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작년 입시에서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와 지방 국립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딸은 집안 경제 사정을 고려해서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인 것 같아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게 울 일이에요? 지금?
그만한 일에 울 일이에요? 그게? ㅎㅎ
울 일이 아닌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자기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지금 반증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아이가 서울이 가겠다고 하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데
집안 형편이 안되니까 야단을 쳐서 지방대학에 보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도 잘못하고 늘 불평불만을 한다,
이 정도 되면 엄마가
“아이고 어렵더라도 그냥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낼걸
내가 애한테 너무 박하게 했나, 잘못했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가 이렇게 보고
서울사립대하고 지방국립대 보니까
지방국립대 입학금도 등록금도 싸고 또 지방도 국립대도 괜찮은 게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스스로 선택했는데
지금 엄마가 그걸 가지고 자책하고 있다는 것은
그건 좀 지나치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자기가 그걸 자꾸 자책하게 되면
애가 엄마를 위하는 방법은 뭐요?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해서 다시 시험치라는 얘기에요.
자기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을 지금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딸에게도 부담을 주고 있고
자기 자신도 괴롭히고 있다.
이런 걸 뭐라고 그러냐?
바보 같은 짓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바보 같은 짓을 안 하면 되지, 해결책이 없어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바보라는 게 뭐예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헛짓하는 거를 바보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자기가 지금 헛짓을 하고 있다.
그렇게 걱정해서 뭐가 좋아지는데?
자기 건강이 좋아져요? 돈이 생겨요? 애가 공부를 더 잘하게 돼요?
그렇다고 애가 서울 사립대로 올 수 있는 거예요?
아무 도움도 안 되고, 백해무익한 생각을 지금 하고
거기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하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런 바보 같은 생각 그만 해라.
한번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죠.
“아이고 좀 어렵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도록 하는 게 좀 낫지 않았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은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래, 그게 낫다 하더라도 지금 어떡할 거예요? 이미 지니 간 일인데
그래, 공부 잘하고 있으니까 또 본인이 선택한 거니까”
이렇게 놔야 한다.
아이가 나중에 자기 선택이 잘못됐다고 후회를 해도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래, 그런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대학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엄마가 살았던 과거 시대에는
어떤 대학을 나놨냐가 살아가는데 굉장히 영향을 많이 끼쳤다.
그러나 너희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는 그게 별로 중요 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런데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면 된다.”
옛날에는 유학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기술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 어떤 건 50년, 어떤 건 30년 뒤떨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 공부해오면 20년 30년을
더 이상 공부 안하고도 그것만 갖고 노트만 갖고도
20년, 30년을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해도 되었어요.
그런데 이 간격이 점점점 좁아져서
항공우주, 이런 데는 아직도 10년 20년 떨어진 부분이 있는지 몰라도
대부분은 2~3년 차이 나거나 거의 다 근접해버렸어요.
어떤 건 오히려 한국이 더 실용적 기술은 앞선 것도 있다, 이런 얘기에요.
이런 시대에는 외국에 유학해 봐야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유학하고 돌아오면 이미 한국은 그보다 더 앞서갔기 때문에
박사학위 따 봐야 별로 쓸모 없다, 새로 또 공부해야 해요.
그러니까 유학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시대에 우리가 지금 접근하고 있는데
한국 안에서 어느 대학 다녔냐?
이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
우리 BTS 노래 부르는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 아니면 서울대학 나와서 그렇게 됐느냐?
걔들이 유학 갔다 와서 그렇게 됐느냐?
오징어게임 만든 사람들이 유학 갔다 와서 그렇게 됐느냐?
이런 걸 생각해 보셔야 한다.
그러니까 따라 배우기 시대는 이제 지났다.
우리가 새로운 거를 창조해야 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놓여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안간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케이, 그래 잘 생각했다.
그거 4년간 몇억을 내느니
오히려 그걸 가지고 세계도 한번 둘러보고 여행도 하고,
중국 인도 이런데도 한번 가보고
그렇게 해서 오히려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다가
나중에 네가 필요하면
정말 이건 꼭 내가 어디 가서 배워야 하겠다 할 때
그때 가도 된다.”
이렇게 열어주는 게 좋은 시절이에요.
앞으로 인공지능이 자꾸 발달하게 되면
지금은 변호사, 의사, 약사, 뭐 이런 사자붙은 것들이 굉장히 우리 사회에서 고수익을 가져오고 보장된 직업이잖아요.
그러데 이런 정형화된 지식이나 기술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다 대처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빅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그런 어떤 변호문 판결문이
사람이 쓴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고
거기서 진단되는 게 사람이 진단하는 거보다 더 나을 수도 있고
그러면 다 직업을 잃게 됩니다.
지금은 그저 계산하는 이런 게 자동화 되어서 거기서 잃게 되지만
조금 있으면 그래요.
그러면 그 아이가 사회 나가 활동하려면
적어도 10년, 제대로 활동하려면 20년 지난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뭘 아는 척하고 걱정하고 그래요.
애가 물어도
”아이고, 엄마가 뭐를 아니? 시대가 이렇게 빨리 가는데.
