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3년의 초가을
사람들의 화젯거리는 처음 보는, 그래서 생소한 먹을거리였습니다.
바로 ‘라면’
운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그 생소한 식품이 처음으로 나온 바로 그날
저희 집 식구들도 둘러앉아 후후 불어가며
마치 새로운 문명을 접한 이방인들처럼 신기해하며 먹었더랬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
꼬불꼬불한 면발의 이 인스턴트 식품은 단박에 한국사회의 식문화를 바꿔 놓았지요.
아니, 사실은 식문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63년 초가을의 어느 날 점심 때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이 꼬불꼬불한 면발의 새로운 식품이 그 이후의 세상을 그렇게 정치경제학적으로 지배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그로부터 대략 10년이 지나 라.보.때 라는 신조어가 태어납니다.
라보때란, ‘라면으로 보통 끼니를 때운다’의 줄임말.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80년대 구로공단에서 시작돼서 모든 배고픈 젊은이들의 유행어가 됐습니다.
하루 24시간 쉼 없이 미싱이 돌아가던 시절에, 공단의 여공들은 아침조와 저녁조가 함께 방을 빌린 2부제 셋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고된 노동을 버텨냈습니다.
하필 그 면발은 그리 소화가 잘되지를 않아서 찬밥 덩이와 함께 말아 먹으면 꽤 오래 더부룩하게 남아 있었고, 그것이 노동의 배고픔을 되레 잊게 해주었다는 씁쓸할 분석까지 겸하여...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큰 냄비를 올려놓고 둘러앉았을 때 상하좌우의 눈치를 봐가며 젓가락을 놀려야 한다. 그 눈치가 라면의 맛을 배가시킨다.”
-안도현 <라면예찬>
시인의 라면 예찬은 어찌 보면 고달픈 시절의 아픈 기억을 약간의 호사로 재구성한 추억담.
그러나 청년의 라면은 급하게, 그리고 혼자서 채워야 하는 끼니였습니다.
2년 전 구의역의 김 군에게나 그리고 오늘날 태안 화력발전소의 김 군에게나.
그래서 그들이 남긴 것은 미처 속을 채우지 못한 라면
강요된 1인 노동과 남겨진 라면들...
시대가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은 노동과 이를 버티게 하는, 혹은 버티지 못하게 하는 라면의 정치경제학.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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