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수행이라고 그러죠.
절을 한다는 얘기는 하심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아상이라고 하는 반대말이 될 수가 있어요.
‘나’라고 하는 존재감을 너무 과하게 높이면
서운한 게 많아집니다.
나를 낮추면 낮추는 것만큼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낮추는 것만큼 내가 머무를 공간이 넓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과거에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엎드려서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댔습니다. 하심이죠.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실천하겠다.’ 그래서 삼배라고 하는 절수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삼배도 있고, 108배도 있고, 천배도 있고, 삼천배도 있고, 만배 수행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하심으로 통할 수 있는데,
일상적으로 삼배를 하는 이유는 불, 법, 승 삼보라고 얘기합니다.
처음에 하는 절은 부처님에게,
그 다음에 하는 절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절은 승단에.
그러니까 승단이라고 하는 것은
존경하는 스님이 될 수도 있겠으나
바로 승단이라는 것은 사부대중을 이야기합니다.
사부대중은 출가한 비구스님, 출가하신 비구니스님, 출가하지 않은 그렇지만 부처님에 귀의한 남자신도, 또한 부처님에게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의 진리를 따르는 여자신도. 이것을 일컬어 사부대중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사부대중이 있을 때에 비로소 구성이 되는 것이 바로 승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체가 견고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단체가 존경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막연히 마땅히 스님을 예경하거나 공경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 승단이 있을 때 불교가 견고해지고 부처님의 진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법-승 삼보에게 예경을 하는 것이
삼배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절수행의 기본은 삼배가 아주 근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고, 그 부분을 통해서 우리가 부처님 진리를 추구하되, 탐진치 삼독을 버려야 되겠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버려야 되겠다. 계정혜 삼학을 실천하겠다. 계를 지키고 내 마음을 청정하게 비워서 지혜를 완성하겠다라고 다짐의 의미 또한 삼배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을 다 포함을 한다면 우리가 부처님에게 예경을 할 때 뭐라고 그래요? 귀명한다고 그랬잖아요. 귀명, 돌아가 의지한다. 부처님에게 의지하고, 부처님가르침에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단에 귀의하고. 그래서 돌아가 의지해서 부처님과 같은 인격의 중심에 서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삼배요, 그 부처님의 절수행의 근본이다라고 이해를 하시는 것이 가장 완벽한 그런 이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모쪼록 그냥 남이 세 번하니까 그냥 세 번 숫자를 채우려고 하지 말고, 그 절할 때마다 부처님에게 부처님가르침에 그리고 도량이 있을 수 있도록 모여지는 승단에게 예경하고 감사한 마음을 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절수행이 아닐까싶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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