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8 : 유비 공손찬 & 노식

Buddhastudy 2023. 11. 30. 18:53

 

 

서기 161. 낙양으로부터 동북으로

1800리 떨어진 유주 탁군 탁현에서

유홍의 아들로 태어난 유비는

조조보다 6년 늦게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탁현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누상촌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누상촌은 누각처럼 큰 뽕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유비의 집안은 기원전 2세기 전한 시대의 황제

경제(景帝)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劉勝)의 먼 후손으로

황족이긴 했지만, 광무제 계열이 아니라 황족의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유비는

황제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정통파 계열로

수많은 역경을 참아내고 딛고 올라서며

조조의 천하 통일을 막아낸 인물로 유명합니다.

 

어린 시절 홀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팔고 신발을 팔며

생계를 이어간 유비가

조조나 원소 같은 화려했던 배경의 군벌들에게도 맞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는

혼란했던 군웅할거 시대에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한나라의 정통 계승자 유씨가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에 관심을 둔 사람들 중에서는

유비가 말하는 자칭 황족 혈통이라는 것이

나는 황실에 관계된 유씨 가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족보 사칭일 수도 있다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 기록 중심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유비의 조상은 황족의 먼 친척은 맞지만

황제에게 바치는 황금인 주금을 적게 냈다가 파면당했다고 말합니다.

 

그 후, 유비의 조부인 유웅과 부친 유홍이

대대로 주군에서 복무하였고

유비의 아버지가 일찍 죽으면서, 홀어머니 혼자서 유비를 키웠습니다.

 

이러한 유비의 황실 종친이라는 배경은

추후, 원소의 부하들이 유비를 싫어할 때도

유표의 부하 채모가 유비와 대립 관계를 가질 때도

유비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혈통의 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비는 지식을 탐독한 문관도 아니었고

무공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내세울 만한 능력은 없었지만

그 시절, 누구도 건들 수 없었던 황실 핏줄이라는 명분을 가졌던 겁니다.

 

유비는 역사 기록인 정사 삼국지와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불문하고

특이한 외모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귀가 유난히 크며, 팔은 기형적으로 길어서

서 있는 자세에서도 두 손이 무릎에 닿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외모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귀가 큰 인물은 후덕한 성품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동시에, 백성들의 고통을 잘 들어주고

자비로운 인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유비의 집 앞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있어

주변의 다른 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뽕나무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으며

그중에서도 이정(李定)이라는 사람은 이 집에서 귀인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정은 노나라 지역 출신의 술장수로

하얀 산양의 등에 두 개의 술병을 싣고 다닌 인물이었습니다.

양을 이끌고 술에 취해 떠돌아다니던 이정을 두고서

당시 사람들은 선인으로 생각해, 양선(羊仙)이라 불렀습니다.

이정은 유비 집 앞의 뽕나무를 보며

이 집에서 귀인이 나올 것이라 하였고

유비를 보고서는 참으로 어질게 생겼다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뽕나무와 함께 주변의 기대를 받고 성장하던 유비는

유씨 집성촌의 아이들과 전쟁놀이에서 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나무처럼

자신은 깃털이 잔뜩 달린 수레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유비의 행동을 본 유비의 숙부, 유자경은

그 입을 조심해라며, 함부로 허튼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질책했습니다.

이는 한나라 황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반역을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어, 유비에게 입단속을 시켰던 겁니다.

 

유비는 15살이 되던 해, 친척 어른이었던

유원기의 후원으로 노식의 문하로 들어갔습니다.

노식은 후한 말의 정치가이자 학자, 장군으로

키가 8척을 넘어섰는데, 이는 190cm 이상의 큰 키였습니다.

노식은 후한 말 훈고학의 시조로 유명한 유학자. 마융의 제자였습니다.

 

참고로 훈고학은 공자의 유교에서 시작된 갈래로

진나라의 진시황이 법가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불타버린 유교 경전을 정리하고 그 뜻을 해석한 학문입니다.

 

노식은 젊었을 때부터 청렴하고 강직하여

고위 관리들에게도 눈치를 보지 않고 직언을 한 인물로

학자로서도 동문인 정현과 함께

후한 말을 대표하는 대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노식의 스승인 마융은 그 수업방식이 특이해

제자들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지 시험했다고 합니다.

그의 수업 중에는 미녀들을 동원해 주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노식만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노식의 벼슬은 구강태수까지 이르렀으나

()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왔고

자리를 잡아 산중에 학교를 열었습니다.

고관을 지낸 노식이 고향에 내려왔다는 소식은

지역 유지들에게 금세 소문으로 퍼져갔고

이들은 앞다투어, 노식에게 자식들의 스승이 되어줄 것을 청했습니다.

 

유비의 어머니도 장차 유비가 벼슬길에 오르려면

높은 사람들의 추천이 필수였던 당시 제도에 따라

노식이 있는 곳으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를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가친척이었던 유원기가

아들인 유덕연을 유학을 보내면서

자식 혼자 외지에 보내는 것이 걱정된다는 구실로

유비의 어머니를 설득하여, 유비의 학자금까지 모두 보태줍니다.

 

 

 

유원기가 아들뿐 아니라 친척 유비의 학비까지 낸다고 하자

유원기의 처는 왜 남의 집 일까지 책임지냐고 추궁을 했습니다.

이에, 유원기는 유비가 앞으로 유씨 집안을

크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여 투자를 했지만

훗날, 실질적으로는 유주는 조조의 위나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고향에 있는 유씨 일족은 평생을 숨죽이고 살아가게 됩니다.

 

친척 어른의 투자를 받아 노식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간 유비는

공부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습니다.

유비는 학문보다 동물이나 음악, 아름다운 의복 등을 좋아하며

호걸들과 함께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낙양에서는 조조와 원소가 명문가 자제로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소년배로 패거리를 이루었으나

환경이 부유하지 못했던 밑바닥 건달 출신의

소년배 세력으로서, 유비의 동료는 공손찬이 있었습니다.

 

공손찬은 유비보다 예닐곱 살 손위의 인물로

집안은 태수급의 지위를 가졌던 고관의 가문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생 출신으로 적자가 아닌 서자로서

집안에서 차별대우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공손찬은 미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손찬과 잠시만 대화를 나누어도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에 대한 보고 업무처리도 거의 실수가 없어

평소, 이를 눈여겨보고 있던 요서태수는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서자 출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며, 공손찬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태수는 공손찬을 더욱 키워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차에

노식에게 수학하는 학자금을 마련해주었고

공손찬은 이곳에서 유비를 만나게 됩니다.

유비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세상 경험도 많았던

공손찬을 형님으로 모셨고

공손찬 또한 순수한 기운을 뿜고 있는 유비를 좋아했습니다.

 

둘은 공통적으로 학문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함께 사냥하거나 음악과 풍류를 즐기고

기방에 출입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나갔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여덟 번째 시간으로

유비의 성장기 시절과 노식에게서 동문수학했던

공손찬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삼국지 시리즈는 채널 내 재생 목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그럼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