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을 깨닫다가 되던
제가 처음에 지었던 제목이라고 애착을 가지고
자꾸 말씀드리는 거 아니에요?
수도자와 공과금이 되던
진지의 차원, 진리의 차원하고
속재 그러니까 속세의 차원은 같은 것이에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분리되지가 않아요.
--진제와 속제가 분리된 이유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는 분리해 온 채로 살고 있었어요.
첫 번째 이유가 뭘까요? 첫 번째 이유, 분리해 온 채로 살았던
교육받아서 그래요.
근데 왜 이런 교육이 먹힐까요?
‘분리되어 있다’라고 가르치는 게 왜 먹힐까요?
뭔가 근거가 있으니까 먹힐 거 아니에요?
세상하고 속세하고 진리하고 분리되어 있다라고 말을 하는 게 먹히는 이유
뭐 때문에 먹힐까요?
아무리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이 교육이 잘못된 교육이라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돼 있죠.
근데 뭐예요?
예외 없이, 인류 역사만큼 쭉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분리라는 그 감각이.
이유가 뭘까요?
오감, 종교랑 있는 거랑 같은 이유
맞습니다. 근데 조금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셔야 돼요.
그게 뭐냐면은
[이원성]이라는 근원적인 분리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걸 뭐라고 불렀습니까?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예요.
맞습니다.
불교에서는 뭐라고 불렀을까요?
12연기에 그걸 일으키는 놈 있잖아요, 12연기를 일으키는 놈
이게 근본 [무명]이에요.
무명이면서 얘가 동시에 뭡니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삼독 중에 하나죠.
탐진치의 [어리석음]이에요.
--이원성이라는 분리감
아무리 교육을 통해서 나와 너를 구분하고
속세와 진리의 차원을 구분하고
시크릿과 깨달음을 구분하고
구분하는 교육을 아무리 시킨다 그래도
그것이 먹힐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면 먹힐 수가 없어요.
그런데 먹힌단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인간 의식은 근본적으로
이원성의 분리감을 지니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게 뭐예요? 이게 언제예요?
근원적인 이 분리감이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하는, 인간 의식의 시작 언제일까요?
보통 100일이에요. 생후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신생아가 처음 태어났을 때
제가 태어났는지 안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그 상태가 순수한 의식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순수의식의 상태예요.
순수의식의 상태에 있다가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면서
‘내가 있다’라는 느낌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I am의 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해요.
신생아 처음 태어나서
예를 들어서
생후 한 100일 기간까지는 순수의식이에요.
이 순수의식을 Am이라는 동사로 표현합니다.
뭡니까?
있음의 상태인 거예요.
있음의 상태인데 볼게요.
주어가 없어요.
주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상태예요?
없음에 가까워요.
있음이라는 건 앎이죠.
앎인데 주어가 없기 때문에 뭐에 가까워요?
모름에 가깝습니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는 느낌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그때가 대충 언제예요?
생후 100일쯤이에요.
그래서 뭐 하는 겁니까? 100일 잔치하죠.
‘내가 있다’라는 느낌이
그때쯤부터 이 시공간의 흐름상 표현을 하는 거예요.
I am 의식의 순수의식의 상태에서 [순수존재의식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I am이라는,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이 뭐하고 동일시가 딱 되기 시작해요?
내가 있다라는 느낌이 육체를 통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뭐하고 동일시가 돼요?
몸하고 동일시가 돼요.
그래서 뭐의 시작입니까?
I am that I am
정확하게 쓰자면 여기가 this body가 되는 거예요.
I am that I am this body
나는 이 몸이다.
‘나는 이 몸이다’가 확고하게 완성이 되는 시점쯤이 대충 언제쯤일까요?
100일 잔치한 다음에 뭐 하죠?
돌잔치 하죠.
1년쯤 되는 딱 그 시점쯤이에요.
되게 재밌습니다.
인간 의식이 어떤 식으로 이원성 안에서 강화되어 가는지가
신생아 상태에서 100일 잔치하고 돌잔치하면서
그때 나타난 거예요.
이게 되게 재밌죠.
그러면서 뭐를 합니까?
우리는 사실은 뭐예요?
우리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잊어가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그런데 뭘 합니까?
세상에서는 잔치해 주죠. 축하해 주죠.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내 자식이 나한테
‘엄마’ 하는 순간, ‘아빠’ 하는 순간
엄마라고 불러서 아빠라고 불러서 너무 좋아서
막 그 아이한테 뽀뽀하고 뭐하고 막.
근데 사실은 어떤 순간이에요?
이원성이 굳어져 가는 순간들인 거예요.
이원성이 강화되어 가면 강화되어 갈수록
인간 세상에서는 뭘 해준다는 얘기예요?
축하를 해줍니다.
사실은 근데 뭐란 얘기예요?
이원성이 강화되어 가면 강화되어 갈수록
본래의 모습을 잊어가고 있는 거예요.
