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권력을 갖고 싶었던 자들의 치열한 암투와 배신을 그려낸 영화 ‘더 킹’에서
그 치열함과는 동떨어진 전혀 의외의 코믹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들이 역술인을 찾아가는 장면이지요.
그러나 정말 그저 코믹한 장면으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명백한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계의 실력자들이 무속인에게 모여든다는 솔깃한 풍문이 돌았고
왕가의 기운이 서린 장소로 조상 묘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참모들이 일본, 홍콩까지 날아가 선거 운세를 점쳤다는 기사까지 등장합니다.
“박 대통령은 70년대 초반 10월 유신을 감행할 무렵 역술인 제산에게 사람을 보낸다.
유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유신을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58년 전의 바로 오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종래는 이른바 종신 대통령을 꿈꾸었던 그 역시...
미래가 궁금했는지 용하다는 부산의 역술인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유신일인 10월 17일이 그에게서 점지받은 날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찌 됐든 역사를 뒤로 가게 한 유신의 전야에 어떤 역할로든 역술인이 존재했다는 것은 좀 황당하긴 합니다.
“음력 3월에는 백호살이 들어 물과 불로 인한 사고가 잦았다.
대지의 기운을 타고난 VIP의 좋은 사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며...”
-2014년 경찰청 <역술인들의 향후 국정 전망 보고>
지난 2014년 그들이 모아온 점괘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는 국운에 ‘백호살’이 들었기 때문이며
그나마도 대통령의 사주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피해는 너무나 막대했습니다.
또 그런가 하면
“관상으로 볼 때
아베 총리와는 상극이고 시진핑 주석과는 상생”
-2014년 경찰청 <역술인들의 향후 국정 전망 보고>
외교 문제 역시 대통령의 관상을 통해서 풀어냈습니다.
그렇게 역술인까지 동원해서 대통령의 심기를 살핀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결과 예측이 틀렸으니 심각한 보고서가 아니다”
이렇게 간단히 대답하고 끝내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치렀고
그 파장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은 무거운 예감.
“음력 3월에는 백호살이 들어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들어 올려졌겠으나
지극히 허망했던 그 점괘처럼
그 시대는 그저 허망했던 것일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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