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92] 집으로 돌아와서 만족할 줄 안다

Buddhastudy 2025. 4. 2. 18:48

 

*본질 의식의 탐구: 본질을 발견한 후에도 계속 탐구해야 하며

대상과 주체가 하나가 되는 중도를 확립하는 과정이 중요 [00:04].

*이분법과 불이법: 이분법은 생각으로 분별하는 것이고

불이법은 생각이 없을 때 대상을 나와 한 덩어리로 인식하는 것 [01:10].

*본질의 중요성: 경계는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본질은 항상 그대로 있으며,

모든 공부는 이 본질을 가리키고 있음 [05:04].

*공부의 결론: 불이법, 즉 둘이 아닌 하나뿐임을 깨닫는 것이며,

이는 현실에 대한 만족으로 이어짐 [06:28].

*현실로의 귀환: 공부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출발하여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며,

이때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극락정토가 됨 [09:13].

*법계: 중생상이 없는 세계는 법계이며,

이때 법은 진리이자 개체를 의미함 [11:53].

*만족: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참선을 통해 불만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롯됨 [14:54].

*본질은 방편: 본질은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방편이며

현상이 곧 본질임을 깨달아야 함 [16:16].

*금강경의 의미: 금강경은 180도에서 360도로 돌아오는 길을 제시하며

모든 것은 방편임을 알려줌 [18:15].

*중도: 공부의 최종 목표는 중도이며,

이는 현상이 본질이고 본질이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 [19:27].

*반야 지혜: 반야 지혜는 0도에서 180도로 갈 때 필요하지만

돌아올 때는 버려야 함 [20:43].

*보살: 속이 텅 빈 상태에서

현실에 100% 만족하는 것이 보살 [21:34].

*의문의 해소: 공부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이며

의문을 일으키는 것은 아상 [22:14].

*망념의 소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일으키는 상을 깨달아 망념이 사라지는 것이 해결임 [25:20].

*화두: 의문을 더욱 구체화시켜 밀고 나가는 것이 화두이며

이는 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방편임 [26:39].

 

--

본질인 의식한테는

본질인 의식

지금 끝까지 밀고 나간다 할 때

본질인 의식의 탐구를 밀고 나가는 거예요.

 

질문을 당하고

, 이거구나하고 본인이 한번 발견을 하고

그다음에는 이걸 계속 탐구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 이거구나해도

본질을 발견한 것은 아직은 에고죠, 그렇죠?

에고로서 살아오다가 본질을 한번 발견한 거잖아요.

 

근데 본질인 의식을 탐구한다이 말은

의식을 깊이 탐구하면

대상으로서 발견했던 것이 자기가 의식이잖아요.

그러니까 대상과 주체가 하나가 된다.

이것이 점점점점

그러니까 중도라고 하는 것이

딱 요 중도라고 하는 것이

확립돼 가는 것

그게 지금 공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질이나 의식한테는 이분법이 불가능하다.

오직 불이법 뿐이다./

여러분, 이분법과 불이법은 정말로 간단한 것 같아요.

이 구분

구분할 줄 알아야 돼요.

무엇이 이분법이고, 무엇이 불이법인가 하는 구분

아주 간단해요.

어떻게 간단하냐 하면

 

이분법은

지금 당장 해보십시다.

여러분 이게 뭐지요?

여기서 죽비하면 이분법이에요.

 

근데 다시

생각하지 말고 답해 보세요.

이게 뭐지?”

그러니까 생각하면 죽비가 바로 나오는데

생각하지 말고

이게 뭡니까?” 하면

말을 하기가 어렵죠.

말하기가 어렵다는 건 뭐예요?

그러니까 생각이 지금 이렇게 경계를 우리가 대할 때

생각이 들어와서

생각에 따라가서 분별하면 이분법이에요.

근데 생각이 없으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죠.

이 말은 여러분하고 죽비가 분별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생각이 없으면 이게 한 덩어리예요.

 

정말 간단하다고 말하는 것은

계속 자기한테 자꾸 확인을 해 보세요.

이 순간

어 저거는 그림인데

그럼 생각 없이 내가 저걸 뭐라고 하지?” 해보면

생각이 없으면 뭐라고 할 수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저거하고 나가 한 덩어리라서

이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생각 하나가 없으면

이 세계는 나누어지지 않아요.

