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15회

Buddhastudy 2014. 11. 16. 20:14

" altHtml=""> 출처: 불교TV

 

 

 

편지를 받아보니

느끼는 바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묘한 도는

그 자체가 비어 있어

말로써 미칠 것이 아니니

어찌 문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이겠습니까?

 

스님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를 거역하는 것이니

그냥 침묵하겠습니다.

 

차라리 야반삼경에

가야산을 쳐다보십시오.

 

신선의 도 역시 신선의 도를

분명히 즐기지 않으니

분명히 설하기를 즐기지 않으니

오히려 그 도를 가르쳐주면

사람들이 웃는다고 했거늘

 

하물며 정법을 깨닫는 일이야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경봉 큰 스님께서 연산스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오묘한 도는 그 자체가 비어있어 말로서 미칠 것이 아니니, 차라리 야반삼경에 가야산을 쳐다보라. 하는 큰 스님말씀 받잡고 저 또한 지난밤에는 뜰 앞에 나와 앞산을 쳐다보았습니다. 도를 만났음에도 그것이 도인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법부의 마음으로 또 한해를 지나보내고 있는지는 아닌지 스스로를 경책하게 됩니다.

 

..

 

대 초원에 나가서 밤하늘의 정말 달이 뜬 모습이, 별 뜬 모습이 보일 것만 같은 그런 음악이죠? 그러니까 음악을 들으면서 그 풍경을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을 때 그 때 그 음악은 정말 살아있는 음악입니다. 으흠. 지금 이 하모니카 연주는 아주 젊은 사람입니다. 지금 귀 기울여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하모니카 실력이 보통 넘습니다. 요즘의 세계적인 연주가들을 보면요, 저는 가끔 그런 비유와 표현을 합니다만, 거의 아라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젊은 뮤지션은 하모니카의 천재입니다. 귀재라고 할 수 있죠.

 

실력도 대단하지만 그 운율 하나하나 그 연주하는, 바람 소리를 통해서 자기 호흡과 함께 소리를 통해 정확한, 1미리도 틀리지 않는 그 정확한 음질을 뽑아내는 거잖아요. 이미 그 경지에 대해서 터득하고 다 아는 사람이라야 음악의 최고로 잘하는 연주가가 될 수 있지요. 아라한이라고 하는 건 무학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자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진짜 음악에 대한한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그런 사람들이 참 세계에 많습니다. 대초원의 밤하늘, 달뜬 모습을 혼자 나가서 조용~~히 차분하게 보는 풍경도 좋겠지만, 마음과 뜻이 통하는 벗이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 벗과 함께 초원에 뜬 달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도반과 함께라도 좋구요. 또 사랑하는 누군가와도 좋구, 그런데요, 우리가 친구사이라는 것,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한두 명 정도 있지요? 그런데 일생을 함께 마음을 나눌 친구 한명 두명있다는 건, 그 어떤 재산보다 큰 재산이다. 이런 비유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께서는 그런 친구가 한둘 있으신지요? 요즘과 같은 이런 세상을 탁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탁악세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중생들의 마음이 거칠고, 눈으로 보는 바가 거칠고, 입으로 말하는 바가 거칠고, 중생들의 생각 하나하나가 거칠어서, 이 거칠게 살아가는 탁류와 같은 세상, 이런 곳에서 올바른 벗, 올바른 친구를 만나기란 또한 쉽지 않은 일이며.

 

또 나한사람, 한사람이 올바른 친구, 좋은 벗이 되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입니다. 친구뿐만 아니라 도반뿐만 아니라 사실, 스님과 신도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지요. 오랜 기간 동안 서로 기도하고 정진하며 신뢰를 쌓았던 스님과 신도와의 관계도 어느 순간 쉽게 깨져나가게 됩니다. 그 관계가 깨져나갈 때 우린 또 서로 천천히 원수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으흠, 사람을 만나는 것만 좋아해서는 안 될 거 같아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친구와 오랫동안 사귀었는데, , 10년 만에 그 친구하고 헤어지기도 해요. 그걸 꼭 나쁘다고만 해석해야 할 까요? 사실은 헤어지고 또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관계가 벌어지는 경우. 그런 것도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이니까요. 뭔가 배울 것이 있으니까, 어떤 관계도 나쁘다고는 말 할 수 없지요. 좋은 관계라는 거 유지하는 데는 사실 양쪽의 노력이 다 필요합니다. 어느 한사람만 노력한다고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건 아니죠. 또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준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 관계가 유지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지되지 않고 관계가 깨졌을 때,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친구관계나 어떤 사람을 사귀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게 있어요.

 

좋은 벗과 만나고, 왕래하는 데에도

때가 있어야 한다.

