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자신이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요청을 거절합니다[00:09].
스님은 영적 수행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00:31].
스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고집하는 한 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01:39].
스님은 자아를 포기하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자는 고집을 부렸습니다[03:11].
스님은 행자의 결단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사원에 가서 다른 스승의 지시를 따라 1년 동안 수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03:59].
행자는 사원에서 거절당했을 때
스님에게 돌아와 그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05:54].
스님은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순종과 자신의 의지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06:47].
좌절한 행자는 결국 떠났습니다[07:13].
스님은 진정한 영적 각성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어려운 과정이므로
가볍게 스승과 제자 관계를 찾는 것을 경고합니다[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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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회 한 번 주십시오//
노 땡큐!
(기회 한번 주십시오.)
스승과 제자라는 것은 수행에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 옳다 하는 거를 버릴 때, 이게 새로운 게 보인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 모두는 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가 옳다는 걸 움켜쥐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면 그걸 버리도록 내가 버리겠다는 분명한 태도가 돼 있어야 되고
스승도 그걸 도와줄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 그걸 만약에 안 버리면 어떻게 돼요?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안 받겠다는 거는
원수 되기 싫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제 친구가 되자 그냥
그건 왜?
친구는 그걸 버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
“너 좋은대로 살아라” 이렇게 하면서 서로 교류하는 거거든
이렇게 자유롭게.
근데 수행에서의 제자라는 거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자기를 놔야 되거든요.
자기를 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그래서 조금 시간이 늦었지만 얘기하면
제가 한 20년, 한 30년 전에 어떤 젊은이가 찾아왔어요.
절을 하고는
“제가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너 그동안에 뭐 했니?
“예. 제가 송광사에도 가서 3개월 행자 생활해 봤고
해인사에 가서도 3개월 행자 생활해 봤고
어디 가서도 해봤습니다.
근데 스승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스님 법문을 어떻게 듣고
이분이 나의 스승이다,
이분만이 나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수행이란 건 뭐냐?
자기를 버리는 건데
자기를 버리려면 내가 뭐라 하든 네가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된다.
“그거 아닌데요.”
이건 자기 생각이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위험하죠.
이게 잘못되면 노예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또한 이걸 내려놓으려면 뭐든지
“네” 하고 군말이 없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사람이.
그러면 우리 원수 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난 원수 되기 싫다.
그냥 여기 와서 그냥 도반으로 같이 살자
“아닙니다. 저는 스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그냥 굳이 원수 될 게 뭐 있나, 우리.
무슨 원한 관계도 없는데, 그러니까 이와 같이 살면 어떠냐?
“아닙니다. 자기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반드시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너 정말 그렇게 하겠니?
그러니까 “예”
그러면 그러면 지금부터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하고 삼배를 새로 해 봐라.
요 이후로는 너는 뭐든지 내가 말하면
‘네 하겠습니다.’
이렇게만 해야 된다.
“네 그렇게 하죠.”
세 번 딱 절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게야, 저 어느 절로 가라, 그랬어요.
“아니 왜요?”
그 절에 가서
거기 가면 아무개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뭐라고 하든
너 거기 1년 살다가 오너라.
“아니 스님 아까 제가 분명히 얘기했지 않습니까?
제가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요.
내가 그 스님 제자 되려고 여기 찾아온 거 아닌데요.”
안다 내 다 안다,
그래 니 제자가 된다고 한 거, 승인했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1년간 수행하고 오너라.
“아니 스님 왜 이러십니까?
스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리로 보낼 바에야 내가 가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그리로 갑니까?”
그래서 내가
너 아까 너 뭐라고 대답했니?
‘네 하겠습니다.’
너 지금 이게 ‘네’야?
이래서 내가 원수 된다고 얘기한 거 아니냐.
그러니 다시 삼배 절하고 해약하고 가.
내가 이랬어.
“알겠습니다. 가라면 가죠 뭐.
가서 1년 내가 살다 오겠습니다.”
이래 그래 잘했다.
근데 너 가면
그 스님이 뭐라고 하든
그 스님 얘기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고, 무조건 1년 있다 와야 된다.
“네, 뭐 제가 몇 년 됐는데, 1년 못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고 갔어.
근데 이튿날 올라왔어요.
너 오지 말라는데 왜 왔니?
“아니 그 스님이 안 받겠다는데 어떡합니까?”
내가 갈 때 얘기했지
그 스님이 뭐라 그러든
너 거기 1년 있다가 오라고 하지 않았냐?
“저도 압니다.
그냥 안 받겠다고 하면 버티겠는데
대중을 다 모아서 대중공사를 해서 안 만난다고 결론을 냈는데
어떻게 제가 있습니까?
스님도 아시잖아요.
절에는 대중공사에서 결정하는 거”
내가 갈 때 뭐라 그랬니?
그 스승님이 뭐라 그러든 거기 구애받지 말고
무조건 거기 1년 있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니?
“네 그랬죠.”
근데 왜 왔니?
“안 받겠다는데 어떻게 있어요?”
너 뭐라고 약속했니?
스님이 말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지
“예”
근데 왜 ‘네’를 안 하니?
그러니까 ‘네’ 안 하려면 지금 당장 돌아가라.
당장 돌아가서 거기에서 1년 살고 오든지
아니면 스승과 제자 관계를 해약을 하고 가든지 해라.
그러니까 화를 벌컥 내면서
“알겠습니다. 스님만 스승인 줄 알아요?”
이러면서 씩씩대고 가버렸거든요.
그래서 이거 어려운 거예요.
그 제자 된다는 말은
기술 가르치는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
그래서 그냥
그래 우리 그냥 친구로, 도반으로 이래 지내야지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으로 하는 거 아니예요.
자기 생각을 놓아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시건방 떨지 말고, 원수 되기 싫으니까
이렇게 보편적으로 공부를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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