그게 지금 불이법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공부의 핵심은

한 생각 때문에 벌어지고 안 벌어지고

거기에 체크가 되는가?

그래서 지금 이분법과 불이법 차이 아시겠죠?

 

흔히 이런 거 많이 해요.

선사들이 이런 인연을 심어줄 때

이런 식으로 많이 지도해요.

보세요,

보입니까?

지금은?

안 보여요가 아니고

제가 뭘 묻느냐?” 이거예요.

 

보세요.

보입니까 보입니까?

지금은?

제가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가?”를 착안하셔야 돼요.

 

제가 보입니까?” 할 때는 보죠. 맞아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어텐션이 경계로 와 있죠.

이것이 경계가 사라지면

경계는 사라지는데

이걸 보던 것은 그대로 있어요? 없어요?

그거를 알려주려고 지금 이런 걸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걸 통해서

여러분께서 착안하시는 것은

지금 보입니까?

지금은?

 

이럴 때 나타나면 나타난 걸 보고, 그렇죠?

그리고 경계는 사라졌지만

그걸 보는 자기는, 이거는 그대로 있죠.

그러니까 그거를 알아채라고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거예요.

 

지금 상황이 포인트가 어디에 가 있느냐 하면

지금 여기 본질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계속 정말 중요한 것은

경계가 아니고 본질입니다.

경계는 인연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걸 보고 있는 본질은

항상 나타나면 나타난 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진 줄 아는 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심지어 눈을 감으면

같이 한번 눈 감아 봅시다.

눈 감으면 눈 감은 것을 또 보고 있죠.

나타나면 나타난 걸 보고

사라지면 사라졌다는 걸 보고

그리고 눈 감으면 눈 감았다는 걸 또 보고 있죠.

다시 말하면

눈 감아도 있죠. 확인되나요?

 

그러니까 그거를 우리가 계속 포인트는

거기에 가 있기 때문에

선에서 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24시간 내가 깨닫거나 안 깨닫거나 상관없이

이거는 본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거예요.

 

본래 있는 것이 나타나면 나타난 걸 보고

사라지면 사라진 걸 본다.

본래 있던 것은 항상 있다.

내가 깨닫건 못 깨닫건

모든 사람이 이걸 가지고 이미 쓰고 있다.

그거를 확인하는 것이에요.

 

마지막 공부의 결론은 이분법입니까? 불이법입니까?

불이법이죠.

불이법이라는 말의 다른 뜻은

여러분, 한번 잘 새겨보세요.

 

둘이 없다

이런 말의 다른 뜻은 뭐냐 하면

이것 뿐이다라는 거죠. 맞아요?

이것뿐이다 할 때

제가 두 개를 제시할 테니까

이것뿐이라고 할 때 진짜 이것뿐인 것은 a인지 b인지

여러분께서 한번 선택을 해 보세요.

 

a는 어떤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상

그리고 b는 못 깨달았다고 하는 현실

여기서 이거 이분법이죠.

그럼 하나는 가짜라는 소리예요. 그죠?

그러니까 불이법이 되려면 하나만 있어야 불이법이라는 말이에요, 제 말이.

하나만 있어야 불이법이지 두 개가 있으면 이분법이잖아요.

 

그러면 하나는 둘 중에서

예문이에요.

예문은 깨달았다고 하는 이상,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상

두 번째는 못 깨달았다고 하는 현실.

이 중에서 하나는 가짜라는 소리야.

불이법이 되려면.

 

그러면 어떤 것이 남아야 돼요?

aa로 수렴해야 돼요? b로 수렴해야 돼요?

a, 손 들어보세요.

깨달았다고 하는 이상으로 수렴된다.-a

두 번째 못 깨달았다고 하는 현실로 수렴된다-b

b, 손 들어보세요.

손 안 든 사람 뭐야?

이거 반칙, 반칙하기 없기.

 

다시

지금 이치가

불이법이 되려면 하나만 정답이다, 이거예요.

하나는 가짜고 하나는 진짜다 이거예요.

그러면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상하고

못 깨달았다고 하는 현실하고

이 중에서 무엇이 진짜냐, 이거예요.

이상이 진짜예요? 현실이 진짜예요?

현실은 대체 불가능이잖아.

이상은 생각일 뿐이잖아요. 맞아요?

