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후한 시대에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보편화되었던 관료 임용 제도로 향거리선제가 있었습니다.
향거리선제는 지방관이나 지방의 유력자가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어 추천하는 방식으로
당시, 중요시 여기던 유교적 도덕 규범에 따른 관리 선발 제도였습니다.
무조건적인 추천제 방식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으며
우선은 지방에서 인재를 추천한 다음
황제의 시험을 거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국지 배경이 되는 후한 말에는
영제와 십상시 주도 아래,
시험을 치르는 과정보다 매관매직이 공식화되면서
향거리선제 또한 무력화됩니다.
어느덧 조조는 소년배 우두머리 시절이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었는데,
조조는 향거리선제의 천거 방식에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조조의 조부, 조등은 5대째 황제를 모셔 온
환관급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인 대장추에 올라선 인물로
조조가 성장할 무렵에는 자리에서 물러설 나이가 되어
이후,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이 대장추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조등은 평소 행동이 진중하고 업무에 실수가 없어
궁궐의 청류파와 탁류파 양쪽으로부터 신임을 받았으나
점점 십상시의 횡포가 심해짐이 따라
사족(士族)은 환관 가문인 조씨 일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엄청난 권력과 재산을 지닌 유력 가문의 자손이었으나
청류파가 보기에는 똑같은 탁류파라 여겼고
이 때문에 조조는 원소나 장막과 달리 관직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채널 내 재생목록 삼국지 3편에 등장한 교현은
평소, 엄격하고 공정하기로 소문난 인물로
그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조조가 뛰어난 인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현은 한때, 최고위 대신(大臣) 직위인
삼공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조조를 천거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교현은 지금껏 천하의 명사를 많이 봐왔지만
조조만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다고 여겼고
조조에게는 인물평을 받기 위해, 허소를 찾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이에, 조조는 당시 관습이었던 성의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후한 예물을 겸손한 말과 함께 허소와 교우를 맺기를 신청했지만
허소는 자신의 명성에 손상이 갈까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허소 또한, 평소 낙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조에 대해
익히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유교를 중시하는 사족(士族) 입장에서는
근본 없는 탁류파인 조조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겁니다.
명성을 바탕으로 추천인을 통해 관직이 구해졌던
후한 시대의 이러한 제도는
조조에게 있어
다른 가문의 자제들이 출사하는 동안 고립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조조의 이러한 경험은 자신이 겪었던
향거리선제라는 제도가 불합리하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세월이 흘러 조조가 인재를 모으는 과정에서는
인품이나 명성은 아무래도 좋으니
능력을 위주로 채용하겠다는 기준을 세워두게 됩니다.
청년 시절의 조조는
낙양에서의 소년배 경쟁자였던 원소라든가
그리 눈에 띄지 않던 동료들도 모두 출사를 하게 되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현의 조언을 듣고 허소를 만나려고 했으나
허소 또한 자신의 집안 배경을 두고서 만남 자체를 거절하니
이제는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협박을 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특출했다는 허소의 직책인 공조 벼슬은
일개 군의 속관으로서 높지 않은 직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식안이 뛰어난 허소 같은 명사에게서
인물평을 받아 추천을 받게 된다는건, 관직을 얻는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인물평에 뛰어난다는 이유로 현대사회에서
종종 허소를 두고 뛰어난 관상쟁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한 시대에 허소의 인물평은
관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후한 말의 향거리선제는 단순히 사람을 천거하는 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은
추천한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강제성이 있었습니다.
가령, 추천을 받은 자가 반역죄를 받으면 추천한 사람도 반역죄며
추천을 받은 자가 사형을 받으면, 추천한 사람도 사형되었던 제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난 사람은
그 자체가 능력이었으며
이는, 지역의 명망가가 관직 후보자를 품평함으로써
중앙 정치 권력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당시 가장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 감식가가
바로 남양(南陽)의 하옹이라는 사람과 허소였던 겁니다.
그중에서도 허소는 특히 더 유명했는데
그는 매달 초하룻날마다 향리의 인물을 골라 비평했고
이를 두고 여남의 ‘월단평’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호평을 받게 되면, 호평받은 인물은
그 가치가 치솟아 중앙 정치가들도 눈여겨보았던 겁니다.
허소가 명성이 높은 것은 뛰어난 안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일부러 좋은 소릴 한다거나 추켜세우질 않았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공정하기로도 유명했습니다.
허소는 격이 낮은 사람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는데
조조 또한 당시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여긴 청류파에게 있어
가장 손가락질 받는 탁류파 출신이라 허소를 만날 수 없었고
이에, 조조는 독기가 올라, 정보를 수집해 허소의 약점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배 우두머리 출신으로서
정보력이 뛰어났던 조조는 허소의 약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자신 또한 소문난 허소에게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요란하지 않으며, 은밀하게 허소를 협박하기로 합니다.
조조는 허소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허소의 먼 친척뻘이며 소년배 출신이었던 허유를 불러냈습니다.
허유는 훗날 조조와 원소가 겨루는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배신한 인물로
재주는 빼어났으나 탐욕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허유는 젊은 시절 청류파로서 원소와 각별히 친했으며
조조와도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조조는 허유가 평소 재물과 여색을 밝히는 것을 이용하여
허유를 통해, 허소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허소는 친척인 허유가 부탁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조조를 잠시 만나기로 동의하였고
이에, 조조는 혼자서 조용히 허소의 집을 방문합니다.
허자장이라 불리는 허소의 집은 화려한 저택이 아닌
작은 연못과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는
검소한 생활을 몸소 보여주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후,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잠시 서로 마주 보다가, 조조가 먼저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꺼냅니다.
하지만, 허소는
내시의 후예는 품평의 대상이 될 자격이라도 없는 양,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웃고 있는 표정과는 달리 울컥한 심정이었으나
은밀히, 자신이 준비해온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조조가 준비한 말은
사람들이 허소를 존경하는 이유로
권문의 위세나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허소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조조는 허유로부터 들었는 원소에 관한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허소는 일찍이 원소를 평가할 때
앞으로 나라를 이끌 대단한 사람이라 평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양(濮陽)현장으로 임명되었던 원소는
모친상을 당해, 복양에서 낙양으로 돌아왔을 때
원소 주변의 인사들이 전별금으로 내놓은
선물과 재물을 실은 수레가 줄을 이었습니다.
원소의 귀행길 이야기를 들은 허소는
다음 월단평에서 원소에 대한 재평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원소 일가는 허소의 재평가는 장래 원소의 앞길을 막는다 생각했고
회유와 압력을 통해 허소의 입막음을 시도했습니다.
이때 집안 친척을 핑계 삼아 허소를 방문한 사람이 허유였으며
허유는 원소 집안을 적으로 두다가는
허씨 집안이 멸문당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일삼으며
거절하기 어려운 수준의 뇌물을 건네게 됩니다.
이러한 허소의 과거를 조조는 정보망을 통해 꿰뚫고 있었고
허소는 당황한 나머지, 조조에 대한 평가를 해줍니다.
허소의 평가는 정사 삼국지에서는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이오, 난세의 영웅이라.”
삼국지연의 소설에서는
“그대는 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오”라고 표현하며
조조에 대한 월단평은 낙양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허소의 인물 평 이후, 조조에 대한
고위 관료들의 관심은 크게 높아졌으며
결국, 상서우승(尙書右承) 사마방이 조조를 천거하게 됩니다.
오늘은 삼국지 일곱 번째 시간으로
후한 시대에 보편화되었던 관료 임용제도인 향거리선제와
조조, 허소에 관련된 이야기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삼국지 시리즈는 채널 내 ‘재생 목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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