수행이라는 것은
본래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이라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왜?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아까도 누누이 말씀드렸죠
도달하고자 하는 그 나 자체가 허수이기 때문에 그래요.
허깨비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허깨비가 바라보는 세상이 뭐겠습니까?
허깨비에 의해서 보여진 세상이 뭐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꿈을 꿉니다.
여러분은 꿈을 꾸셨어요. 밤에.
꿈에서 내가 나타났어요.
나타나서 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체험을 막 해요.
근데 ‘앗’ 하고 꿈에서 훅하고 깨어나는 순간,
아침에 ‘스르륵’하고 깨어나는 순간
그 꿈속에 세상하고 그 속에 나타났던 나는 어떻게 돼요?
없어요.
나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뭐도 없어져요?
세상도 없어져요.
--세상은 꿈이다
그런데 이건 비단 꿈 얘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똑같다라는 얘기예요.
지금 이 순간 자체가 똑같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꿈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이런 말을 어디서 많이 했죠?
불교나 힌두교.
꿈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유식하게 이야기를 하면 뭐예요?
유튜브 같은 데 많이 나오는 거
세상은 뭐다?
홀로그램이다.
똑같은 얘기예요.
25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인식되는 일체의 대상이 꿈속에 나타난 환영과 같다라고 이야기를 한 게
그게 2500년 뒤에는 지금 어떤 식으로 알려지고 있는 거예요?
세상이 홀로그램이다.
표현 방식의 차이, 데코레이션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꿈이고, 왜 홀로그램인가?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안 해준 거죠.
그래서 뭘 한 겁니까?
책에서 그것에 대해서 밝히려고 쓴 거예요.
결론적인 진술이라기보다는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이걸 써놨습니다.
--책이 어려워서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고요.
지금 저희 카페 스태프분들은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책 어렵게 써서 죄송하다고 .
죄송합니다. 두 번째 책은 조금 더 이제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제 우리 편집자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저도 알아요.
왜냐면은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그 책 내용은
편집된 내용이에요.
그래서 본래는 더 어려웠죠.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분이 안 계셨으면
지금 이렇게 어렵다라고 여기저기서 이렇게 욕먹고 있는 이 정도 내용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내용이 나왔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비로써 또 공개적으로 감사드리고요.
중요한 건 뭐냐면
이 책을 쓸 때 기획 의도가
‘시크릿을 깨닫다’
말 그대로 ‘시크릿을 깨닫다’,
진리의 차원과 속세의 차원이 하나다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왜 하필 시크릿이었나?
여기에서 근본적인 제가 책을 썼을 때
근본적인 목적, 숨어 있는 또 의도가 하나 있어요.
거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동양 수행전통의 취약점
왜 그러냐면요.
동양 영성,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수행을 많이 하셨던 분들 전통적인 동양수행 전통에서는 뭐를 가르치냐면요.
은연 중에 뭐라고 이야기를 해요?
은연 중에, 속세에 대해서.
물론 존재의 실상,
그러니까 ‘세상이 환영이다’라는 사실을 말을 해주기 위해서
가르침들이 조금 일방향으로 흘러간 그게 있지만
우리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은
동양적인 수행 체계에서는 뭐를 갖다가 멀리 해요?
속세를 멀리 해요.
속세의 가치와 속세의 의미를 사실은 조금 멀리 해요.
물론 완벽하게 깨닫고 나면은
그 두 가지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은연 중에 어떻게 돼요?
동양 형성 수행하신 분들은.
부를 추구를 하고, 육신의 건강을 추구하고, 육신의 안녕을 추구하고
인간관계를 추구하고,
예쁜 여자 얻고 싶다거나, 멋진 남자 만나고 싶다거나
시집 잘 가서 잘 살고 싶다거나
아니면은 죽어라 일하지 않고도 조금 편하게 살고 싶다거나
막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취급해요?
은연 중에 아니면 대놓고
심지어는 죄악시 여겨요.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행하시는 분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그 하찮게 생각해 버리는 순간 어디로 떨어진 거예요?
그게 이분법으로 떨어진 거예요.
이분법에 대해서 이제 살펴볼 겁니다.
진정 진리하고 속세가 같은 것이라면은
속세를 즐겁고 기쁘게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마저도
뭐의 표현이라는 얘기예요?
진리의 표현이에요.
그런데 수행 오래 하신 분들이 대부분 뭐 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밀어내는 걸 떠나서 진짜 발로 차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 영성 전통에서는 뭐가 약해요?
여러분 뭐에 관련된 부분이 약해요?
시크릿.
시크릿이 뭡니까?
현실창조예요.
현실창조에 관련되어 있는 부분이 되게 약해요.
불교공부 오래 해보신 분 계세요? 혹시
불교수행
도교
기공이라든지 에너지 명상
아니면 베단타 아드바이타, 힌두교, 막 이런 부분들 있죠?
하나 같이 뭐예요?
하나같이 뭐만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깨달음
고창한 어떤 정신세계를
고상하고 거창한 정신세계만을 추구하는 쪽으로
포인트가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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