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반응하기가 싫어집니다.
아들과 거리를 두려면
하숙집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너무 방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사춘기는 제2의 성격 형성 시기인데
그래도 아들에게 관심을 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적당한 마음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아주 마음씨 좋은 하숙집 주인 같은 역할을 하면 되겠네요.
질문자가 하숙집 주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숙집 주인 중에는 밥만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만 받으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보다는 비록 남의 집 아이이지만
‘혹시 밥은 잘 챙겨 먹나?’, ‘혹시 아픈 곳은 없나?’ 하고 살펴보는
하숙집 주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부모는 하숙집 주인처럼 지켜보기보다는
왜 밥을 안 먹었냐?’, ‘왜 공부를 안 하냐?’ 하고 간섭을 하죠.
만약 하숙집 주인이 간섭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그 하숙집을 나가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하숙집 주인은 좋은 마음으로 관여를 하더라도
지나치게 간섭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간섭하죠.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항상 지나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하는 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관심은 갖되 지켜봐야 하고, 표현은 하되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통이란 무엇일까요?
질문자는 지금 아이와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데
소통이란 아이가 내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와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니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거죠?
소통이란
상대가 내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 하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독재가 안 통한다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무조건 들어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때 아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는지 그냥 들어 보는 겁니다.
아이가 뭐라 말하면 먼저 들어 보는 자세를 갖고,
아이의 말이 내가 용인할 수준이고 아이와 합의가 되면
‘그래, 그렇게 해라’ 하면 됩니다.
합의가 안 되면
‘엄마는 그렇게 못 하겠다.’ 하면 됩니다.
이것은 강요도 아니고, 간섭도 아닙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내가 승낙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가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결정권이 나한테 있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있는 거예요.
그걸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를 아이가 결정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결정권이 나한테 있습니다.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내가 결정해야 하니까요.
그것은 간섭이 아니에요.
들어줄 만하면 승낙하고, 들어주기가 어려우면 거절하고
상대가 넘긴 공을 내가 받아서 처리만 하면 됩니다.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어질러 놓은 물건을 안 치워요.
저는 이런 습관이 성장하면서 책임감과 연결될까 봐 걱정되어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지고 정리하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인이 사춘기 아이는 집에서 좀 편안하게 해 주라고 해서
그냥 바라보기만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혹시 아이의 성장에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 번은 친구 사이에 쓰던 말투를 저한테도 써서 화가 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자기도 모르게 친구 사이의 말투를 저한테 썼다고
제가 화를 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우 제가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합니다.)
그렇게 불편한 자식하고 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무슨 외간 남자하고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시 말해 질문자는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건
질문자에게 아주 큰 스트레스죠.
그렇게 살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가 방을 어지르면 당연히 엄마로서 방을 치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우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는 것과
‘왜 방을 어질러 놓고 다니느냐? 치워라!’ 하고 화를 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아들이 방을 치웠으면 좋겠다면
방을 치우라고 의견을 전달하는 선에서 말을 하면 됩니다.
방을 안 치웠다고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 방을 안 치웠다고 왜 야단을 쳐요?
자기가 그렇게 살겠다는데요.
방을 안 치우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관점이 잡혀 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아이의 인격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는 도와줘야 합니다.
부모로서 방을 치우라고 말은 해줘야 해요.
그러나 그것을 하고 안 하고는 아이가 결정할 일이므로
그것을 안 한다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하더라도
엄마로서는 아이가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야기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의견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로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걸 강요하는 것은
지금 법적으로도 아동 학대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본인의 생각을
아들에게 강요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어지러워진 방을 치우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아들에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어질러진 게 보기 싫어서 치워주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 치워주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서 치워주는 거예요.
그러니 방을 치워주는 걸로 아이한테 생색을 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도저히 못 견뎌서 치워주는 거예요.
가능하면 어질러진 채로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꾸 치워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릇이 나빠지더라도 내가 보기 싫으면
나를 위해서 치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가능하면 어질러진 게 보기 싫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방을 치우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입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욕설을 하고 지내니까
엄마한테도 습관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온 겁니다.
그걸 시비할 필요는 없어요.
엄마에게 욕을 한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말버릇이 튀어나온 거예요.
그러나 엄마로서 얘기는 해줘야 하겠죠.
‘말투가 그게 뭐니?
그런 말투는 고치는 게 좋겠다.
물론 친구들이 하니까 너도 따라 쓰지만
바람직한 말투는 아니란다.’
이렇게 내 의견은 편안하게 얘기해 주지만
말버릇을 고치고 안 고치는 것은 아이의 선택입니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뭐든지 말할 수 있고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에게 망설임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말하면 아이가 들을까, 안 들을까?’
이렇게 눈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면 말해주고
내 말을 안 들을 것 같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스님 말씀을 들으니
제 말이 아이한테 상처를 줄까 봐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아이의 선택을 가볍게 들어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감을 들어 보니까 이해가 좀 덜된 것 같아요.
말이 좀 복잡하고 명료하지 않네요.
조금 더 살펴서
‘아이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하지 말고 질문자가 좋은 것을 하세요.
‘내 자식이라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것만 지키면 됩니다.”
...
이런 좋은 가을날
여러분 모두 마음 나누기를 풍부하게 하시고
매일매일 부지런히 정진을 잘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법 회원들은
지금이 정일사 수행 기간이니까
매일 300배 절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는 벼를 베고 타작하는 일이 한창일 때에
여러분들을 뵙지 않겠나 싶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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