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답답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즘 남자들이 참 불쌍한 겁니다. 아주 강하디 강한 와이프를 모시고 살아야 되고, 또 어머니와 자기 아내 사이에서 중간역할이 참 중요하잖아요. 어느 편을 들어야 되나요? 그러니까 옛말에 안방에 들어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그러니까 그 중간에서 역할을 하는 자체가 얼마나 고달플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세대의 갈등이 바로 그런 거죠.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이 성장을 했을 때는 우리 어머니들의 며느리로서 소위 말하는 현역으로 사셨을 때는 감히 시어머니에게 자기 자식이 예쁘다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못했을까요? 예쁘다는 표현도 못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시어머니가 애 잘못 보면 며느리한테 혼나요? 안 혼나요? 엄청나게 혼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가 이만큼 변했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억울해요? 안 억울해요? 나는 옛날에 시어머니한테 당한 게 얼만데, 나는 지금 내가 시어머니로서 뭔가 역할을 할 때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또 당해야 되는 형편이고 보면, 그래서 요즘 어머니들이 뭐라고 그래요? 나는 죽어도 손자를 본다? 안 본다? 안 본다.
모든 시어머니들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봐줄 일은 없다. 내 인생 이만큼 사는 것만으로도 억울해 죽겠는데, 내가 또 손자까지 보란 말이냐?” 라고 하는 것으로 항변을 하고 있는데, 이 어머니는 정말 어지시고 착하신 분인 것 같아요. 그렇죠. 얼마나 착하시면 선뜻 손자를 봐주겠다고 아들집 위에 올려놓고 밑에 살겠어요.
이런 시어머니를 받들어 모셔도 시원찮은데, 양육 방법에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며느리 입장에서 들어보면 속이 상하죠. 아이가 아토피를 앓아 밤이면 잠을 못자서 치료 중에 있는데, 음식에서 왔다는 의사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고, 그렇다면 시어머니입장에서는 “아무거나 잘 먹어야 그 아토피도 없는 거지 그렇게 음식을 가리다보면 아토피가 더 심해져.” 라고 하는 것이 시어머니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이를 길러봤어? 안 길러봤어. 네 신랑도 내가 길렀어. 내 방법으로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는데, 너는 길러보지도 않고 본인이 더 전문가처럼 군림하는 것을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동의를 안 하는 거예요. 서로 부딪히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너무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이가 소화기능이 약하다는 생각을 해서, 과거에 우리 할머니들이 입에서 밥을 씹다가 덜어서 아이에게 넣어줬어요? 안 넣어줬어요? 그거 먹고 잘 살아 지금.
요즘 손자에게 입에서 밥을 씹어 덜어서 주면 기절초풍을 해요? 안 해요? 아마 난리가 날거에요. 그것이 시대패턴의 흐름이죠. 물론 위생적이야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갈등해소는 아무리 아들이 어머니에게 설득을 해도 이해가 잘 안 되실 거구요. “나는 경험자인데 너희들이 뭘 알아서 나한테 이런 관여를 하느냐?”고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며느리 입장에서 이렇게 해달라고 말해도 며느리의 잔소리로 밖에는 안 받아들일 거예요. 이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뭐에요? 지혜로운 거예요. 병원을 갈 때, 꼭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데려가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와 아이를 함께 데려가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의사에게 가서 의사의 이야기를 어머니가 직접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며느리와의 갈등이 없어질까요? 안 없어질까요? 그럴 때 심판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여러분들이 사실은 절에 오시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절에 오셔서 우리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럼 이용을 하는 겁니다. “얘야, 우리 스님한테 가서 상담한번 받아보자.” 그래서 스님하고 와서 상담하다보면 며느리도 잘하고, 시어머니도 잘하고, 다 잘하는 거지, 잘하려고 한 건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니 이 방법을 절충을 하면 갈등해소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세상은
대화를 하면
다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단절하고 난 이후에 ‘내가 옳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다보면 끝까지 갈등의 환경 속에서 벗어버릴 수 없는 환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모쪼록 이 어머니 같은, 소위 아이의 아버지, 지금 중간에서 끼인 환경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상대방을 서로 중제하고 이해하고, 소통의 어떤 지혜를 통해서 행복이 만발하는 그런 과정으로 꾸려가고,
단순하게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닌 먼 미래의 훌륭한 인격을 만들어가기 위한 부분이 영원한 숙제라고 생각하시고, 한 번에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닌 긴 시간으로 풀 수 있는 숙제라면 화합을 통해서 이 숙제를 풀었을 때만이 이분들이 원하는 과정에 어떤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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