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비상이라. 다시 해설 봐요.
/법신비상/
법신은 상이 아니다.
진짜는 눈에 잘 안보입니다. 진짜는 눈에 잘 안보여요. 우리가 보통 때, 보통 건강하면 눈이 있는지, 귀가 있는지, 코가 있는지 잘 의식 못해요. 완전하게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지금 내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요. 그럴 때 부처님이 늘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때가 많아요. 진리라고 하는 어떤 우주의 흐름, 그것을 부처님이라 해도 되고, 나의 생명력을 부처님이라 해도 되고, 어쨌든 간에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러한 존재를 우리가 잊고 있었을 때는 언제냐? 너무 부처님 가피를 많이 잊고 있었을 때 그것을 놓치기 쉬워요.
눈귀코몸도 눈이 아파야지 “아, 내가 눈이 있었구나.” 귀가 아파야지 “귀가 있었구나.” 이것을 생각하거든요. 내가 살다가 몸이 안 좋거나,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가정이 흔들리거나 이러면 그때 가서 부처님을 찾아요. 왜냐? 그때 부처님이 인식되는 거요. 우리가 가만히 몸이 성할 때는 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눈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무심코 지나가면서 사는 것처럼 가정이 너무나 편안하고 할 때는 몰랐는데, 가정이 흔들리거나, 답답한 일이 있다거나,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때 부처님 찾는 거거든요. 그때 비로소 부처님이 인식되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는데, 중생이 답답하니까 찾는 거죠. 법신은 상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진정 상근기, 진짜 똑똑하고, 진짜 잘난 사람은 잘 살 때 부처님을 잘 찾아야 되요. 잘 살 때. 아무 일없는데 와서 불교대학에 와서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상근기입니다.
여기 공부하러 온 사람도 “난 별로 답답한 것이 없는데 그냥 부처님 공부가 좋아.” 그래서 온 사람들은 정말 상근기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부처님 가피를 자나깨나 늘 무시로 부처님 가피를 입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법신은 본래 모양이 아니다.
그런데 법신은 모양을 통해서
늘 참답고 항상한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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