근데 이상이라고 답을 한다 이거지.

 

그러니까 여러분 놀랍게도 공부는

현실에서 출발해서

공부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돼요.

이때 현실은 고통이에요.

마지막 종착지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로 돌아오는 거예요.

 

근데 돌아와서 보면

고통이 고통이 아니에요.

이때 현실은

같은 현실인데

내가 분별심으로 가타부타 따지고 시비를 일으키고 했기 때문에 고통이었고

돌아올 때는 그런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 현실이 있는 그대로 극락정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공부는 뜻밖에도

현실밖에 없구나하는 걸 깨닫는 거예요.

최종적인 깨달음

그러니까 중도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현실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근데 물론 0도하고 360도는

지점은 같아도 안목은 달라져 있어요.

그래서 0도를 출발지를 산은 산이다그래.

그리고 180도 저 반대편 본질을 산은 산이 아니다고 해요.

되게 공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해요.

산은 공이다.

산은 산이 아니라 공이다, 본질이다, 이 말이에요.

근데 360도는 역시 산은 산이다하고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릴 때

0도에서 180도로 가는 사람은 본질을 확인해야 돼요.

근데 본질을 확인한 사람은 본질을 버려야 돼요.

본질을 버려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15도를 보나, 뭘 보나

전부 다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죠.

 

나한테 중생상이 없으면

중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지금 있는 그대로가 실상이라는 거예요.

이 말은 상덩어리 자체가 실상이라는 거예요.

 

그 중생상이 없는 것이

일체중생을 한꺼번에 다 건지는 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눈을 우리가 갖추는 게

그게 현실로 돌아온다는 소리예요.

 

근데 이 사나에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어떤 기적이냐 하면

더 이상 내가 중생 이상이 없이 보면

그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지 중생은 아니죠.

중생이 아니면 부처도 아니에요. 그죠?

그냥 있는 그대로예요, 그죠?

그게 실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있는 그대로라고 할 때

이제 일반인들하고 우리는 달라요.

이때 있는 그대로

기가 막힌 불교 용어가 있는데

있는 그대로를 뭐라고 부르냐 하면

이라고 부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상이 없으면

이 세계가 법계가 된다는 거야, 법의 세계.

이때 법은 뭐예요?

그러니까 0도하고 360도의 차이점은

360도는 본질로 갔다가 돌아오는 거잖아요.

본질로 가서 그 시선으로 여기를 돌아오면

이 세계가 본질의 나타남,

한 개 본질의 다양한 개성 있는 나타남으로 이게 보여지잖아요.

 

그럼, 상은 떨어지고

대신에 하나하나는 법으로 보인다 할 때

다시 한 번 상기하면

법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 번째는 법은 다르마, 진리란 뜻이고

두 번째는 이 하나하나의 개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법, 영어로 하면 Everything

하나하나의 개체가 진리다

이 뜻이 되는 거죠.

 

그럼, 이 말은 뭐예요?

하나하나의 개체가

나름대로 본질이 다양하게 지금 나타난 거다.’

그래서 지금 하나하나가 꽃이 되는 것.

법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럼, 실상이란 말은 화엄이라는 뜻이에요. 화엄법계

_ 꽃이

_ 피어난

법의 세계, 진리의 세계

 

그래서 여러분,

상덩어리가 있는 그대로 매력으로 보이는 거

콩깍지가 씌인 거죠.

근데 이게 콩깍지가 씌인 건지

아니면 이게 정말 보살의 눈이 이제 뜨여지는지

이거는 표현은 다양하게 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 딱 돌아와서 정착하는 것.

 

다시 말해서 현실에 돌아와서 정착한다이 말은

요 모양, 요 꼴로 내가 만족한다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로 이때는 안목이 예리한 게

형상에서는 요모양 요꼴이에요.

근데 본질에서는 더 이상 무상,

이거 이상은 없는, 완벽한 본질

완벽한 본질이

지금 이 형상으로 이렇게 드러난 것

이게 두두물물의 진실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 초점이 딱 완전히 맞아져서

지금 눈에 보이는 이대로 100%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러니까 저 같으면 하여튼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참선을 시작한 원래 동기는

불만족 때문에.

