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외국에 가서 살았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제 한국에 살다 보니까,
한국에서는 저는 외국인이고
외국에서는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갈등도 받고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요,
그래도 외국에서의 삶이 더 행복했었던 거 같아서
외국에서 박사 과정을 하면서 이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 음식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한국인이고 여자 친구도 한국인인데 이민을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 많이 슬픈데요,
저의 정체성을 좀 더 견고히 하고 어떻게 하면 이민을 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제가 이 얘기 놔놓고 질문을 한번 해볼게요. 감자 알죠? 뿌리채소잖아 그죠? 토마토는? 열매가 달리잖아 그죠? 만약에 유전공학자가 이 둘을, 감자하고 토마토를 유전자조작을 해서 뿌리에는 감자가 달리고 그 다음에 줄기에는 토마토가 달리도록 만들 수 있을까? 없을까? 충분히 발전하면 가능할까? 지금도 가능할까? 그건 아주 쉬운 거요. 지금도 가능해.
그러면 지금까지의 종, 종자라고 하는 종 있잖아. 그죠? 그것은 자연에 의해서 선택된 거요. 그런데 인공적으로 종을 만들 수 있어요? 없어요? 있게 되었어. 그래서 앞으로 인간은 신의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힌다. 이런 말을 한단 말이오. 그 이유는 옛날에 종이라는 것은 누가 만들었다? 신이 만들었다. 만물을 신이 창조했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까, 그것을 신의 영역이라고 해놓으니까, 인간이 종을 만들 수 있으니까, 신의 영역까지 넘본다.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거란 말이오.
그러면 이것에 정체성은 어떻게 가져야 할까?
감자가 아니다.
토마토도 아니다.
이렇게 해야 될까?
감자이기도 하고
토마토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잡아야 될까?
그런데 이 세상에 지금까지는 감자하고 토마토밖에 없었잖아. “감자네” 하려니까 토마토가 달려있으니까 “감자 아니네.” “토마토네” 하려고 하다보니까 감자가 달리니까 “토마토 아니네.” 이렇게 해서 이 생물은 정체성이 없는 걸까? 이 생물은 감자와 토마토가 동시에 달리는 새로운 종, ‘감토’라고, ‘감토’라고 하는 새로운 종일까? 그래. 자기가 지금 그렇단 말이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자라는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그러고,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만 자라난 사람은 미국인이라고 그러고,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살기는 미국에서 산다. 그러면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그런단 말이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그런단 말이오.
그러면 지금 까지는 한국인 미국인 두 종밖에 없었다. 이 말이야. 거기에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 사람은 뭐다? 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인종적으로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역시 한국인이 아니고, 이럴 꺼 아니오. 그죠? 그래서 정체성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종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에는 3종류의 종이 있다. 어떤 종? 코리언, 아메리칸, 코리언아메리칸. 이렇게. 종이 3개 있단 말이오.
자기가 미국 가서 살았다면 종이 뭐로 변했다? 코리안아메리칸은 코리안이라고 하기에는 코리안 하고 다르고, 아메리칸이라고 하기에는 아메리칸 하고 다르고, 그러니까 남의 종에다가, 자기 정체성은 자기를 기준으로 해야 되는데 남을 기준으로 하려니까 자기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거지. 자기를 기준으로 하면 자기는 코리안아메리칸이 자기 정체성이란 말이오. 그러면 한국 사람은 한국말 밖에 할 줄 모르고, 미국 사람은 미국말밖에 할 줄 모르는데, 자기는 한국말도 할 줄 알고 미국말도 할 줄 알지.
그러니까 아까 감자하기도 하고 토마토이기도 하니 감토, 새로운 종이다. 나는 새로운 종이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새로운 종만 있는 게 아니라, 인류학적으로도 자기는 새로운 종이다. 왜 이 새로운 종이 태어났을까? 옛날에는 태어난 데서 자랐단 말이오. 이동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동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종이 생겨나게 된 거요. 인류학적으로. 그래서 자기는 새로운 종이에요.
자기가 새로운 종이다. 자기는 한국 사람한테 한국말을 내가 한국 사람만큼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미국사람만큼 영어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그렇게 따지면 나는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미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이것은 남에게 기대어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거란 말이오. 그럼 자기 정체성은 어떻게 해야 된다? 한국 사람보다는 자기는 영어를 잘하지? 미국 사람보다는 한국말 잘하지. 그게 자기 정체성이오.
