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멋진 질문해주신 거 같아요. 우리가 항상 절에 살고 싶죠. 그런데 생업이라는 게 있고, 생활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절에서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절이라고 하는 공간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도반이 있는 곳이어서 좋은 거예요. 집에서 할 수 있으면 집에서 할 수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끔은 저한테 그렇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어요.
“스님, 오는 시간 빼구요, 가는 시간 빼구요 다 빼다보면 절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돼요. 차라리 집에서요 정신 바짝 차려서 기도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어요. 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집에서 해보면요, 잠만 자요.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절에는 부처님도 계시고, 스님도 계시고, 그중에 가장 귀한 따라서 해보세요. “도반” 도반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책에도 그런 것을 썼어요.
조약돌은 혼자 동글어 질 수가 없다.
서로 몸을 부대껴야만 둥글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도 1250인구가 서로 몸을 부대꼈어요. 그 당시에 왜 많은 계율이 필요했을까요? 서로 도반과 도반이 화합하고 단결하고 때로는 다투고, 그러면서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행의 장르가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옛날 부처님 당시에 아난존자가 부처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부처님, 우리 많은 대중이 서로 다투지 않고 화합해서 잘 살면 도의 반은 이룬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여쭌 적이 있거든요. 그때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아난아, 그것은 도의 반을 이룬 것이 아니고 도의 전체를 이룬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수행을 하고, 우리가 도를 닦는 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자체를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화합하고, 타협할 수 있는 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법회라는 공간에 꼭 나오고, 이 도량이라고 하는 곳에 꼭 나오는 점은 최고의 점수를 딸 수 있습니다. “정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집에서라도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라고 하는 질문이신 거 같은데, 정말 훌륭하신 질문인 거 같아요.
지금 우리 종단은 상월대조사님께서 구인사를 창건하시고 전국지역에 사찰이 만들어졌던 과정은 불과 20~30년 역사밖에는 없습니다. 1945년대에 구인사가 창건이 되었구요, 그 당시에 구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오지를 찾아와서 상월대조사를 친견하고 구인사에서 기도를 하고, 그러면서 그 분위가 너무 좋은데 구인사에서만 살 수 없으니까 삼삼오오 구인사를 다녀오신 분들끼리 모여서, 사랑방에 모여 기도하고, 사글세방에 기도하고, 그리고 회비를 아끼고 아껴서 터도 사고 절도 만들고. 이런 부분이 시초가 되었던 부분이 바로 전국지역에서 가장 앞서갔던 절들 중에 하나가 우리 성룡사 아닙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혼자 하는 부분이 너무 잠만 자고 자꾸 혼자 하는 부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모여서 하면 서로를 경책할 수 있고, 서로를 깨울 수 있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이 도반이 어떻게 보면 스승 중에 정말 훌륭한 스승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에 상월대조사께서는 처처불상이면 사사불공이라. 너희들 절대 어느 공간이라고 하는 부분을 탓하지 말고 집에서도 충분히 기도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도하실 때는요, 부처님을 모시고, 불상을 모시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깨끗한 벽면을 하나 선택해서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벽면을 향해서 합장을 하시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상상하면 됩니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부처님 제자가 되겠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순간에 우린 언젠가는 끝가지 끝까지 가다보면 성불이라고 하는 위대한 목적에 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변하지 않으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다짐의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는 어떤 대상에게
가피를 내려달라고 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부처님과 같은 불성의 소유지이기 때문에
그 불성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 불성을 향해서 열심히 꾸준하게 노력하되,
그 노력의 끝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하겠다라고 하는
자기 맹세가 제일 중요한 다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까지도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 스스로가 그 소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열심히 관세음보살 부르고 노력을 하되 무심으로 무심으로 관세음보살 자꾸 부르고 부르다가 여러분들이 하루일과를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또 자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부처님을 생각해서 부처님 부처님 3번 부르고 영원히 변치 않는 부처님 불제자 되겠다고 맹세하고, 그리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면 여러분들이 하루의 시작을 부처님과 함께, 하루의 마무리를 부처님과 함께,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영원한 불자로서의 멋진 행위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에 나올 수 있는 분위기는 최대한 만드시기 바랍니다. 핑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요, 한도 끝도 없는 핑계가 만들어져요. 그래서 잊지 않는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을 하라고 그랬더니 어떤 불자는 화장실에 가서 앉으면 생각이 난데요. 왜? 할 일 없을 때 생각나는 것은 그것은 진정한 정성심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에 사사불공 언제든지 간에 내가 부처님 잊지 않는 염념불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 자체가 자비를 가리지 않는 수행이 될 쉬 있음을 여러분들이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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