하여튼 존재 자체가 불만족인 그것 때문에

그 괴로움 때문에 제가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해결되었느냐 하면

오랜 세월을 거쳐서 공부를 쭉 해 오니까

어떻게 해결되느냐 하면

제가 불만족스러워하던 그 세계가

바꾸려고 했던 것이에요.

그게 저의 모든 불만족과 고통의 원인이었어요.

 

그 첫 나의 한 생각이

바로 상이었다고 하는

그것이 진짜 자각되면서 그것이 놓아지니까

있는 이대로 현실로 돌아온 것뿐인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고통은

그 하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나를 평생 끌고 다녔다고 하는 사실을 돌아봄으로써

고향으로 완전히 돌아오는 것.

 

저는 본질이 목적인 줄 알았어요, 진짜로.

본질로만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

근데 그런 본질은 없고

부처님께서는 정확하게 본질을 말씀하셨던데

방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까지 가자하니까

너무 머니까 갈 생각을 안 해.

그러니까 가까운 데 목적지를 하나 정해 놓고

여기까지만 가면 된다. 요거 못 가냐?’

 

마치 제가 어릴 때 어른들 따라 산에 올라갈 때 비슷하네.

저까지만 가면 된다해서 그래서 열심히 가 보니까

또 언덕이고, 또 있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본질이 중간 기착지라는 뜻이에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본질을 목표로 하고, 본질을 깨달으면 다 인줄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이거죠.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그 본질로부터

본질도 관념이라는 사실을 내려놓아야

그래서 아주 멋진 말이

현상이 본질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있는 이대로 하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본질이지

이걸 두고 따로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올 생각을 안 한 사람한테는

본질이 따로 있다라고 하고 끄집어냈고

그리고 일단 도달한 사람한테는

이 그 본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바로 현상이 본질이다라고 해서

완전히 돌아 나오는 길

이게 지금 전체 우리 마음공부의 구조예요.

 

0도에서 180도로 가서 360도로 돌아오는 것

0도는 고해, 화택, 고해고

180도는 본질이고

그리고 360도는 본질이 따로 있지 않고 그건 하나의 방편이었고

이 현상이 본질이기 때문에

본질이라고 하는 관념을 내려놓아라.

이게 그 한 차원 높은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돌아보면

금강경의 뜻이 어디 있는가?’할 때

금강경의 뜻은 180도에서 360도로 돌아 나오는 길을 제시한 겁니다.

그게 금강경의 본 뜻이에요.

 

그러니까 금강경에서는 보세요.

모든 게 뗏목을 타고 피안으로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라이런 말 하잖아요.

그리고 보살은 보살이 아니라 그 이름이 보살이다이 말은

피안이 피안이 아니라 이름이 피안이다.

뗏목이 뗏목이 아니라 이름이 뗏목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방편이다.

근데 그거를 한 번 이렇게 건너갔으면 그것을 놓아야지 된다.

이 말은 피안이 아니라

알고 보면 진짜 피안은 출발지였던

아니 출발지보다도 하나밖에 없는 이 현실이라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뭔가를 쥐면

이 현실로부터 다시 벗어나게 돼요.

그래서 완전히 현실로 돌아 나오는 게 공부라서

한번 우리 도반 여러분과 함께 확인하고 싶은 것은

공부의 최종 목표가 중도인데

중도는 현상이 본질이고 본질이 현상이다.

0도에서 180도 가는 것은 색즉시공이고 따라오십니까?

0도에서 180도 가는 것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180도에서 360도로 돌아 나오는 것은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으로 돌아나온다, 이거예요.

 

색즉시공은 무심,

공즉시색은 평상심

완전히 평상으로 돌아 나오는 게

이게 최종적인 공부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현상에 있는 사람이

그냥 여기가 목적지네하고 아예 가지도 않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참 이 공부가 저도 많이 헷갈렸거든요.

왜 어떨 때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왜 어떨 때는 본질을 찾아라그러고

왜 어떤 때는 본질을 놓아라그러고.

심지어는 반야 지혜를 우리가 갖춰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

또 어떨 때는 반야 지혜를 놓아야 한다

또 그런 가르침도 있는 거예요.

정말 많이 헷갈렸었어요.

 

근데 이런 말들을

우리는 소화를 하자 이거예요.

 

반야 지혜를 갖춰야 한다.’ 이 말은

0에서 180도 갈 때의 이야기고

180도에서 0도로 돌아나올 때는

반야 지혜조차도

번뇌 망상뿐만 아니라 반야 지혜조차도 버려야 된다.

