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2024.10.21.)

Buddhastudy 2024. 10. 24. 19:59

 

 

저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며 '빨리빨리' 성향이 강합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이런 감정들이 부정적인 마음으로 연결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렇게 바라는 마음이 많지?' 하는 마음이나

이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들고

혹은 주변 사람들이 화를 내면

왜 저렇게 화를 내지?’ 하며 저도 함께 화를 내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제 안에서 화가 나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 순간에는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요?”//

 

 

여기 음식이 있어요.

향기도 좋고 빛깔도 좋고 맛도 좋아 보여요.

나는 배가 고파요.

그래서 먹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거기에 독이 들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

 

그럴 때 배고프고 냄새도 좋고 맛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안 먹어요?’

이런 얘기는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음식에는 독이 들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부처님이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간섭이 일절 없습니다.

사람들이 독을 먹으려고 할 때

'거기 독 들었다' 이렇게 얘기해 줄 뿐입니다.

 

먹고 안 먹고는 누가 결정하는 건가요?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내가 살고 싶으면 먹고 싶어도 안 먹어야 되고,

죽고 싶으면 먹고 죽으면 됩니다.

 

여러분은 먹고 싶을 때

안 먹는 것만 수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표가 살고자 하는 것이면

먹고 싶어도 안 먹는 게 수행입니다.

그런데 꼭 이것만 수행이 아닙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죽는 것도 수행입니다.

, 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입니다.

 

돈을 빌리고 싶으면 빌리세요.

대신에 이자 쳐서 갚아야 해요.

그런데 이자 쳐서 갚아보니 너무 힘들다면

다음엔 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어요.

그래서 '부처님과 하나님께 비니까 안 갚아도 된다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존의 종교였습니다.

 

저는 열심히 종교를 믿으면

안 갚아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뜨거운 컵이 있습니다.

이 컵을 들고 있으면서

'어떻게 놓습니까?' 하고 물으면,

저는 '들고 있어라' 이렇게 대답합니다.

 

안 놓아지면 계속 들고 있어야지 어떡해요?

'손을 데잖아요' 하고 아우성을 치면

'그럼 놓아라' 하고 말합니다.

'안 놓아지는데요' 하면

'그럼 들고 있어라' 하고 말합니다.

말장난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려면 항상 선택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잘하는 겁니까

이것이 아니에요.

 

어떤 선택을 하면 잘 될까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는 태도입니다.

 

결혼을 해놓고 상대에게 맞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한 집에 살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하고 받아들여야

지지고 볶고 살지만 괴롭지는 않게 됩니다.

지지고 볶고 사는 게 괴로우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전통적으로 배운 수행은

'상대에게 맞춰라', '화합해라', '하지 마라'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합의를 보고 같이 살든지

합의를 보고 헤어지든지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했으니 반드시 같이 살아라'

이런 말을 저는 안 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결혼할 때는 좋다고 덜렁 해놓고

막상 살아보고는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합니다.

또 마음에 안 들어서 덜렁 이혼을 해놓고는

'구관이 명관이다' 하면서 후회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할 때는 처음이니까 그랬다 하더라도

이혼할 때는 조금 신중해라 이겁니다.

첫 번째 실수를 했으면

두 번째는 조금 신중하게 검토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똑같이 그냥 덜렁 해버려요.

 

저는 여러분이 결혼하든 이혼하든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혼하지 마라이런 말도 절대 안 합니다.

다만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말은 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약속을 깼으니까

이혼할 사유가 될 뿐이에요.

바람피운 사건을 두고

남편과 계속 살 거냐 안 살 거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남편과 헤어지고 나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면 괜찮아요.

그런데 만약 재혼을 한다면

총각이나 처녀하고 결혼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한 번 결혼했던 사람하고 결혼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남하고 오랫동안 살던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나아요?

나하고 살다가 잠깐 바람피운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게 나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내 차를 잘 몰고 다니다가 기스가 나서 그걸 갖다 팔아버렸어요.

그런데 내가 새 차를 살 돈은 안 돼요.

그래서 중고차를 사러 갔는데

내가 판 차보다 못한 차를 사게 되었어요.

그럴 때는 기스 난 차를 팔았다가

다시 중고차로 사 오는 것보다는

기스가 나서 조금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타던 차를 계속 타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니 이혼을 하고 나서 재혼을 할 때는

나하고 이혼한 그 남자도

재혼 대상에 포함시켜야 되는 겁니다.

이게 현명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자신이 챙길 수 있는 이익을 다 놓칩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거든요.

 

조금 지혜롭게 사세요.

이익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진짜 자기 이익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누가 칼로 찌른다고 하면

'아이고, 무서워' 하고 도망을 가야 됩니다.

배를 딱 내밀고 '까짓것 찔러라' 이렇게 나오는 건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찔러라이렇게 나가면

상대가 처음에는 겁만 주려고 했다가

안 찌를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 다투다가

이럴 바에 이혼하자!’라고 한다면

이게 무슨 소리예요?

이혼하자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네가 굴복하라는 얘기입니까?

네가 먼저 굴복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바로 알아듣고 무릎을 딱 꿇고

'여보, 이혼만은 안 돼' 이렇게 유머 있게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성질을 못 이겨서

'그래, 이혼하자' 이렇게 나가니까

다음날 아침에 후회를 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 카드를 세게 꺼내는 것은

'네가 굴복 좀 해라' 이런 뜻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상대가 그릇을 방바닥에 탁 집어던지면

여러분은 '이게 어디서 그릇까지 깨?'

이렇게 화를 내죠.

그럴 때는

'차마 나를 못 때리니까 그릇을 깨는구나.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하고

탁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나를 아껴서 차마 못 때리고 그릇을 깨는구나.

고마워!'

이렇게 유머스럽게 대응하면

갈등이 증폭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질을 못 이겨서 그렇게 못 합니다.

 

이렇게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말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또 스님은 말한 대로 다 되나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스님도 안 되면서 왜 우리 보고는 하라고 그래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 주죠.

 

'여러분들은 결혼을 했으니까요.

스님은 안 돼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는 제가 안 되는 줄 알고

아예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선택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안 되는 주제에, 자기 주제도 모르고

결혼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스님이 되냐 안 되냐? 이혼을 하냐 안 하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예요.

 

결혼한 사람이 수행을 많이 해야 되겠어요?

혼자 사는 사람이 수행을 많이 해야 되겠어요?

 

...

 

결혼한 사람은 좋은 점이 있는 반면에

그 대신 수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좋은 점이 없는 반면에 수행을 안 해도 돼요.

자기 혼자 사는데 수행을 따로 할 게 뭐 있어요?

 

거꾸로 서 있든, 발가벗고 있든,

뭐라고 나무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면

누구든지 서로 맞춰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떤 분이

스님의 얘기가 굉장한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스님이 하는 얘기는 지극히 상식적이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맞아요. 진리는 고상한 게 아니라 상식입니다하고 대답했어요.

 

실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빡빡한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하기 때문에 지금 사는 게 힘든 것입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