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생각의 회로
저는 이제 당신에게 우리들이 만든
<생각의 회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우린 고등학교 때 전기회로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든 회로는 스위치를 넣으면 전기가 돌아 불이 들어오고
스위치를 열면 회로는 정지됩니다.
이 회로에는 저항이라는 게 있죠.
저항이란 한마디로 말해
재질의 차이로 인해서
전기가 일반적으로 회선에 흐를 때와는 달리
잘 안 흐를 때 생겨나는 발열, 혹은 흐름 거부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전기회로가
사람에게 비유해 보면은 생각의 회로와 똑같습니다.
사람은 매일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이란 의식의 흐름을 돌리며 삽니다.
그런데 이 의식이 어떤 생각에는 별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스무드하게 잘 빠져나가지만
다른 생각에 가서는 오래 머물러 있고 또 열도 많이 냅니다.
그 열이라는 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감정, 화, 고민, 스트레스 등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이 생각의 회로를 무척이나 많이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이것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머리를 많이 쓰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회로가 많다고 해서
그가 꼭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
혹은 머리 복잡하게 사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로가 많아도
그것을 열이 안 나게 잘 돌릴 줄 안다면
그는 매우 성공적인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적은 회로를 가졌어도
그것을 돌릴 때마다 큰 열이 나고 부작용이 있다면
그는 아직 생각이란 회로에
그다지 친숙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겠죠.
그렇다면 이 생각의 회로를 잘 돌리며 산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자기가 휘둘리지 않고
생각을 하더라도 그 생각하는 자기를 늘 [자각]하며
그 생각의 후폭풍이나 여파 속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가능한 한 저항 있는 생각을 적게 하며
저항 있는 생각을 하더라도
열이 날 때마다 적당한 선에서 스위치를 끄고 켤 줄 안다면
그는 아주 현명하게 생각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를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자기를
너무나 자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은 화나는 생각이야”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거기엔 화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화내는 생각은 없습니다.
“난 이 현실이 너무 짜증나”
하지만 사실은
거기엔 이 현실을 그렇게 보는 마음 생각이 있을 뿐이지
그런 현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냉정해져서 나중엔 어떻게 되는데?”
혹자는 이렇게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되면 거기에 1차적으로는 깨어남이 있고
그것이 지극한 내적인 평화와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이 생겨나서
우리를 현실로부터 더 여유롭고 자유스럽게 해주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2차적으로
그렇게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들이 모여서 만든
마음의 결합체인 이 사회라는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되며
마침내는 우리들을
보다 더 근원적인 자리에서 움직이는 삶의 실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마술 같은 일입니다.
그 시작은 다만 자기의 생각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자각하란 말은
자기 생각회로를 [객관적]으로 보란 말입니다.
“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가져오는 후감정이나 느낌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이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자주 자각하면 됩니다.
이것은 자기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면 점점 더 자신이 편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스쳐 지나가는 그런 생각들이 아니라
그 생각들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은 그렇게 흘러 지나가고
자기는 원래 그 자리에 항상 그렇게 존재해 왔음을
막연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마치 온갖 것을 다 비추던 거울이
이제 스스로 이렇게 비추는
거울인 자신은 누구인지를 돌이켜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제 비로소 [참된 자기]가 누구인지를
똑바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된 자기는 거울에 비치는 온갖 [영상]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비추게 하는 존재인 [바탕] 자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자기와 삶에 대해 깨어나고, 거듭나는 진정한 명상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이란 회로의 작동을 통해
더 깊게 생각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도 있고
그것을 조절하는 법을 자기 안에서 발견함으로써
자기를 이렇게 거세게 흐르는 세상의 파도와 폭풍 속에서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스스로에게 밝은 빛을 비추는 등대처럼
흔들림 없이 자신을 우뚝 세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세상에 흘러넘치는
수많은 <생각의 회로>라는 감옥에서 구하는 탈출의 열쇠이자
동시에 나아가 우리를 이미 우리 [내면]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아름다운 천국으로 안내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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