“넌 하나밖에 못하지? 난 둘 한다.” 이게 자기 정체성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기 고유한 것을 잡아야지 남에다가 견주면 안 된다. 이 말이오. 한국사람 정체성을 한국 사람으로 잡지, 일본사람에게 견주어서 한국 사람을 잡나? 아니잖아. 그렇듯이 자기는 새로운 종이다. 나는 새로운 종이다. 그래서 그 이머그레이션 쓸 때 “너 어디서 태어났니?” “너 지금 어디서 사니?” “너 국적이 어디니?” 그러면 나 같으면 전부 다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이렇게 쓰잖아. 그래서 난 그거 볼 때마다 쓸데없는 거 3개를 쓰라고 하나.
그런데 이 3개는 여행하는데 에서는 자기 태어난데 하고, 자기 국적하고, 현재 자기 사는 곳이 다 다른 사람도 있나? 없나? 굉장히 많아. 그래서 그게 이머그레이션에는 그게 필요한 거요. 그런 것처럼, 이제는 세계가 다른 문화에 지금 다른 조건에 처해 있다. 이거야. 조금 더 지나면 종이 많이 바뀌어.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유전자를 조금 조작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러니까 우리에게 기억력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유전조작을 한다든지, 수명이 더 오래 사는 유전조작을 한다든지, 병에 강한 유전조작을 한다든지, 이것도 가능하죠. 이미 생물학적으로 가능하잖아. 그죠? 이렇게 해서 지금의 자연에 의해서 주어진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제3의 인간으로, 갈 수도 있어요. 이게 자연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지적설계에 의해서 갈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사이보그라고 들어봤지. 지금 나부터도 사이보그에요. 어떤 부분이 사이보그다? 안경, 나도 지금 이 생물학적인 유기물에다가 지금 안경이라는 무기물을 섞어서 이렇게 도움을 받아쓰고 있어요? 안 쓰고 있어요? 쓰고 있죠. 그러니까 이것을 아예 눈이 안보여도 전자칩을 박아서 지금 시각장애인들을 다 볼 수 있게 곧 만들어집니다. 팔이 없으면 요즘은 의수를 넣어서 대신 팔을 만들어서 하는데, 생각을 하면 팔이 움직이게 하는
즉, 뇌신경과 연결시켜서 칩으로 팔을 움직이게 하는 기술까지 이미 도달을 했습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게 되면 유기물과 무기물이 뒤섞여 있는 제3의 종이 나오겠죠. 영화에도 나오잖아. 그지. 이런 종도 나올 수 있고, 순수한 무기물종만 나올 수 있어요. 어떤 거다? 로봇. 그럼 인공지능에 의한. 바둑은 인공지능한테 못 이긴다 그러잖아. 우리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이 대다수 하잖아.
지금 주유소 가도 다 셀프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다 자동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게 점점점점 발달하면 운전도 앞으로 어때요? 운전수 없이 자동으로 하는 게 곧 생활화 됩니다. 많은 부분이 이렇게 바뀌어간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의 개념이 나오는 거요. 지금 생명의 개념과 달리. 지금의 생명의 개념인 유기질에다가 유기물에다가 유전자조작한 생명이다.
안 그러면 유기물과 무기물이 결합한 거든, 안 그러면 순수한 무기물로ㅅ의 인공지능 로봇이든. 이런 새로운 세계가 앞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지금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또는 지구의 역사와 다른 차원으로 가는데 그게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몰라. 지금 그런 정도의 세계가 곧 코앞에 지금 닥쳐오고 있는데,
무슨 내가 한국 사람이냐? 미국사람이냐? 이런 무슨 전근대적인 발상을 하고 있어. 수준이하다. 그 수준에 박사해서 뭐하겠어?
그러니까 조금 더 사고의 자유라고 그럴까? 이런 것을 넓히고.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는 항상 좀 불안해요? 안 불안해요? 예. 그런 것처럼, 다수가 점유하고 있는 한국사람, 다수가 점유하는 미국사람이라는 데서 자기가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소수에 속하잖아. 그죠? 소수에 속하면 소수는 다수에 의해서 차별을 좀 받아요? 안 받아요? 받아요.
그러니까 이게 좀 불안하고 아직 자기 정체성을 잘 못 갖는 거요. 그러니까 온 우주가 다 한 종류라도 나 하나라도 자기 정체성을 딱 가지고 살아야 돼. 온 천하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 5천만이 다 기독교인이라도 나 혼자 불교인이라도 아무렇지 않아야 돼. 그렇게 자기 정체성이 딱 있어야 돼. 고집하는 거 하고 성격이 틀려.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가 미국에 살든, 한국에 살든, 홍콩 가서 살든 그것은 자유인데, 그런 자세로 살아야 돼. 그러니까 자기가 미국에 살아도 한국 음식 먹을 수 있나? 없나? 그런데 뭘 먹는 것 갖고 걱정이오.
