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하루] 손자를 낳으라고 독촉하는 시아버지가 불편해요. (2025.02.12.)

Buddhastudy 2025. 2. 18. 20:28

 

 

저의 고민은 시아버님에 대한 스트레스입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아기 얘기를 하세요.

저도 노력하면 바로 아기를 가질 줄 알았는데

안 되다 보니 실망도 하게 되더라고요.

시아버님께 자꾸 그런 얘기를 들으니

나만 노력해서 될 일인가 싶어 남편에게

'아버님은 왜 만날 때마다 아기 얘기를 하시냐?

오빠가 중간에서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니

남편이 아버님께 따로 얘기를 드렸나 봐요.

아버님께서 '아들이 아기 얘기 그만하라고 그러더라.

아기 없어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셔서

'내가 아버님을 오해했구나' 하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얘기를 안 꺼내시겠거니 했는데

다음 날 아버님께서 TV를 보시면서

'너도 내가 어렵냐?' 이렇게 물어보셔서

'어렵죠. 그런데 처음보다는 많이 편해졌어요'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기분 나쁘신 표정으로

'그래서 아이가 있어야 더 가까워지는 거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부가 붙어 있어야 애도 생기지,

나 죽으면 아이 가질 거냐?'라고 하십니다.

매번 '나 죽으면' 이러십니다.

그래서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버님이 하신 말씀들이 떠올라서 잠도 잘 못 잘 때도 있습니다.

시아버님을 만날 날이 있을 때마다 미리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어른들이 나름대로 자기 걱정이 돼서 한 말인데

젊은 사람한테는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아버님이 많이 외로우시구나.

그래서 손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별일이 아닙니다.

 

노인은 주변에서 설명한다고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남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오기 때문에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이 노인의 특성입니다.

아버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 노인들이 그렇습니다.

농담 삼아 '한 번 더 하면 100번입니다'라고 할 만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노인들의 특성이기 때문에

그러려니하고 지내면 좋겠다 싶네요.

 

질문하는 내용을 제가 가만히 들어봐도

'영감이 많이 외로우시구나. 그래서 손자를 많이 기다리시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거든요.

거기에 대해 일일이 대꾸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 시아버님이 아기 얘기를 하면

'노력해도 잘 안 되네요.

우리도 원하는데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나고 죽는 게 사람 마음대로 안 되네요'

이렇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곧 생길 거예요'

이렇게 위로를 해드리면서 가볍게 넘어가도 됩니다.

심각하게 생각해서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 연구까지 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누구를 보면 무슨 얘기든지 하거든요.

어린아이들한테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물어보면,

왜 어른들은 너 몇 살이니?’, ‘너 이름이 뭐니?’, ‘아버지는 뭐 하니?’

이런 질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이 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대답하기가 너무너무 귀찮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가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아버지가 뭔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아이하고 대화하는 방식이 그런 겁니다.

아이를 딱 만났을 때 아이하고 다른 할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첫 번째로 묻는 것이 너 몇 살이니?’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묻는 것이 너 이름이 뭐니?’ 하는 것이고,

세 번째로 묻는 것이 너희 아버지는 뭐 하니?’입니다.

 

사실 네 살인지, 다섯 살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몇 살이냐고 물으면

일곱 살입니다라고 하면 되고,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개똥이입니다'라고 하면 되고,

너희 아버지는 뭐하냐고 물으면 아무렇게 대답해도 돼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뭔가 말을 해야 되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면 이렇게 전형적인 말을 해요.

만약 질문자가 결혼을 안 했다면 친정아버지를 만났을 때

무슨 특별히 할 말이 있으면 몰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으면 친정아버지가

'언제 결혼할래?' 이렇게 묻는 겁니다.

 

질문자가 백수라면

'너 언제 취직할래?' 이렇게 묻는 겁니다.

그게 일반적으로 할 말이 없을 때 정형화된 사람들의 대화법이에요.

 

사람들이 스님 만났을 때도

자기 고민이든 뭔가 할 말이 있으면 그걸 얘기하는데,

별로 할 말이 없으면

'스님은 왜 출가했어요?' 이렇게 물어요.

그런 질문이 나오면 제가 금방 알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고

저 사람이 나한테 별로 할 말이 없구나' 이렇게 알기 때문에

제가 왜 출가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빙긋이 웃으면 돼요.

그냥 할 말이 없을 때 하는 사람들의 대화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났는데 말은 해야 되고 특별히 용건은 없다면,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기는 언제 가질 거니?'

이렇게 묻는 것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언제 결혼할 거니?' 이렇게 묻는 것이 일반적이고,

백수로 사는 사람에게는 '언제 취직할 거니?' 이렇게 묻는 것이 일반적인 대화법이에요.

 

그걸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고, 귀찮아할 필요도 없어요.

그것처럼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일정하다면

'아버지가 외로우시구나. 손자를 기다리시는구나'

이렇게 그냥 이해하고 적당하게 대답하면 됩니다.

 

'곧 생길 거예요' 이렇게 희망을 주든지,

'잘 안 되네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됩니다.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한다이런 말이 더 이상하잖아요.

무슨 노력을 해요?

아버님이 '둘이 같이 있어야 아기가 생기지' 그러면

',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아버님이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노인들의 얘기는 그 앞에서 '알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시아버지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예민한 거예요.

어쩌면 아기가 잘 안 생겨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까

괜히 시아버지의 말에 시비를 걸고 있는지도 몰라요.

시아버님의 얘기는 노인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에 해당합니다.

 

...

 

시아버지의 말버릇이 그런 걸 어떡해요?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인데, 그걸 왜 친정어머니와 비교해요?

그걸 비교해서

이 사람은 점잖은데 너는 왜 안 점잖으냐?’,

이 사람은 말이 조용한데 너는 왜 목소리가 크냐

이렇게 따지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요?

사람마다 성격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친정아버지는 남을 배려하는데 시아버지는 왜 자기밖에 모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에요.

'시아버지는 친정아버지와 성격이 좀 다르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시아버지는 나쁘고 친정아버지는 좋다

이렇게 보는 마음을 분별심이라고 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