 걸고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까지 할 의지가 없잖아요.
조금만 힘들어지면 관두려고 하죠.
그래서 자신의 발심 정도나 건강 상태,
원래 까르마가 어떤지를 살피고 스스로 점검해 가면서
조율을 해나가야 합니다.
무조건 극복해야 한다거나
무조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 방식은 극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이석증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진단을 했다면
질문자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억지로 행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화를 참으면 화병에 걸리게 됩니다.
화병에 걸리는 것은 숫제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못합니다.
화를 내면 욕 좀 얻어먹고 비난을 받는 과보가 생기지만
자신은 병들지 않아요.
그러나 억지로 참으면 남으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자신의 속은 썩게 됩니다.
그럴 때 어느 쪽이 더 비중이 높은가 따라서 처방이 달라지는 거예요.
화를 참아서 병이 났다고 할 때는
‘참지 말고 화를 푸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고,
성질을 너무 부려서 인간관계가 아주 나빠졌다고 할 때는
‘그러다가 이혼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나면 어떡할래요?
성질을 좀 죽이고 사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질문자는
이미 스트레스가 지나쳐서 병이 날 정도가 된 거예요.
육체적인 과로가 심하다면 업무를 줄여야 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참는 것을 조금 풀어주어야 합니다.
당분간 치료를 위해서 성질을 부려 가면서 일하든지
사람과 만나는 일을 안 하든지,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육체적 과로에 의한 병은 실제로 많지는 않습니다.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서 먹지도 못하게 하면서 일을 많이 시킨다면
육체적 과로에 해당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 과로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병이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운동 부족 상태로 지냅니다.
너무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본다든지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본다든지,
이렇게 생활하면 운동 부족으로 인한 병이 생기기가 쉽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에 의해 병이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육체적으로 과로 상태가 될 만큼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안 됩니다.
우선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자기 좋은 대로만 하고 살아요?
어쩌면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못합니다.
가자 지구에 사는 사람이 거기에 살고 싶어 살겠어요?
북한에 사는 사람이 그곳에 살고 싶어서 살겠어요?
대한민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살겠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거죠.
여러분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데
그건 극소수의 사람이나 가능합니다.
주어진 일이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가볍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억지로 일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서 건강만 해칩니다.
해야 할 일은 기꺼이 받아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내려놓는 게 좋고,
육체적으로 피곤하다면 좀 쉬는 게 좋습니다.
수행이란 억지로 하지 않고
기꺼이 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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