 

친하면서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우정은 오랠수록 더욱 두터워 진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구차하게 어울리면

신의가 없게 된다.

 

나를 예의로 대접하면

당연히 존중으로 보답하고,

나를 대함에 교만하면

당연히 멀리 피해야 한다.

 

악한 사람이 자기를 섬기면

받아들이지 말고,

예전에 친했던 사람일지라도 자기를 멀리하려고 한다면

굳이 다시 친해지려고 하지 말아라.

 

은혜와 사랑이 이미 떠났으면

돌이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새들도 잠을 자던 가지가 부러지면

다시 깃들 곳을 찾아 떠날 줄 아느니라.

 

참 멋진 말씀입니다. 떠난 인연에 대해서 연연해하지 말라는 거에요. 우린 뭐 1020년 사귀던 친구하고 헤어지게 되면 그걸 굉장히 가슴아파하죠. 그거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또 이어볼까? 고뇌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어느 석상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하고 친절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거드름을 피우거나, 눈을 째려본다거나, 또는 못본 척 한다거나 이렇게 불경스럽게 대한다면, 그런 사람과 가까이 친할 필요 없다.

 

그런 사람에겐 보고 배울 게 없다는 거죠. 그런 사람과 친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또 아무리 친했다가도 헤어졌으면 그 헤어진 친구와의 관계를 그냥 거기에서 마음을 또 정리하고 다시 또 앞으로 니아 가야지, 어떻게 해서든지 또 연결해 보려고 애쓰면서 고통스러워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끝에 비유가 멋지잖아요. 새 또한 깃들어서 잘 지내다가 가지가 뚝 부러져. 부러지면 다시 새로운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것과 같이, 또 그렇게 다가오는 새 인연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헤어진 친구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계신가요? 부러진 가지를 다시 찾아가지 말고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보십시오.

 

..

   

예전에 제가 실크로드를 갔다가 트루판 쪽으로 가면서 마차를 타고 백양나무 숲길을 막 달려갔던 생각이 나는데, 문득 러시아 음악을 들으니까 백양나무 숲길을 마차를 타고 막 끝없이 달려가는데, 눈이 날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눈발이 하얗게 날리고. 그런 게 연상되지 않나요? 아니면 눈이 내리고 있는 어느 조용한 찻집에서 여러분이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뭐 이런 음악이 나온다. 그러면 왠지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거 같지 않을까요? 유년의 도시였어요.

 

한밤중에 막 뛰쳐나와서 기차표를 예매하는 곳으로 달려간 거예요. 달려가서 승무원에게 노크를 하면서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침대칸 한 장만 주세요. 라고 이렇게 얘기해 봐야지. 그러면 그 승무원 아가씨가 이렇게 대답하겠지? 그런 기차표 없는데요. 라고. 마음으로라도 우리가 유년시절로 돌아가 본다. 즉 추억으로 유년시절로 돌아가 본다. 하는 그런 아름다운 노랫말이 담긴 러시아 로망스입니다.

 

..

 

가끔 여러분도 어린 날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을 때 있으세요? 만약에 어린 날의 유년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해보고 싶으세요? 어떤 꿈을 가질 거 같으세요? 사실은 우리의 육체가 나이 들어간다고 해서, 어른이 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유년시절의 머물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아직도 내가 유년시절에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여기까지 그냥 허송세월하고 온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또 1년이 가고 있습니다.

..

 

바랑 속에서 책 한권, 역시 지난주에 이어서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 정신 세계사에서 펴낸 신간서적, 박영신 교수의 글, 오늘까지 읽어드리도록 할게요. 아버지가 어린 날 들려주셨던 이야기. 그 이야기는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니오, 사회에 나와서 배운 것도 아니오. 아버지가 삶속에서 경험하면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이야기를 마치 어린 딸을 무르팍에 앉혀놓고 도란도란 옛이야기 해주듯이 그렇게 이 책은 속삭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아버지가 도둑이 집에 들어왔는데, 그 도둑에게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나가라. 하는 이야기를 마치 큰 스님이 도둑이 절에 들어왔을 때, 오히려 절에 있는 것을 더 얹어서 떠나보낸 것과 똑같은 풍경이에요. 들어보시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개인주택에 살 때 일이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서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나서 잠이 깼지.

잘 들어보니 거실에 도둑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옆을 보니까 니 오마니는 도둑이 들어 온지도 모르고 편안히 자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가만히 있어볼까?

도둑이 거실에 물건만 갖고 갔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사람도 다치지 않고 제일 좋을 거 같았어.

아니야. 나가봐야 겠어.

