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즉문즉설 2_3. 먼저 보낸 아들,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Buddhastudy 2017. 6. 26. 19:02


이 세상의 고통 중에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애간장이 끊어진다고 그러죠. 자식의 고통, 자식이 그냥 아파 누워만 있어도 애간장이 끊어지는 게 부모의 마음인데, 그 자식을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을 했다면 아마 평생 지을 수 없는 그런 상처는 당연할 겁니다.

 

이왕 보내줄 거라면

내 자식이 좋은 곳에 가기를 원하고,

좋은 곳에 가 있다 라고 믿음을 가지면

좀 더 위로는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먼저 가고 늦게 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원효대사께서 하신 말씀이 그런 말씀이 있거든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순서가 있을 뿐이다.

내 너 태어날 때, 내 너 갈 줄을 안다.

 

이게 세상이에요.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부처님 당시에 어느 어머니가 자식을 잃었어요. 목숨이 끊어진 아이를 끌어안고 부처님에게 뛰어갔습니다. “부처님, 세상의 모든 것을 다하실 수 있는 분이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중생의 고통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부처님 아니십니까?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냐하면 내가 너의 고통을 해결해주마.” 그래서 그 어머니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 마을을 쫒아 다니면서 그 집안에 한 번도 누군가가 죽지 않았던 집에 가서 겨자씨를 얻어갖고 와라.” 그랬거든요. 여인은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어느 집이든 한 번도 그 집안에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를 구하겠다고 쫒아 다녀 봤습니다. 이집을 쫓아가도 저 집을 쫓아가도 겨자씨는 있는데 조건이 붙습니다. 하루 종일 쫓아다녔지만, 사람이 죽지 않았던 가문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인은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겨자씨를 구하지 못하고, 부처님에게 갔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그렇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법은 없다. 왔으면 가는 것이다. 생자필멸이다. 단지 언제 가는 게 문제라면 그 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영가가 보다 좋은 인연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에 가기를 기원해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감히 질문주신 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절대 애절해 한다고 도움 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아이가 4년 정도의 시간이 되었다면 이제는 잊혀지지 않겠지만, 잊으려고 애쓰는, 그래서 꼭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부처님 전에 아이의 왕생극락을 기원해 줬거든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믿음으로 일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년이 지났는데도 애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신 영가도 편안하지 않을 거고, 계시는 어머니도 결코 편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잊어주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장에 가실 때 떨어졌나요? 안 떨어졌나요? 눈물 콧물 떨어뜨리면서 엄마, 가지마라고 난리를 치잖아요. 사실은 장에 갔다 와야 맛있는 게 생기는 게 중요하고, 맛있는 것은 싫고, 엄마하고 같이 있는 것 가체가 좋아서 치맛자락 붙들고, 울고불고 그 우는 모습을 떼어내어 버리고 가는 그 어머니는 장에 가는 순간순간 어머니 귓속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맴돌고 편안하지 않듯이, 바로 내 아들이 나보다 먼저 갔어도 그 애끓는 심정으로 울고 있는 그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그 영가, 결코 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눈물을 말리십시오. 이제는 그 자녀를 잊을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천도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백중천도재라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마음으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여러분이 관조해주실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 자체가 양자가 서로 편안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