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_시래기톡

[시래기톡] 나를 항상 애 취급하는 우리 부모님

Buddhastudy 2019. 3. 20. 19:23


Q. 왜 부모님은 저를 애 취급하실까요?

 

 

노래자라는 노래를 잘해서 노래자가 아니고 노래자라는 효자가 있어. 중국에.

근데 그 할아버지는 본인이 70인데, 90세 되신 노모, 나이 드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는 거야.

넘어져도 응애응애 하고 울었다는 거야.

 

왜 그랬냐? 그러면

'아이구 어머니 나 아파요.' 이럴 거 아니야. 70이니까.

'. 내 아이가 저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내가 일찍 세상을 떠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실까봐,

'저 아직 어려요. 저 아직 아기에요.' 울음소리도 응애응애하고 울었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부모 입장에서 보면 항상 안쓰러워 자식은.

그러니깐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안쓰러워.

 

언젠가 내 존경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신데, 그 어른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거야.

아버지 마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야. 아버지 마음.

 

부처님이 원래 태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다음에 왕이 되실 분이야.

근데 일주일 만에 엄마를 잃은 거 아니야. 엄마를.

 

나는 그렇게 생각해.

태어나자마자 일주일 만에 엄마를 잃었던 것처럼 슬픈 일이 없다.

엄마는 왜 돌아가셨나. 나한테는 왜 엄마가 안 계시나.

결론적으로 사람은 왜 죽는가?

생로병사에 관한 그런 사람은 왜 태어나서 죽는가? 에 대한 그런 원초적인 질문을 포함해서 해탈하시려고 출가를 해서 7년 동안의 고행 끝에 깨달으신 거야.

부처님이 되신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 부처님 하고 지혜를 일러주십시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행복한 길입니까? 해탈의 길을 일러주십시오.”

다들 존경했는데, 세상에서 단 한분, 부처님을 부처님으로 보지 않는 분이 한 분 있었다는 거야. 아버지 정반왕이었어.

 

아버지는 늘 아랫사람들한테 물어봤데.

그 아이는 어떤 옷을 입고 다니더냐?

그 아이는 어떤 음식을 먹더냐?

그 아이는 어디서 잠을 자더냐?”

이렇게 물어 봤다는 거야.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에 대해서 그야말로 구주, 세상을 구원하신 구주처럼 이렇게 받들고 공경을 했는데, 아버지는 안쓰럽게 바라봤다는 거지.

부처님을 부처님으로 보지 않고, 안쓰러운 자식으로 바라본 그게 바로 나는 아버지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아버지를 포함해서 부모님은 늘 안쓰러운 거여. 안쓰러운 거.

나이가 아무리 많고, 아무리 지위가 높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도

부모입장에서 보면 안쓰러운 거야.

 

兒曹(아조) 出千言(출천언) : 아이들은 천마디를 해도

君聽(군청) : 그대가 듣기에

常不厭(상불염) : 실증내지 않아.

아이들은 천마디를 해도 그대 들음에 싫증내지 않는데,

 

父母(부모) 一開口(일개구) : 부모님은 입을 열어 한 마디만 하시면

多閑管(다한관) : 한관이라는 게 숙어로 잔소리를 뜻해. 잔소리 많이 하신다고 한다.

 

非閑管(비한관) : 잔소리를 하시는 게 아니라

親掛牽(친괘견) : 괘라는 게 괘불이라는 게 걸어 놓는다. 걸리기 때문이다. 견이라는 건 견우직녀할 때 견 자야. 견우라는 건 소를 끄는 것을 견우라고 그래. 끌린다 그런 뜻이야.

마음에 걸리고 끌려서 그런 것이다

 

皓首白頭(호수백두) : 머리가 희어지고 많은 인생을 살아가시는 동안에

多諳練(다암련) : 경험이 많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경험해서 알기 때문에 안쓰러운 거야.

 

인생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눈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거지.

그러니깐 어느 한 부분만 안쓰러운 게 아니고, 어느 한 부분만 걱정스러운 게 아니고

모든 게 다 안쓰럽고 짠하고 그런 거야.

 

그래서 이제 우리 어른들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이렇게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게 효도겠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니까.

 

저를 너무 아이취급하지 마시고, 저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부모님의 인생을 좀 더 즐기세요. 부모님의 삶을 사십시오. 너무 걱정하시는 게 저희들한테 부담이 됩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맙지. 어떻게 보면.

 

그런데 나도 처갓집에 아니면 시골집에 갔다오면 아주 그냥 바리바리 싸주셔요. 바리바리.

그거 어떨 때는 많이 버렸어. 부모님한테 얘기하면 서운하시겠지만, 나도 버렸어.

우리 며느리도 많이 버릴 거야.

 

근데 왜 싸주세요? 이거 가지고 가봐야 먹지도 않아요히지만

싸주는 것을 기뻐하는 거야. 그 자체가 즐거운 거야.

삼거리까지 나오잖아. 이렇게.

어머니 저 갈게요. 들어가세요.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요.”

라고 얘기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계세요. 나 갈 때까지 보세요.”

그것도 효도야.

 

왜냐하면 그 보는 것 자체로 즐거운 거야.

싸주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지

그 뒤는 생각 안 해.

그 뒤는 생각 안한다고.

그게 아마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