왜 한국 음식을 좋아할까? 어릴 때 입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래. 자기 또 늙으면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이 그리워질까? 안 그리워질까? 그리워집니다. 왜? 어릴 때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회기성이라고 그래서 생물학적인 본능이에요. 콩을 심으면 콩하고 아무 관계없는 식물이 자라는데, 끝에 가서 열매를 딱 맺히면 처음에 심은 거 하고 똑같이 돼.
그런 본성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 살 때는 젊어서는 좋은데 늙으면 다시 외로워져. 그런데 그것을 기꺼이 감수해야 돼. 스님도 결혼 안하고 혼자 살면, 감수해야 될 게 있을까? 없을까? 대신에 또 좋은 점도 있을까? 없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항상 좋은 것만 찾고 나쁜 것은 감수 안하려니까 문제잖아. 그건 선택에 따른 결과는 감수해야 된다. 그런 자세가 좀 필요한 것 같아.
아까 조금 전에 물었던 뒤에 호주 살다 오신 분도 마찬가지죠. 늘 좋은 것만 자꾸 쫒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토로하는 거요. 그러면 자기는 외국 살다 왔기 때문에 외국 가서 사는 게 괜찮은데, 부인 될 사람은 여자 친구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살았다 그러면 외국에서 사는 건 불편할까? 안할까? 그래서 둘이는 헤어질 가능성이 높은 거요.
그게 무슨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게 인지상정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을 서로 배려할 줄 알아야 돼. 내 불편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편 불편한 것까지 고려하는 것, 상대를 배려하는 게 사랑이지 “난 너 좋아.”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에요. 욕망.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사랑이오.
성폭행이라는 게 뭐요? 좋아하는 거요. 그것도. 그런데 상대를 전혀 배려를 안 하니까 폭력이라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에요. 그러니까 사랑은 원래가 이해와 배려가 사랑이라고 그러지,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오. 그것은 욕망이지. 그러니까 여자 친구를 좋아만 하지 말고, 사랑해야 돼. 알았죠?
거의 사이코 수준이다. 그런데 자꾸 좋은 것만 자꾸 따서 생각하는 거요. 그것은 안 돼. 결혼을 왜하나? 같이 살려고 결혼하나? 애 낳으려고 결혼하나? 같이 살려고 결혼했는데, 떨어져 살겠다면 결혼을 하면 안 돼지. 그런 생각을 갖고는 결혼을 하면 안 돼.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오. 그리고 엄마는 자기를 키우는 것으로 끝나지. 왜 남의 애를 왜 키워야 돼? 그게 무책임한 거요. 자기가 아직 성인이 안 되었다는 발상이야.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 애는 누가 키워야 된다? 내가 키워야지. 누구 손에도 넘기면 안 된다. 내가 죽어버려서 돌볼 사람이 없을 때는 넘길지 몰라도. 강아지도 자기 새끼를 남한테 안 넘기는데, 사람이 자기 새끼를 남한테 넘긴다 그러면, 그것은 아직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요. 미성년자를 애를 낳아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요.
그래서 애를 낳아서 친정엄마 시어머니한테 맡겨놓고 직장 다니고 이런 것은 아직 어른이 안 된 사람이오. 생물학적으로만 성인이 되어 애를 낳았지, 정신적으로 한 아이의 어미로서 그 아이를 보호할 준비가 안 되어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애기 낳으면 안 돼요.
그리고 애기를 자기가 미국에 살면 한국에 태어나도 미국에 살면 미국사람 되듯이, 애기를 할머니가 키우면 그게 할머니 아이일까? 내 아이일까? 그렇지. 그럼 자기 하고 형제가 되는 거요. 여러분들 몰라서 그래. 내가 길게 얘기하면 그거 하니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살기 바랍니다. 정체성은 자기 정체성은 제3의 별도의 정체성입니다. 아시겠지요? 네.
자기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물을 걸 물어야지. 내가 자기한테 “너 진짜 네가 원해서 가나? 네가 이끌려서 가나?” 내가 물으면 자기가 대답을 해야지.
어떤 남자가 와서 그래. 제가 이 여자하고 결혼하면 좋겠어요? 안하면 좋겠어요? 이런 거 하고 똑같아. 내가 “저 여자하고 결혼할거니 안 할 거니?” 내가 물어봐야지, 자기 결혼하는 것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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