 

만약 가만히 있다가 도둑이 안방으로 들어오면

심장 약한 오마니가 깨어 놀라서 비명이라도 지르면

도둑이 엉겁결에 사람을 다치게 할 쉬 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네 오마니가 깨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일어났지.

지난번 만났을 때 네가 준 돈을 항상 비상금으로 농에 넣어두었거든.

 

그 돈을 봉투 채들고 천천히 들고 거실로 나갔어.

도둑과 마주쳤어요?

도둑이 나를 보더니 나보다 더 소름끼치게 기절할 것처럼 놀라더라.

커튼 사이로 달빛이 은은한데,

도둑이 들고 있는 날카롭게 번득이는 칼이 보였어.

 

나는 손으로 입을 다물라는 표시를 하면서

침착하게 거실에 소파에 앉으며

도둑한테 맞은편 소파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지.

 

그리고는 네가 부모님께라고 써 준 봉투를 통째로 탁자위에 놓으면서

이것은 그동안 우리 딸이

우리 늙은이들 쓰라고 준 용돈이네.

자네에게 다 주니까 이걸 가지고 조용히 가게.

 

도둑의 눈빛은 달빛아래 여전히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지.

보아하니 젊은 사람인데,

젊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꼭 긴급히 필요한 돈이 있으면

내가 준비해 두었다가 더 줄 테니

앞으로는 밤보다는 낮에 열심히 살도록 하게. 라고 말해주었지.

 

그렇게 말했더니 도둑이 어떻게 했어요?

으흠. 도둑도 마음이 깊이 움직였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듣더라.

그럼 이 봉투 갖고 날래 가보게.

 

그러자 도둑이 봉투를 낚아채드니

들어왔던 화장실 쪽문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런 쪽문으로 숨어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나가게.

그리고 앞으로는 정정당당하게 살도록 하게. 라고 말하면서

잠겨있던 거실 현관문을 열어주고

앞서 나가서 대문을 열어주고 대문 통해 정식으로 나가게 했어.

 

비록 농사를 지었지만

한평생을 당당하게 살아 온 아버지.

나는 화장실 열린 쪽문으로 숨어 다니는 도둑은 아니지만

도둑놈 같은 심보가 털 끗만큼이라도 발동할 때면

도둑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았을 그 말씀.

정정당당하게 살아라. 라는 아버지 말씀이.

지금도 서릿발처럼 카랑카랑하게 마음 속, 심장 저리게 울려 퍼진다.

 

..

   

사연이 참 따뜻하네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하면서 이렇게 고맙고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시니, 제 가슴까지 뭉클해집니다. 어머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리기만 해도 왜 인간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까요?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서 성장하고 이만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에 모든 어머니들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예경 받아 마땅하며, 공경 받아 마땅하신 분들이십니다. 물론 어머니 같지도 않은 사람도 많아요. 라고 그렇게 반문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어머니들조차도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하지 못하는 어머니들조차도 사실은 그 깊은 심연에 저 밑바닥에는 신성의 그 어머니의 품성이, 사랑과 자비의 품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을 뿐인 거죠. 씨앗이 발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어머니들은 하염없이 고마운 존재입니다.

 

..

 

지금 자닌토님 음악 들으시면서 이 분이 여성인 거 같아요? 남성인 거 같아요? 저는 처음에 이 분의 음반을 구입했을 때 여자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남자인 거예요. 말할 때는 목소리가 굵직한데, 노래할 때는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워요. 참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죠?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 올릴 시간입니다. 오늘 이제 한 바퀴를 돌아서 아름다운 소원, 공양 올릴 차례네요. 두 손 합장하는 마음으로 함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한

그들의 질병이 모두 치유될 때 까지 제가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 약이 되게 하소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굶주림과 갈증이 사라지고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할 때에는 제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되게 하소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가 무진장한 보물이 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 항상 그들 곁에 있게 하소서.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제가 보호자가 되고

길 떠나는 이들을 위해 안내자가 되며

물을 건너려고 하는 이들을 위해 배가 되고 뗏목이 되고 다리가 되게 하소서.

 

육지를 찾는 이들을 위해 제가 섬이 되고

빛을 찾는 이들을 위해 제가 등불이 되며

쉼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쉼터가 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가 도우미가 되게 하소서.

 

제가 여의주가 되고 풍요의 보배창고가 되고

최고의 약초가 되고 강력한 진언이 되며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되고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이 되게 하소서.

 

과거의 모든 성인들께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시고

수행의 모든 단계를 완수하셨듯이

 

저도 모든 생명들을 위해 그와 같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고

수행의 모든 단계를 완수하겠습니다,

 

제가 여의주가 되고, 보배창고가 되고, 약초가 된다는 이런 발원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며 오도록 절절한 발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이번 한 주 건강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공양 올립니다.