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신문도 그날은 출판 아니할 터이요, 28일에 다시 출판할 터이니 그리들 아시오.”
1897년 12월 23일 자 ‘독립신문’에 실린 공고문입니다.
“세계 만국이 1년 중 제일가는 명절로 여기며 온종일 쉰다”던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 이 땅의 언론인들은 새로 들어온 서양 명절을 핑계 삼아 그야말로 꿀 휴가를 보냈던 셈입니다.
신문마저 당당히 쉬겠다고 선언한 이 날은 이후 조선 땅에서 쭈욱 축제로 기록됩니다.
한국전쟁이 마무리된 1953년 크리스마스 전야..
이날 딱 하루만큼은 통금이 해제되어 사람들은 긴긴밤을 새워가며 나름의 축제를 즐겼습니다.
그것은 긴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었다는 위로와 안도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60~70년대의 성탄절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닌 ‘소란한 밤’이 되었다는 우려 섞은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엄마 아빠 일찍 집에 돌아가 주세요.”
아이들이 캠페인을 벌였고, ‘크레이지 마스(광야제)’ ‘크리스마스 차일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즈음의 크리스마스란 글쎄요, 단지 나이가 들어 그만한 정열이 덜해서인가...
아니면 나이가 청춘이라 해도 아니, 청춘일수록 그렇게 신날 일이 덜해서인가...
따지고 보면 그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명동성당 앞마당엔 일터를 빼앗긴 사람들의 천막이 가득했던 것도 다반사였지만...
2018년 성탄절은 진정 온 것일까...
하늘에 떠 앉은 노동자들과 함께, 하필 가장 추운 계절에 아프게 세상을 떠난 이들과 함께..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뭔가 들뜨고, 설레고, 안 될 일도 될 것 같은 그런 것...
적어도 이 땅에서는 120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이죠.
한때는 ‘크레이지 마스’의 꼴불견을 보두가 한탄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쯤은 들썩들썩할 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오늘, 성탄절은 진정 온 것일까...
“1년 중에 제일가는 명절로 여기며 온종일 쉰다고 하니 우리 신문도 그날은 출판 아니할 터이요.”
이미 120년 전의 오늘 그 신문도 갓 들어온 서양의 명절을 전함에 짐짓 아닌 척하면서도 크리스마스 휴일의 설렘을 행간에 담고 있었으니...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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