옛날에 우리는 그저 우리 살 때 그것밖에 몰랐지 않았냐.“
제가 고등학교 다니다 절에 들어왔는데
만약에 제 부모님이 지금 질문자처럼 대학이나 나오고 지식인이었다면
고등학교 다니던 애가 절에 다니는 거 허용했겠어요?
절대로 안 했지.
그런데 우리 어머님은 초등학교도 안 다닌 그런 분이시니까
처음에는 아이가 절에 갔다니까 울고불고 야단을 쳤는데
우리 스님이 ‘이 아이가 단명한다, 세상에 있으면 단명한다’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그러면 스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가셨단 말이에요.
그게 부모의 사랑이다.
꼭 내 맘대로 해야 사랑이 아니라
아이에게 좋다면, 나는 어째도 좋다, 내가 못 봐도 좋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한다.
제가 지금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가서 자기 같은 부모 만났다면
저는 이 길을 올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오겠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확실히 인지를 했다는 거예요.
“아, 내가 모르고, 스님께서 더 잘 아시니까
그럼 아시는 분이 지도하십시오”
그렇게 된 거란 말이에요.
자기는 지금 20년 뒤를 어떻게 알아?
지금 미래 학자들도 지나놓고 늘 평가하지, 지나놓고 난 뒤에.
선거도 선거 전에 맞춘 사람이 있나?
늘 지나놓고, 늘 이래저래 말해놓고 그게 맞으면
“내가 처음부터 맞췄다” 늘 이렇게 얘기하지.
그러니까 그런 걱정 할 필요 하나도 없다.
대학에 안 가도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사실은.
제가 생각할 때는 지금 고등학교 졸업하고
특별히 자기가 의사가 되겠다, 뭘 전공하겠다는 게 아니면
저는 학교 안 가는 게 훨씬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 지금 다니면서 배우는게 아무 가치가 없다, 이런 얘기에요.
제가 지리를 잘 알아요.
그래서 전세계 어디를 가도 제가 처음 가도 지도 보고 딱딱딱 찾아가거든요.
제가 운전을 못해도 운전수 놔놓고 제가 ‘어디로 가자, 어디로 가자’ 이랬는데
요즘 내비게이션 나오고
제가 차 타고 자는 일이에요.
내비게이션이 다 안내하지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런데 요번에 우쿠라이나 답사할 때는 전부 제가 컨트롤 했습니다.
제가 구글 지도 확대해서 보고
...
이렇게 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서울에 있는 대학이니, 지방에 있는 대학이니
그건 자기 자랄 때, 자기 친구들 지금 좋은 대학 나와 공무원 되었다, 뭐 되었다,
고시 공부해서 뭐 되었다,
이런 생각에 지금 사로잡혀서 자녀를 평가하고 있다.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법회가 딱 끝나는 거로 자긴 딱 잊고
아이가 뭐 물어도 아는척 좀 제발 하지 마라.
“엄마가 뭘 아니?
너 밥이나 해주고 옷이나 빨아줄 테니까 변화된 시대에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
열심히 해봐라.
놀아도 괜찮아. 모를 때는”
모르는 게 산에 등산할 때도 막 앞에 가서 길 틀렸다하면 도로 내려와야 하잖아.
게으른 사람이 밑에서 놀다가
‘야, 되로 돌려라’ 이러면 그 사람 제일 앞에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 때는
빨리 뭐 하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지금.
그러니까 스님 같은 사람, 고등학교 다니다 관둬버린 사람도 이렇게 잘 살잖아.
외국에 유학도 안가고 영어를 할 줄 몰라도 외국인 상대로 다 살잖아.
얼마나 쉬운지, 이 기계 때문에.
여기서 내가 말하고 영국에서 질문하고, 미국에서 통역하고
시골 폐교에서 그게 다 통하는 시대에요.
영어 할 줄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어떠냐?
구글 번역기가 나오면
거의 여기서 제가 한국말로 하면 전세계에서 40개 국에
동시에 통역해서 다 통역이 됩니다.
한 10년만 더 가면.
우리가 외국어 배우고 이럴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별로 도움도 안 되는 그 구닥다리 생각 갖고
울고불고 그래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알았죠?
...
아이고 또 잘하려고 그런다.
대충하시오.
다 큰 엄마도 모르는데 애가 뭘 알겠어?
“애가 다 잘하겠지” 이렇게 믿지 말라니까.
“나도 잘 못하지만 살 듯이
너도 잘 몰라도 산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뭐, 그래, 그 잘한지 못하는지 말 모르지만
잘못해도 괜찮아, 그래도 잘할날이 있겠지”
이렇게 탁 열어줘야 하지
‘내가 잘할 거라고 믿는다.’
이러면 또 못한다고 시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이 못할 수도 있지, 어떻게 다 잘해.
그러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렇게 모르는 자기를 알아야 해.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모르는 게 아는 척하는
이게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다.
'법륜스님 > 즉문즉설(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학교] 법륜스님 현대인의 삶 왜 그렇게 바쁜가요? (0) | 2022.12.07 |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65. 3년째 월급을 못 주고 있는 남편의 카드를 쓰시는 시어머니 (0) | 2022.12.05 |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참사에 슬퍼하는 것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0) | 2022.11.30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64. 아이들에게 입양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0) | 2022.11.29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63. 저는 결정을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0) | 202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