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 현상이 일반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마는 우리 절집에서도 있어요. 저도 행정을 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처음 들어오시는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위계질서나 이런 것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일 수 있어요. 과거에 우리 선배스님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 위의 스님들이 뭔가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면 죽는 시늉까지 다 했거든요.
그래서 “안 된다”라는 한 적이 없어요. 무조건 “됩니다”라고 하는 쪽으로 일을 했죠. 그런데 요즘 우리 후배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그것은 안 되는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어떤 스님들 같은 경우는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죠. 과거에는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너희들 어떻게 그렇게 사냐.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면 중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참 어려운 거예요. 과거에는 소위 사무기능이라는 자체가 거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겨우 해봐야 타자정도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전부다 SNS등 모든 것이 정보화되다보니까 그냥 노는 것 같은데도 시켜놓은 일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탁탁 일을 해놓습니다.
그러니까 위 선배님입장에서는 후배스님들이 조를 짜서 일을 해야만 유능한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소통이 단절이 되면 그야말로 젊은 세대들에게 연세 높으신 사람들이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삶이 벌어지는 거죠.
여기서는 열심히 하루 종일 일을 했냐고 했는데도 한 뼘밖에 안되었는데, 이쪽에서는 하루 종일 노는 것 같은데도 20~30페이지 일을 다 해냈거든요. 이런 것을 보면 젊은 사람들을 무조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거에 살았던 우리들이 그들에게 군림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 소통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쨌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요. “옛날에는 어찌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옛날에 처음 구인사 들어왔을 때는 등짐 졌어.” 그러니 요즘 젊은 스님이 뭐라고 그러냐하면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그러니까 역사가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과거라고 하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필요는 있습니다.
옛날 이 시대에는
“이것도 있었고 이것도 있고 이것도 있었어.
그런데 그 부분의 바탕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라고 하는 설명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설명은 생략해 놓고 무조건 군림하려고 하는 생각만 하다보면 그것이 서로 충돌의 현상을 벗어버릴 수 없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든다면 우리 금융사 같은 경우에도 보면 불과 20~30년 전에 사글세방 살았어요? 안 살았어요? 살았어요. 그런데 20~30년 전에 계셨던 노보살님이 계시거든요. 요즘 금융사를 찾아보면 행복해? 안 행복해요? 행복하죠. 우리는 너무너무 엄청난 변화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저께 온 신도들은 처음부터 금룡사는 이랬어요? 안 그랬어? 그러니까 과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소통이 필요하려면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체성과 역사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종단에 가면 종단의 역사가 필요한 거고, 한 사찰에 들어가면 한 사찰의 역사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것을 단절시키지 말아야 되겠죠.
역사를 통해서 과거의 선조들이 감사함이 생기잖아요. 임진왜란이라는 고통에서 이 나라를 지켜냈다. 독립운동을 통해서 피 끓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우리가 독립을 해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선조들이 눈물겹게 지켜낸 이 나라가 감사하듯이 바로 우리 사회도 그래야 되는 거다.
요즘에 아무리 4차 산업이 발달을 하고, SNS이 발달하고 정보화시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농경사회가 없이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농경사회 속에서 이 환경을 지키기 애썼던 그 선배들의 노고에 대한 것은 회식이라는 잘못활용하면 그런 강의 듣는 시간이 되어 서로 안 가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그래서 부장님들이나 이분들이 과거에 어떤 계급주의에 갇혀서 밑에 사람들하고 회식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회식을 하다보면 뭐라고 그래요? 부어라 마셔라. 그래서 이 회식하는 자리에 가서 예쁜 아랫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주는 거 잘 받아먹는 놈이 예쁘잖아요. 그래서 감당 못할 만큼 먹여놓고, 이 이튿날 정식출근을 하라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본인은 사우나에 가서 한나절 있다가 와요.
그럼 밑에 사람이 봤을 때 그 위 상사가 존경스러워요? 안 존경스러워요? 하나도 안 존경스러워요. 부장은 당연히 내가 누려야 될 권력을 누렸다고 생각하지만, 아랫사람은 어제 그렇게 퍼 먹여놓고 일찍 안 나왔다고 뭐라고 그러면 고통스러운 삶이 되는 거죠. 그래서 역지사지로서 “너도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결혼을 해서 부장이 되어 인생의 어떤 완결판 정도로 가정도 이루어지고, 아이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이런 상황이라면 막 결혼한 신입사원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일찍 퇴근하라고 배려도 하고, 와이프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배려하고, 또 연애를 하라고 시간도 주고, 뭐 이럴 수 있는 부장이 진정 부장일 텐데도 불구하고, “나는 과거에 그렇게 살지 않았으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점점점점 더 세대의 단절이라고 하는 부분의 환경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물질적으로 뭔가 주는 거 보다는 그 입장을 배려해서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까지 챙겨주는 부장이 된다면 아마 세대단절이 아닌 소통이 원활한 부장으로서 존경받는 그런 상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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