그래야 진짜다이거예요.

 

그리고 완전히 텅 비운 상태에서

진짜로 날카롭게 진짜가 나오거든요.

그게 진짜 반야지혜지.

 

항상 마지막은 여러분

이렇게 한번 본질로 돌아나온 사람은

속이 텅 비어 있다는 건 이해되십니까?

출발에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 돌아 나오는 과정에서는 이제 속이 텅 비어 있어요.

한 인간이 텅 비어져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일어나는 그 마음이 그 에너지가

보살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소위 말하는 보신, 법신, 화신, 보신할 때의 보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계속 공부가 현실로 돌아와서

텅 빈다이 말은

현실에 100% 만족한다는 소리예요.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문을 해소해 가는 공부예요.

이해가 되나요?

 

의문은 무엇이 일으키는가?

보세요

의문은 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의문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 현실에 만족한다면

의문이 일어날까요? 안 일어날까요?

원리가 그렇잖아요.

안 일어나잖아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지금 바로 여기서 100% 만족하고 있다면

의문은 안 일어나죠.

근데 의문이 일어난다는 것은 만족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현실에 만족 못한다는 건 뭘까요?

그게 나의 아상이라는 거예요.

모든 상 중에서 대빵

모든 상 중에서 제일 힘센 거

그거는 아상이다, 이거예요.

아상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의문을 일으킨다.

 

이때 의문은 주로

이것이 아닌 무엇이 없느냐?’ 하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그 심정이

무언가를 일으킨다, 이거예요.

그래서 집을 떠난다, 이거예요.

 

결국에는 그게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우리 공부이기 때문에

결론은

나한테서 어떤 의문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그 의문을 충실하게 해결하려고 해야 돼요.

근데 하다 보면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있는 게 아니고

제가 지금 결론적으로 말을 하면서

제가 생각해도

여러분이 정말 공유해 주셨으면 싶네요.

 

우리가 의문 때문에 공부해요. 맞아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있어서 의문이 풀리는 게 아니고

의문을 일으킨 것이

아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문제 자체가 불만족 문제 의문이 사라지는 게 해결이에요.

 

아상도 욕심이잖아요, 결국에는.

결국 내가 현실에 만족 못하고

내가 욕심에 속아서 그걸 일으킨 그것이 문제였구나하고

그게 돌아봐져서

더 이상 문제가 안 되었을 때

문제 자체가 해결되었다.

 

그래서 의문을 일으켜라이 말은

본질을 설정하고 방편을

본질이라고 하는 방편을 설정하고 추구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본질하고 하나가 되는 게 아니고

사실은 공부가

내가 이렇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 나의 바로 아상이었다고 하는

그 점을 내가 돌아봄으로써

그것이 해결되니까 뜻밖에도

아무 문제가 없던 것을 혼자 뒤집어져 있었네

혼자 전도몽상을 일으킨 것이네하고 알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옛날 선사들이

다만 자기 망념이 사라지는 거지

별스러운 어떤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은 없다고 한 말씀이

사무치게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 현실이 100% 있는 그대로 답이라니까

이거를 우리가 번뇌즉보리, 고해즉정토, 중생즉부처

이런 말 많이 들었잖아요.

그렇지만 이것이 그냥은 소화가 안 돼.

 

보세요.

90도 간 사람이 빨리 돌아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결, 백은 안 됩니다. 백은 안 되고

90도 간 사람한테

기왕이면 빨리 도세요

빨리 도는 비결은 뭐냐 하면

빨리 더 의문을 더 밀고 나가세요이거예요.

의문을, 지금 일으킨 그 의문을

더욱 더 밀고 나가세요.

 

왜냐하면 마음공부를 일단 시작한 사람은

의문이 없을 수가 없어.

그렇지 않나요?

뭐가 석연치 않잖아요. 뭔가가 저처럼 불만족이잖아.

그걸 밀고 나가세요.

 

그러니까 그거를 그 의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주는 게 화두라고 하는 거예요.

그 화두라는 방편이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더 밀고 나가세요, 차라리.

껄쩍지근하게 있지 말고

탁 밀고 나가서

빨리 도세요.

 

이게 이제 하나의

할 수 없는 자비방편이라고 말씀드리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